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 절제에서 시작... 세계 학계 리더로
[Voice of Academy 12 - 학회열전] 대한남성과학회
1980년 1월 싱가포르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개최한 ‘남성과학(Andrology) 워크숍’에 세 명의 한국 의사가 참가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WHO 남성생식 연구계획 연구원으로서 정관절제술과 복원술에 대해 연구하던 이희영 서울대 교수가 이 영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지만, 의사들조차 ‘성의학’ ‘남성과학’ 등이 뭔지 잘 모를 때였다.
싱가포르 워크숍에서 선진 남성과학을 접한 이 교수와 연세대 이무상, 최형기 교수가 연구학회의 필요성에 뜻을 모았다. ‘Andrology’는 남성병학, 남성학, 남성의학 등으로도 번역되지만, 이미 ‘부인과학’이 존재했기에 ‘남성과학’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2년의 준비 끝에 1982년 1월 WHO 후원, 서울대 의대 인구의학연구소 주관으로 첫 세미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회장 이희영, 총무 최황(서울대 의대), 학술 담당 이무상 체제로 학회가 출범했다.
대한남성과학회는 정부의 인구계획에 따라 사실상 정관수술이 전부이던 때 해외 학계에 영향을 받아 싹을 티워 성의학, 전립선질환, 남성불임 등의 영역에서 세계 의학계의 고갱이 역할을 하고 있는 학회다. 모(母)학회라고 할 수 있는 대한비뇨의학회의 세부 학회 가운데 첫 깃발을 꽂은 학회이고, 모학회보다 먼저 국제학술지를 발간해 권위지로 성장시켰다.
이희영 이무상 최형기 김세철 등 초창기 학회 이끌어
초기엔 이희영 교수가 8년 동안 1대 회장을 맡으며 학회의 기틀을 세웠다. 이 교수는 6·25 전쟁 이후 한국 의사를 미국에 데리고 가서 교육시키는 ‘미네소타 플랜’의 장학생으로 비뇨의학을 공부하고 귀국했다. 당시 모국에선 가족계획사업이 출발했다. 이 교수는 미국 인구문제연구소로부터 정관절제술 연구비 1400달러를 받아 연구하며 서울대병원에 불임클리닉을 세웠다. 불임클리닉은 한때 불임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어서 지금은 난임클리닉으로 이름을 바꾸는 추세이지만, 그때에는 정관절제술로 불임을 돕고 때때로 복원술을 하는 곳이었다. 이 교수는 1964년 국내 최초로 정관복원술에 성공했는데,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성공 확률 60%였고 비용은 1만5000원이었다. 당시 특별한 날 먹던 불고기 백반 한 상이 100원, 설렁탕 한 그릇이 60원이었으므로 서민에겐 무척 부담스런 비용이었다.
“국내 남성과학은 1960~70년대 정관수술에서 1980~90년대 발기부전 환자의 보형물 삽입술과 주사제 치료 시대로 들어서며 기틀을 잡았고 2000년대 비아그라, 레비트라, 시알리스 등 발기부전치료제 시대를 거치며 급성장했습니다. 외국 치료제의 국내 도입을 위한 임상시험으로 연구역량을 쌓았고 국산 신약들이 나오면서 학회 주도의 임상시험을 하며 국제적으로 주목할만한 연구성과들을 낼 수 있었지요. 지금은 남성불임, 전립선질환, 배뇨장애 등 영역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손환철 대한남성과학회장(서울대 보라매병원 교수)
손 회장은 학회의 성장 요인으로 국제화를 첫손으로 꼽았다.
학회는 1985년 1월 국제남성과학회 총연맹에서 정회원국에 가입했고 이희영 회장은 이사로 선임됐다. 그해 4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제3차 국제남성과학회 학술대회에 이사국으로 당당히 참석했다.
1987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발기부전학회(Asia-Pacific Society of Impotence Research, APSIR) 창립대회에선 최형기 교수가 제 2대 회장에 선출됐고 1989년 서울에서 학술대회를 열기로 확정했다. 조직위원장 최형기, 사무총장 김세철 중앙대 교수 체제로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엔 8개국 239명이 참가해 학계의 눈길을 끌었다.
