“근대적 병원, ‘콘스탄티노플’에서 시작됐다”

[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 ⑦ 차 소비 세계 1위 튀르키예

오스만튀르크는 1453년, 비잔틴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한다. 지난 칼럼(*)의 배경이 되었던 1543년보다 정확히 90년 전에 이곳에서도 문명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 참조: "차(tea)는 서양에서도 'cha'로 불릴 뻔했다"- ⑥ 1543년, 그리고 포르투갈. 코메디닷컴 24년 07월 20일)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수 세기에 걸친 이슬람 공격에도 명맥을 유지하였던 로마제국의 멸망을 의미한다. 게르만 대이동으로 서(西)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다시 천 년이 지나 동(東)로마제국마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와 함께 많은 것들이 함께 사라졌다. 먼저,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하여 동로마제국 수도에 붙여졌던 ‘콘스탄티노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비잔틴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이 들어선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 3일 동안 그들의 병사들에게 허가된 약탈 기간이 끝나고 술탄 메흐메드 2세는 도시에 입성하자마자 먼저 세계 기독교의 성지로 900년 동안 영광을 누렸던 대성당 아야 소피아에 들어갔다. 그의 한 마디에 소피아 성당은 모스크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또, 1000년에 걸쳐 서방이 구축해온 병원을 몰락시켰다. 서양 의학사에 의하면 1700년대까지 병원은 환자 수용소와 비슷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서유럽과 미대륙의 관점일 뿐, 근대적 개념의 병원은 이미 천 년 전 비잔틴에서 탄생하였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1000년을 어어져온 비잔틴 병원들도 몰락했다

병원 운영에 의료인이 참여한 시기는 6세기 경이다. 비잔틴제국의 유스티아누스 1세(527-565)는 당시 공무원 신분으로 의료와 보건을 담당하던 수석 의사들을 병원 시설의 전문의료인으로 전환시켰다.

병원에서 봉급을 받고 환자 진단과 치료에 전념하였고 의학도들을 훈련하게 되었다. 이때 시설로서만 존재하였던 병원이 현대적 개념의 병원으로 탄생하였다.

콘스탄티노플에는 서기 500년 직전에 이미 삼손병원(Hospital of Samson)(그림)을 포함한 3개 병원이 존재하였고, 서기 600년까지 2개 이상의 병원이 더 설립되었다. 이 병원들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새로운 개념의 병원으로 기능하였다.

콘스탄티노플에 존재하였던 삼손병원. '비잔티움1200 프로젝트'에 의하여 복원된 그림. '아야 소피아 성당' 옆의 세 동 건물이 삼손병원이다. [사진=유영현 제공]
특히 9세기에는 회진(回診)제도까지 시행되어 의사들이 매일 아침 병원 입원실에서 환자들 상태를 살폈다. 의사들은 또 환자들의 상태와 처방 등을 기록으로도 남겼다.

10~11세기에는 외래(外來)진료도 시작되었다. 병원은 여기에 의학서적을 보관하는 도서실에다 후학들을 가르치는 시설과 교육체제도 갖추었다. 그런 역할에서 근대의 병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병원은 대부분 종교단체 등에서 운영비와 물자를 공급받아 유지되었다. 이후 이슬람에 의하여 위협을 받든 시기에도 병원은 개설되고 유지되었다.

이렇게 유지되던 병원은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몰락한다. 두카스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목격하며 《비잔틴 역사, Byzantine History》를 남겼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이 가져올 심각한 문화적, 종교적 후폭풍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엔 “병원과 양로원이 파괴되고 노인들이 더는 보호와 돌봄을 받지 못하고 길거리로 내몰리는 것”을 두려워하며 글을 이어갔다.

그의 두려움은 사실이 되었다. 서양병원의 역사 자체나 다름없는 콘스탄티노플의 병원들은 그 이후 세계의학사에서 존재감이 사라졌다.

그런데, 비잔틴제국은 멸망하였지만, 대반전이 일어난다. 그리스·로마 문명을 보존하고 계승하였던 비잔틴제국이 멸망하였으나, 그리스·로마 문명은 이 사건을 계기로 부활한다.

함락 이전부터 비잔틴제국의 지식인 학자들은 제국이 보존하고 있던 그리스·로마 문헌들과 유산을 들고 서유럽으로 건너갔다. 그리스·로마 문명은 유럽에서 다시 살아난다.

병원의 운명도 그리스·로마 문명의 ‘르네상스’와 궤를 같이하게 된다. 콘스탄티노플에서 1453년까지 의학 교수로 재직하였던 지오반니 아르기로풀로는 피렌체로 건너가 ‘새 성모 마리아병원’ 구축에 관여한다.

