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성 유기오염 물질도 당뇨병 일으킨다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27: Kim HY, Kwon WY, Kim YA, Oh YJ, Yoo SH, Lee MH, Bae JY, Kim JM, Yoo YH. Polychlorinated biphenyls exposure-induced insulin resistance is mediated by lipid droplet enlargement through Fsp27. Arch Toxicol. 2017;91:2353-2363
■사람: 이덕희 교수(경북대 의대), 김혜영 박사(여섯 번째 연구교수)
■학문적 의의: POPs에 의한 인슐린 내성 기작을 처음으로 밝힌 논문
어느 날, 연구과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지원자인 경북대 이덕희 교수의 발표를 들었다. 이 교수는 지구상에 살포된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s)이 ‘제2형 당뇨병’을 포함한 대사성 질병을 유도한다는 역학적 증거를 제시했다. 발표 내용은 나에게서 불꽃을 일으켰다.
환경호르몬에 대한 시사 상식 정도만 알고 있던 나는 해당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관련 학술논문들을 읽고 충격은 배가 되었다. 지구에 살포된 지 100여 년 지난 합성화학물질들이 가져온 우울한 문명에 대한 근심이 자랐다. 충격도 잠시, POPs에 대한 세포 분자생물학적 연구가 부족하다는 데 주목하게 되었다.
이전의 실험연구들은 간단한 연구로 원인 결과를 밝혔을 뿐이었다. 많은 역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 이전 단 세 건의 실험에서 POPs가 인슐린 내성을 일으키는지를 확인한 실험 연구가 이루어졌을 뿐이었다. 현대 과학으로 입증이 지연되니 역학자들과 환경과학자들만 외칠 뿐 주류 의학자들에게는 외면을 받고 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김혜영 박사에게 POPs가 인체 대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 연구에 즉시 돌입하자고 제안했다. POPs에 의해 유도되는 인슐린 내성의 작용원리를 밝히기 위해 수행된 본 연구에서 김혜영 박사는 세포분자생물학적 방법을 사용해 POPs가 Fsp27을 통해 인슐린 내성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를 얻었다.
실험을 통한 자료로 내 해석을 입증하기 위한 ‘직접 증거’도 수집했다. 직접 증거란 유전자 조작이나 약물 투여를 통해 내가 관찰한 현상에 관여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유전자를 삭제하고 해당 현상의 상실을 관찰하거나 유전자를 과발현시켜 해당 현상의 증강을 관찰하면 직접 증거가 된다.
과거 POPs 연구자들은 이런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 우린 새로 얻은 자료들로 이번 연구의 가치에 자신감을 얻었다.
'독성학' 연구인가, '당뇨병' 연구인가
나는 즉시 당뇨병 최고 권위 잡지 ‘당뇨'(Diabetes)에 논문을 제출했다. 심사위원들은 논문 자료들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편집자는 “인슐린 내성과 높은 혈중 포도당 농도가 당뇨병을 정의하지 않는다”며 논문 게재를 거부했다.
당뇨병 주류 연구자들은 대부분 환경 독성에 의한 인슐린 내성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 논문 역시 주류 의학자들의 저항을 받았다. 그들에 의하면 내 연구는 독성학 연구일뿐 당뇨병 연구가 아니었다.
나는 단일화합물 투여 연구를 인정하는 독성학 연구 최고 잡지 ‘아크톡시콜’(Arch Toxicol)에 논문을 제출했다. 그리곤 독성학적 가치를 인정받는 데 우선 만족했다.
비록 독성학 잡지에만 실렸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POPs가 당뇨병을 유도한다는 본 논문의 주장은 당뇨병을 설명하는 현재의 패러다임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보탰다. 당뇨병 연구에도 과학 혁명의 열기가 꿈틀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