2003년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성기능연구학회(APSSIR)에선 김세철 교수가 회장으로 선출됐고 2007년 대회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 김세철 교수를 앞세운 대한남성과학회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성학회(ISSIR→ISSM) 총회에서 2010년 ISSM 학술대회를 서울로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학회는 이밖에 2005년 국제남성과학회(International Congress of Andrology, ICOA), 2007년과 2023년 아시아태평양성의학회(APSSM), 2011년 아태남성갱년기학회(APSSAM), 2016년 아시아-오세아니아 성학회(ASOF) 등 굵직한 국제학술대회를 잇따라 개최하면서 ‘코리아 남성과학’의 위상을 높였다.
국제학회에서 우리 의학자들의 기여도가 커지면서 안태영 울산대(2011), 김세웅 가톨릭대(2017), 문두건 고려대 교수(2023)가 아시아태평양성의학회 회장을 맡았고 박남철 부산대(2007), 문두건(2015) 교수 등이 이 학회의 사무총장으로 활약했다. 박광성 전남대 교수는 국제성학회의 집행위원(2012)에 이어 사무총장(2012)을 맡았으며 아태남성갱년기학회에선 박남철 교수(2009)가 회장을, 아시아남성갱년기학회에선 김세웅 교수(2019)가 사무총장, 박현준 부산대 교수(2021)가 회장을 맡았다.
국내외 발기부전약 임상 통해 역량 향상
“우리 학회가 국제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선배 교수님들의 노력 덕분이었지만 제약업의 성과도 한 몫 했습니다. 1998~99년 비아그라 시판을 앞두고 남용에 대처하기 위해 보건당국과 언론에 적극 홍보전을 펼쳐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토록 했지요. 발기부전치료제가 한의사와 비뇨기과 의사를 죽였다는 말도 있지만, 글로벌 제약사와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내 도입을 위한 임상시험을 전개한 것이 학회가 학문적,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또 2000년대 중반부터 동아제약의 자이데나, SK케미칼의 엠빅스 등의 신약이 잇따라 나오면서 우리만의 연구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지요.” -손 회장
학회 학술지의 적극적 국제화도 학회의 위상을 올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2008년 문두건 교수 중심으로 《The Korean Journal of Andrology》란 이름으로 학회지 영문화를 추진했고, 2012년 박현준 교수 주도로 이름을 《World Jornal of Men's Health》로 바꾸고 과학논문색인(SCIE) 등재에 성공했다. 해외 대가들의 리뷰 논문을 유치하고 다양한 연구성과를 게재해 한때 인용지수가 6을 넘나들었으며 지금도 4~6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학회가 바깥으로만 향한 것은 아니었다. 국내 비뇨의학과 개원의들을 위해 1994년부터 ‘외래에서의 발기부전증 진단과 발기유발제 자가주사법,’ ‘성기확대술, 필요한 수술인가,’ ‘남성과학 관련 수술의 합병증과 대응책’ 등 심포지엄을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비뇨의학과 의사들을 위해 《남성성기능장애, 남성불임증 진료지침 핸드북》(1997년), 《남성과학》 교과서(2003년) 등을 펴냈으며 비뇨의학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성에 관심을 가진 의료인들을 위해 《건강한 성 행복한 삶》을 펴내기도 했다.
남성과학회는 1990년부터 의사들뿐 아니라 자연과학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으며 1997년 학술대회에서 경기대 생물학과 계명찬 교수에게 연구비 수여를 시작으로, 기초연구자들의 연구를 지원해왔다.
또 대한여성건강연구학회, 대한전립선레이저연구학회, 대한비뇨기호르몬연구학회, 대한비뇨생식기통합기능의학연구회 등 세부학회의 활동을 지원하며 연구 영역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
대중과의 거리를 가까이 하면서 ‘남성 건강’에 기여하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2004년엔 11월 한 달을 대국민 홍보기간으로 정하고 ‘남성건강 캠페인-자신만만 중년만세’를 슬로건으로 건강 캠페인을 펼쳤다. 비뇨의학과 전문의 9명이 참가한 무료 연극 ‘다시 서는 남자 이야기’를 공연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엔 한 달 동안 새벽 발기 테스트를 앞세운 남성건강 캠페인을 전개했고 전문의 5명이 참여한 ‘배꼽 아래 이상 무’ 공연도 열었다.
2006년에는 홍서범 조갑경 부부 모델로 ‘성공부부 캠페인’을 펼쳤고, 이듬해부터는 ‘실버리본 캠페인’을 전개하며 전국에서 시민강좌를 개최해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일반인을 위한 《남자가 성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펴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