이 병원은 비잔틴 시대 병원과 마찬가지로 진료하고 처방기록을 보존하는 전통을 지켰다. 이 병원은 오늘날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탈리아로 들어온 비잔틴 병원은 이후 유럽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18세기 후반, 근대과학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근대적 병원이 탄생하기 시작하였다. 1830년경 30여 개의 병원이 약 2만 병상을 보유하였다. 이런 경향은 유럽과 미국으로 영향을 미쳐 수십 년 이내 근대적 개념의 병원이 세계로 퍼진다.

이를 근거로 “근대적 병원의 탄생은 19세기 초반에 이루어졌다”고 서양 사학자들은 말하지만, 서양의학 병원의 바탕에는 엄연히 비잔틴 병원이 있었다.

비잔틴은 차에 대해 어떤 자료도 남기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전, 비잔틴제국에서는 로즈메리와 같은 허브 티(herb-tea)가 유행하였다. 동양의 차(茶, cha)는 아직 서방에 소개되기 전이었다.

만약 일찍이 차가 비잔틴제국에 소개되었다면 이미 제국 대부분을 적에게 내주고 마지막 남은 수도마저 운명의 위태로운 불길이 꺼져갈 때, 콘스탄티노플을 감도는 불안을 그들은 차로 이겨냈을 것이다.

콘스탄티노플 점령 시점에는 터키인들도 차를 마시지는 않았다. 그들도 비잔틴제국 시민들과 비슷한 허브티를 마셨다.

이후 터키인들은 차에 앞서서 커피를 먼저 받아들인다. 이후 터키에서 커피가 흥행하였다. 1554년, 이스탄불에 ‘커피하우스’(coffee house)가 개설되었다. 영국 런던에 세워진 최초의 커피하우스보다 100여 년 일찍 세워졌다.

함께 모여 대화하는 문화를 가진 터키에서 커피는 매우 중요한 문화요소가 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 터키는 커피의 나라였다. ‘지옥처럼 검고, 사랑처럼 달콤한’ 터키 커피는 지금도 터키 방문객들에게 필수 체험 코스이다.

17세기 중반, 유럽에 중국으로부터 차가 수입되면서 터키에도 차가 전해졌다. 처음에는 상류층에 국한되어 유행하였으나 19세기에 이르러 터키 전역에서 대중화되었다.

터키 정부는 커피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저렴한 음료를 공급하기 위해 차 재배 독려에 나섰다. 이스탄불 등에서 차를 재배하려는 노력은 실패하였지만, 마침내 흑해 연안의 리제 지방에서 차 재배에 성공한다.

이에 터키는 차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국가 이름을 최근 ‘튀르키예’(Turkye)로 개명한 터키의 후손은 1인당 차 소비에서 부동의 세계 1등이다. 그들은 온종일 차를 마시고, 차를 놓고 대화한다. 현재는 차 수출국까지 되었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마시는 차는 변형된 홍차 ‘차이’. 차를 졸이듯이 진하게 끓여낸 다음 물로 희석하고, 허리가 잘록하게 길고 손잡이가 없는 찻잔에 많은 양의 설탕을 넣고 마신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튀르키예 인은 심혈관 질병과 당뇨병 유병률이 다른 OECD 국가에 비하여 낮다. 게다가 국제암연구소의 ‘(연령 표준화)암 발생률’ 국제 비교 자료에 의하면 튀르키예는 OECD 국가 중 암 발생률이 가장 낮다. 가장 높은 호주와 뉴질랜드보다 절반 이하이다.

주요 질병들의 낮은 유병률은 그들의 식생활 습관, 운동, 그리고 의료체계 등이 함께 반영된 결과이다. 그들은 건강한 지중해식 식단으로 식사하고, 비교적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서양병원들을 몰락시킨 터키의 후예들은 지금 튀르키예 안에서 꽤 수준 높은 의료체계를 유지하며, 국민 건강을 돌보고 있다는 간접증거도 된다. 그렇다 하여도 차 1등 소비국의 전반적인 건강상태가 높다는 점은 ‘차 권하는 의사’ 내게는 든든한 자료이다.

터키를 현지 방문하여 차이를 마시고 대화하는 튀르키예 사람들을 직접 보기도 하였고, 지금도 사진과 영상으로 그들을 가끔 접한다. 차이 마시는 그들의 모습에는 수백 년 전 그들의 자리를 차지했던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시민들과 함께 사라지고 후에 부활한 많은 것들이 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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