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메스 다시 잡은, 칠순 넘은 명의들
부산 온종합병원 김동헌 병원장, 배영태 유방암센터장
최근 60대 여성의 오른쪽 유방 보형물 재건 수술을 집도했다. “이젠 수술은 하지 않겠다”며 손에서 메스를 놓았던 그다. 올해 칠순이기도 하다.
부산 온종합병원 배영태 유방암센터장은 부산대병원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유방암 수술과 유방 재건술을 매년 300건 이상씩 해내던 역전의 노장. 특히, 유방 종양 절제술과 유방 복원술을 같은 수술방에서 동시 진행하는 ‘원스톱 종양 성형술’을 국내 최초로 시작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수술 생존율 90%에 육박하던 '유방암 명의'의 귀환
그의 손을 거쳐 간 유방암 수술 환자들은 5년 생존율이 89.3%, 10년 생존율이 85%나 됐다. 당시는 우리나라 평균이 각각 80%, 70%에 불과하던 시절. 세상이 그를 ‘유방암 수술 명의’라 부르는 이유가 다 있었다.
5년 전, 모교 부산대병원에서 정년퇴직한 그는 “이젠 편히 쉬며 여행이나 다니겠다”고 했었다. 그러다 외과 의사 구인에 목말라하던 울산의 한 중소병원에서 다시 흰 가운을 입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닥쳐온 병으로 이내 중단한다. 가족들도 말렸다. “병원 생활, 이젠 완전히 끝났다” 싶었다.
그러다 몸이 회복되던 시점, 이번엔 부산 온종합병원이 그를 애타게 찾았다. '배 교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또 인정하던 김동헌 병원장은 물론 정근 이사장 등 옛 동료들 강권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결국, 올해 초에 온종합병원 유방암센터를 맡았다.
다시 수술복을 입고 메스를 잡던 날, 이제 40대가 된 옛 제자(조영래 과장)가 함께 ‘콤바인 수술’(combine surgery, 합동 수술)을 해주었다. 훨씬 고난도 수술도 척척 해내던 그였지만 수술방에서의 긴장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나이에서 오는 체력 부담도 걱정거리였다. 게다가 얼마 전까진 투병 생활하던 환자 아니던가.
그래도 이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메스를 통해 전해오는 손끝 감각은 아직 살아 있었다. 2시간여에 걸친 수술을 모두 마치자 함께 했던 제자는 물론 수술방 간호사들까지 큰 박수로 ‘명의의 귀환’을 반겼다.
배 센터장은 13일 “환자를 돌보고, 수술실을 드나드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몹시 가슴 뛰게 한다”며 “특히 이 나이에 젊은 제자들과 콤바인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게 한편으론 자랑스럽고, 또 한편으론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이제 수술 파트너가 된 제자, 조영래 과장에게 자신의 수술 노하우를 고스란히 전수해줄 생각이다. 이에 정 과장은 “유방암 수술 분야에서 국내 최고로 평가 받는 스승과 함께 수술할 수 있다는 건 외과 의사로선 정말 특별한 복”이라며 “다른 의사들도 부러워하더라”고 귀띔했다.
'위암 수술 명의' 김동헌 병원장도 '위·십이지장 문합술' 거뜬히
노익장을 발휘하는 또 한 명의 낭만닥터가 있다. 위장관(胃腸管) 외과 전문의 김동헌 병원장. 그도 부산대병원 교수 시절 큰 수술만 1만 건 넘게 집도한 ‘위암 수술 명의’.
배 센터장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5년 전 부산대병원에서 정년퇴직했다. 당시만 해도 수술실을 완전히 떠나기로 하고, 요양병원에서 “조금 편하게 살아보려” 했다. “나이 든 외과 의사가 수술실을 드나드는 것은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지 않으냐”는 평소의 생각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위암 수술받았던, 수많은 환자들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수술 후속 진료나 이런저런 상담을 받으려는 이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던 것. 자기들 얘기 잘 들어주고, 자기들 고통에 늘 공감해주던 그의 넉넉함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요양'병원에서 ‘급성기'병원으로 옮겨 여러 환자들을 다시 돌보게 됐다. '병원장'이란 직함도 다시 받게 됐다. 부산대병원장(제22대), 부산시의료원장(제14대), 부산보훈병원장(제12대)을 두루 거친 그의 위상이 특별했던 덕분.
그도 지난해 50대 외과 과장과 함께 2건의 콤바인 수술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특히 60대 위암 환자의 상태는 상당히 까다로웠다. 결국, 위암이 퍼져있던 위의 아래쪽 60% 이상을 잘라낸 다음, 남아 있는 잔여 위와 십이지장을 바로(end-to-end) 이어주는 ‘위·십이지장 문합술’을 진행했다. 수술방 간호사들은 “3시간에 걸친 큰 수술임에도 병원장님 체력이 젊은 과장들에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다”고 놀라워했다.
대한위암학회 회장, 대한외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던 탓인지 김 병원장은 갈수록 위축돼 가는 우리나라 필수의료 분야를 걱정 어린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정부가 다시 밀어붙이고 있는 ‘의대 증원’이 필수의료 분야 활성화로 이어지길 기대하지만, 의료계 반발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
그는 “의대 증원이 필수의료 분야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단순히 의사 수만 늘리는 데 그쳐선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외과나 응급의학과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에 대한 (보험)수가를 높이고, 수술 결과에 대한 사법 리스크(risk, 위험)를 줄여주는 등 활성화 여건을 함께 갖추어야 그나마 정책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