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청학동, ‘도인’은 없고 ‘노노(老老) 간병’만…

온종합병원 김석권 성형센터장, 50년 만에 고향에 왕진 왔더니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여기 지리산 중턱 삼신봉(三神峰) 동쪽 능선 아래 해발 800m 고지에 가면 한 작은 마을이 있다. 이른바 ‘지리산 청학동(靑鶴洞)’. 예로부터 산신령들이 산다고 해서 ‘도인촌(道人村)’이라고도 불린다.

이곳 청학동 마을회관에 지난 주말, 임시진료실이 문을 열었다. 국제의료봉사단체 (재)그린닥터스(이사장 정근)와 부산 온종합병원(병원장 김동헌) 왕진봉사단이 이날 하루 동안 마을주민 200여 명을 진료한 것.

왕진봉사단에 합류한 김석권 성형센터장은 여기 가까운 하동군 고전면이 고향. 중학교까진 여기서 나왔다. 의사가 되고는 65세 정년퇴직할 때까지 동아대병원 교수로 재직했다. 선천성 구순구개열과 성전환 수술 명의로 이름도 날렸더랬다.

이제 그의 나이 73세. 거의 50여 년 만에 고향에 왕진을 온 셈이다. 마침 그가 살던 선소마을 주민 50여 명도 한 시간 남짓 차를 달려 여기까지 진료를 받으러 왔다. 일가친척에다 옛친구들도 있었다. 이제 이들 대부분이 80, 90대 고령이다. 다들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아픈 근골격계 질환까지 앓고 있어 영양제 등 수액주사와 물리치료를 병행했다.

김 센터장은 17일 오후,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향 집을 방문했다. 수년 전 형이 작고하고, 이제 고향 집에 홀로 사는 형수를 보기 위해서다. 허리가 안 좋다는 소식까지 들은 참이어서 함께 들른 물리치료사, 간호사 등과 함께 병세부터 살폈다.

김석권 온종합병원 성형센터장(사진 가운데)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오른쪽 첫번째는 김동헌 온종합병원장. [사진=온종합병원]
이미 형수도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 “여기저기 몸에 이상이 있지만, 마땅히 찾아갈 만한 의료시설이 주변에 없다”는 얘기에 더 힘이 빠졌다.

이에 앞서 봉사 첫날 16일 밤, 왕진봉사단은 아흔을 넘긴 두 할머니 댁을 차례로 방문했다. 그중 올해 94세 할머니는 치매에다 파킨슨병까지 겹쳐 7년 넘게 누워만 지냈다.

그 때문에 엉덩이 부위에 욕창이 매우 심했다. 성형외과 전문의 김석권 센터장은 즉석에서 욕창을 처치했다. 그동안 이 할머니를 돌보아온 이는 70대 중반의 아들과 60대 후반 며느리. 이들도 이제 온몸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노인환자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아야 하는 ‘노노(老老) 간병’의 현장이 멀리 있지 않았다. 아들 역시 최근 기력이 쇠잔해져 읍내 병원에서 영양제 주사라도 맞으려 했지만, 의사가 “고령에다 기저질환 탓에 위험하다”라며 주사를 놔주지 않았을 정도.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시대..."노노 간병은 이제 개인의 문제 아니다"

김 센터장은 아들 부부에 “모친을 요양병원으로 모실 것”을 권했다. 하지만 이들은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해 오신 어머니를, 우리가 좀 편하려고 남의 손으로 돌보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아들 부부에 수액주사라도 한 대씩 놓아주고 오는 수밖에….

김 센터장은 “해가 갈수록 농촌인 고향에 빈집이 늘어나고, 대부분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살아가고 있는 고향 주민들을 직접 만나보게 되니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웠다”고 했다.

그린닥터스 정근 이사장도 “저출산으로 인한 지방 소멸 위기,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야기되는 ‘노노(老老) 간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며 “지방 활성화를 위한 정부 정책에 ‘지방 의료-교육 살리기’가 중심의제로 등장해야 한다는 점을 왕진 봉사를 통해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윤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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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7*** 2024-02-21 09:01:31

      너무 좋은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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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r*** 2024-02-20 13:06:53

      마을주민분들에게 의료봉사하시는 모습이 멋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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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w*** 2024-02-20 12:32:41

      뜻깊은 일을 뜻깊은 장소에서 하시네요 왕진봉사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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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2e*** 2024-02-19 13:26:43

      의료시설 없는 곳에 왕진가는거 좋아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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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l*** 2024-02-19 09:14:09

      고향분들이 너무 좋아하셨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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