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휴진 이유도 '각양각색'...하필 오늘이 원장님 건강검진 날?
의협총파업 당일, 정부 '응급의료포털' 공지 달라 혼선
의사 단체가 집단 휴진을 예고한 18일 오전 여러 동네 병원이 '개인 사정' 등을 이유로 문을 닫으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20대 환자 A 씨는 이날 오후 12시경 서울 동대문구 소재의 한 이비인후과의원을 찾았지만, 병원 문 앞에 크게 붙은 휴진 안내문을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던 A 씨는 코메디닷컴 취재진의 물음에 "따로 휴진한다는 안내를 받은 적이 없어 당황스럽다"며 다른 병원을 찾아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주도로 의료계 집단휴진이 진행 중인 가운데, 해당 의원은 정부의 응급의료포털(E-GEN, 이젠) 서비스 상에선 정상 진료 중으로 안내된 곳이다.
같은 날 오후 서울 중랑구 소재의 한 소아과의원과 내과의원 역시 분위기는 비슷했다. 같은 건물 안에 서로 마주보고 위치한 이들 병원도 응급의료포털 공지와는 달리 휴진 중이었다.
소아과의원에선 '18일 휴진'이 아닌 '19일 정상진료'라는 안내문이 부착됐고, 내과의원엔 내부 접수데스크에 '원장님 개인사정으로 오후 휴진한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서야 휴진 사실을 알게 된 일부 환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의 소아과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40대 남성 B 씨는 "평소 하던 병원이 갑자기 문을 닫으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오늘 진료를 꼭 받고 약을 타야하는데 큰 일"이라면서 "(의정갈등으로) 환자 피해가 너무 크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오후 휴진 사실을 모르고 내과의원에 위염 약제를 추가 처방받으러 왔던 70대 C 씨도 "이게 뭐하는 짓이야, 대통령이"라며, 의료계뿐 아니라 정부에도 분통을 터뜨렸다. C 씨는 취재진에 "빨리 서로 양보해서 타협해야 한다"며 "몇 달 동안 질질 끌고 가다 결국 환자만 피해를 입는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의협의 대대적인 휴진 예고에도 실제 개원가의 참여율은 저조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의 집계에서 사전에 휴진하겠다고 신고한 의료기관은 전체의 4% 남짓한 수준이었다. 이날 응급의료포털에서도 휴진하는 병·의원을 찾기 더 어려울 정도였다. 다만, 정부가 집단휴진을 신고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휴진 현황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포털사이트인 '네이버 플레이스'에선 응급의료포털과 달리 휴진을 공지한 동네 병·의원을 더러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의협은 정부의 사전신고 참여 대신 네이버 플레이스에 휴진을 안내하도록 공지한 바 있다.
이들 병·의원의 휴진 사유도 각양각색이었다. 휴진 병·의원은 원장의 개인 사정 외에도 다양한 이유를 들었는데, 공식 사유는 의협의 집단휴진과 전국의사총궐기대회 참석이 아니었다.
서울 중랑구 소재의 한 마취통증의학과의원에선 이날 원장이 '건강검진'을 받는다며 휴진을 공지했고, 동대문구 소재 이비인후과의원에서도 원장의 병원 진료를 이유로 걸었다. 같은 구역의 한 내과의원에선 '병원 이전 재개원 문제'로 휴진하기도 했다.
휴진 정보가 정확치 않은 탓에 환자뿐 아니라 정상 진료를 진행한 병·의원들도 불편을 겪었다. 이날 예약을 잡은 환자들의 정상진료 문의 전화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소재의 한 가정의학과의원에 이상지질혈증 약물을 처방받으러 왔던 70대 여성 환자 D 씨는 "어디가 여는지 모르겠어서 나오기 전에 병원에 전화부터 하고 왔다"고 말했다. 해당 의원 관계자 E 씨는 주변 병·의원 휴진 상황을 묻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E 씨는 "우리가 조사원도 아니고 다른 곳 어디가 열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며 "문의 전화가 너무 많아 업무가 어려울 정도"라며 피로감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