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환자, 의사 찾아 117km 떨어진 진주까지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가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23일)됐지만,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많았던 대학병원들에서 응급 진료가 늦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후 외래환자부터 수술 환자까지 도맡고 있는 대학교수들과 전문의들 피로가 누적되면서 점차 역부족 상태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26일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 19~23일 응급환자 이송이 지연된 사례는 총 27건. 그것도 빠르게 늘고 있다. 19일엔 1건에 불과했으나, 전공의 이탈이 본격화한 이후 20일 4건, 21일 12건, 22일 10건 등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응급진료 지연 늘고, 멀리 이송하는 사례도 늘어
게다가 부산에서 병원을 찾지 못해 경남 김해, 창원, 진주 등으로 이송한 예도 4건이나 된다. 중증의 응급환자들이 이전엔 경남과 울산에서 부산으로 몰려들었는데, 지금은 반대로 멀리 117km나 떨어진 진주 경상국립대병원까지 가야 하는 '역주행' 상황이 된 것. 치료 골든타임을 다투는 환자들 이송 시간이 2시간 넘게 걸린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같은 병원 안에서도 서로 다른 정반대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전공의들 빈자리를 간호사들이 메우고 있는 중환자실, 응급실 등에선 간호사들이 밤늦게까지 연장근무를 해야 하는 등 격무에 내몰리고 있다. 심지어 휴가 취소에 비상 대기 상황도 생기고 있다.
중환자실 응급실 간호사는 격무에, 필수의료과 간호사는 강제 휴가에
특히 의사들이 해야 할 여러 조치까지 PA(진료보조) 간호사들이 대신 떠맡는 ‘불법 진료’가 많아지고 있다. 약물 대리 처방부터 처치, 시술, 수술 보조 등. 하지만 이는 현행 의료법으로 따지면 ‘불법’이다. 지금과 같은 비상 국면에선 어쩔 수 없다지만, ‘현실과 불법의 경계’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셈이다. 사법당국이 언제 법의 잣대로 이들을 처벌하겠다고 나설지 알 수 없기 때문.
반면, 병상가동률이 뚝 떨어진 필수 진료과들에선 상황이 정반대다. 간호사들이 할 일이 없어 강제 휴가를 가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
이처럼 전공의들 이탈로 진료현장 상황이 심각해지자 부울경 광역지자체들은 일제히 시장과 도지사를 본부장으로 한 ‘비상진료대책본부’를 가동해 공공의료기관들 중심으로 밤늦게까지, 또 주말까지 연장근무를 하게 하는 등 대책에 부산하다.
하지만 정작 이를 소화해내야 할 공공의료기관들이 그 의료공백을 제대로 메울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예를 들어 부산의료원은 이번 의료대란이 오기 전부터 그로기 상태였다. 코로나19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진료하는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한때 맹활약했지만, 다른 병원으로 떠난 일반 환자들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병상가동률이 뚝 떨어졌다.
‘재정난’ 겪는 공공의료기관들, 의료공백 메울 수 있을까
그러면서 최근엔 매달 20억 원씩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상태. 연간 200억 원 이상 적자가 난다는 말이다. 부산시가 최근 60억여 원을 긴급 투입해 그동안 지급하지 못했던 인건비와 약이나 의료기기, 소모품비 등을 일부 결제했지만, 당장 다음 달 직원 월급 주기도 빠듯하다. 이렇게 병원 재정난이 심각해지자 의사와 핵심 간호사들까지 많이 떠났다.
부산보훈병원이나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경남의 마산의료원 등 다른 공공의료기관들 재정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부산시, 경남도, 울산시 등은 긴급 추경예산 편성 등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