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대도 걸리는 치매, 더 위험한 이유
65세 이하 '조발성 치매' 10년 새 3.6배 늘어
# A 씨(59)는 수년 전부터 기억력이 심하게 떨어졌다. 그래서 신경과를 찾아가니 알츠하이머 치매라 했다. 그때 그의 나이 55세. 도저히 믿기지 않았으나, 약을 먹기 시작했다.
# 2022년부터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를 받기 시작한 B 씨도 54세에 첫 진단을 받았다. 그는 “혼자 살면서 무료하고 또 스트레스가 많아 술과 담배에 의존해왔다”라고 했다.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이른바 ‘조발성(早發性) 치매’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2021년)에 따르면 2009년 1만7772명이었으나, 2019년 6만3231명으로 나타났다. 10년 사이 3.6배나 증가한 것.
물론 조발성 치매 환자는 전체 치매 환자(90만여 명)의 8%에 불과하다. 하지만 흔히 65세 이상 노인 인구에서 많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진 치매가 요즘 40∼50대로 발병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조발성 치매는 노인성 치매보다 진행이 빠른 편이다. 기억력 감퇴 같은 인지기능 저하뿐만 아니라 언어장애, 운동장애 등 임상 증상도 다양하다.
부산 온종합병원 뇌신경센터 배효진 과장(신경과)은 24일 “조발성 치매는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는 연령층에 발생하므로, 환자는 경력이 단절되고, 피부양자들은 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이 심각하다”고 했다.
조발성 치매는 알츠하이머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 전측두엽 치매, 혈관성 치매 등도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발생하는 알츠하이머는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뇌 기능이 저하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진단은 자세한 병력 청취와 함께 신경학적 검사, 심리 검사, 뇌 영상 검사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발병 시기부터 증상의 진행 속도, 동반 증상 등까지 두루 파악해야 한다. 특히 인지기능 저하 외에 다른 신경학적 이상이 있는지도 봐야 한다.
뇌 영상 검사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 영상(MRI), 자기공명 혈관촬영술(MRA)을 통해 뇌의 구조적, 기능적 이상을 확인한다.
“유전적 원인 크다”... 디지털 기기 과도한 사용이 치매 가속화
조발성 치매는 노인성 치매와 비교해 유전적 특징 뚜렷하다. 국립보건연구원은 “조발성 치매는 노인성 치매보다 유전적 특징이 뚜렷한 경우가 많다”며 “현재 돌연변이가 확인된 다섯 가계의 가족 코호트를 구성해 추적관찰 중”이라고 했다. 2021년부터 전국 31개 병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조발성 치매 환자 코호트를 구축해 운영해온 것.
이와 관련, 부산대병원 김은주 교수팀은 조발성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 유전자를 새로이 규명했다. 전두측두엽치매의 한 부류 환자(‘의미 변이 원발 진행 실어증’)로부터 기존에 밝혀지지 않은 유전인자 ANXA11의 새로운 병원성 변이(p.Asp40Gly)를 처음 발견한 것.
의미변이원발진행실어증은 말하거나 쓰인 각각의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어와 사물을 연결, 이름 기억 등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거나 기억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으며, 쉬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말을 이해하는 데도 힘들어한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거나, 예민해지는 성격 변화도 보이고, 방향 감각을 잃거나 길 찾는 걸 어려워하는 등 공간지각능력도 크게 떨어진다.
조발성 치매, 치료는 어떻게?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주로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나 NMDA 수용체 길항제 등의 약물을 사용한다. 인지 재활 치료, 작업 치료, 언어 치료, 심리 치료 등을 병행하기도 한다. 가족들에 환자를 돌보는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쳐 가족 간 유대를 강화함으로써 치료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조발성 치매를 예방하려면 평소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스트레스 관리 등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은 뇌의 기능을 저하하고, 디지털 치매와 건망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지양해야 한다.
한편, 온종합병원 배 과장은 “우리나라 치매 연구는 아직 노인성 치매에 집중돼 있어 조발성 치매는 기본적인 역학 특성과 인구학적 통계도 확립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 내 환자의 정확한 임상, 유전적 특성 파악을 통한 예방, 관리 대책 마련을 위한 연구기반 구축이 시급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