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췌장→사람 이식’ 임상?…실패 딛고 일어서야 하는 이유

[박효순의 건강직설] 이종이식 임상시험, 한국도 적극적 투자와 규제개혁 필요

유전자 변형을 거친 돼지의 신장(콩팥)을 이식받고 콩팥 이종이식에서 국내 최장 221일 생존 기록을 달성한 원숭이. [사진=옵티팜]
“제1형 당뇨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이종췌도이식 임상시험에 성공해, 선천적 당뇨병인 제1형 당뇨병 환자들뿐 아니라 다른 치료법이 거의 없는 중증 제2형 당뇨병 환자들에게도 새 삶을 선사하겠다.”

이종장기이식(이종이식)을 연구하는 국내 A사는 지난해 2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내 첫 이종이식 임상시험이 연내에 이뤄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2022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이종췌도이식 임상을 위한 ‘의뢰자 주도 임상시험계획’을 승인받았다. 당뇨병의 권위자인 B교수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의 IRB(임상윤리심의위원회) 심의에 통과하며 임상시험 진입 채비를 모두 갖췄다.

그러나 이 기념비적인 임상시험은 희망봉을 돌기도 전에 암초에 부닥치며 올해 4월 말 현재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임상에 참여하는 환자 모집이 어려운 것은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고, 실상은 A사 자체적인 문제가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장기이식은 ‘의료의 종합예술’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1960년대 국내 최초로 신장이식을 성공한 이래 신장(콩팥), 간, 심장, 폐, 췌장(췌도), 골수 등 거의 모든 장기와 조직을 이식할 정도로 의술이 발전했다.

그런데 이식 장기의 부족이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해 약 3000명이 장기이식 대기 중 사망한다. 뇌사자 장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이식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각국의 연구 및 임상 경쟁이 치열하다.

다양한 동물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연구가 이뤄진 건 돼지다. 각막, 췌도, 신장, 심장, 간, 폐 등 돼지의 다양한 장기가 연구되고 있다. 돼지 장기의 크기나 형태·형질 등이 유전학적이나 해부생리학적으로 인간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주최로 최근 열린 ‘난치병 환자의 새 희망, 이종장기이식 현황과 미래’ 콘퍼런스는 이종이식의 새로운 비전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이종장기이식 연구기업 대표에 따르면, 돼지를 이용한 이종장기이식은 면역 거부 반응을 줄이기 위해 유전자 변형 과정을 거친 ‘형질변환돼지’를 이용한다. 하지만 아무리 유전자 조작으로 면역 반응을 최소화해도 거부 반응은 여전히 발생한다.

대한이종이식연구회 윤익진 회장(건국대병원 외과)은 “이종이식에서 면역억제제 사용은 동종이식보다 복잡하다”면서 “맞춤형 면역억제제를 개발하고 허가받는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임상시험 이전의 동물실험은 돼지의 장기를 원숭이에게 이식하는 연구가 일반적이다. 임상실험 또한 주로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한다. 원숭이의 장기는 형질이나 유전자적인 문제로 바이러스나 미생물 감염, 돌연변이 등의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원숭이보다는 약하지만, 돼지의 장기를 이용한 이종이식 또한 이러한 감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종 성공의 열쇠 중의 하나이다.

이종이식의 역사는 세계적인 면역학자인 서울대 박성회 교수팀의 연구가 원조 격이다. 박 교수팀은 2012년 두 원숭이에게 돼지췌도(돼지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세포)를 이식했다. 1년이 지나도록 둘 다 혈당이 잘 조절되고 건강하게 생존했다.

이러한 역사적인 낭보, ‘췌도(세포) 이종이식’ 성공 뉴스는 신문과 방송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박 교수(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선택적 면역억제제(MD-3)’를 이용해 돼지췌도를 이식한 ‘당뇨원숭이’가 별다른 부작용 없이 성공적으로 정상 혈당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국제저널에 발표됐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다. 미국이나 중국, 유럽 국가들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이종이식 연구 결과를 속속 발표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임상실험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콘퍼런스에서 국내 장기이식의 권위자인 이화여대 의대 권복규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직 이종장기이식 연구가 활발하다”면서 “특히 국책과제로 이종장기이식을 연구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향후 4년 안에 이종장기이식 임상시험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약 380억원이 들어가는 국가과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콩팥, 심장, 간 등 장기와 췌도, 각막, 피부 등 세포 조직을 이식하는 영장류 대상 비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종장기이식 연구가 더 활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 뇌사자에 대한 임상시험이 법적으로 막혀 있지만 외국처럼 허용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만만치 않다. 의학의 발전을 법과 제도가 따라잡지 못해 발생하는 오류가 더 이상 생기지 말아야 한다.

닥터콘서트
    박효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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