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 역사...탁월한 시력교정술에 외국의사들 '엄지척'
[Voice of Academy 10- 학회열전] 대한안과학회
서울성모병원 안(眼)센터에 들어서면 로비에 특별한 액자가 걸려있다. 2009년 2월 16일, 이곳에서 선종(善終)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 친필 휘호, '눈은 마음의 등불'이다.
선종 당시, 추기경이 남긴 것은 묵주 1개와 안구 2개뿐. 그런데, 왼쪽 안구 각막이 바로 그 다음날 경북 안동의 한 시민에게 이식됐다. 그는 눈을 떴다. 추기경은 갔어도 세상을 때론 온화하게, 때론 날카롭게 꿰뚫어보던 그의 눈은 암흑 속을 헤매던 이에게 '등불'이 되어 새 세상을 안겨주었다.
그의 안구 기증은 1978년 천주교 성체대회 때 이미 약속돼 있었던 것. 신체 기증에 대한 거부감이 사회적으로 클 때였지만, 솔선수범을 몸소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등불'이 된 김수환 추기경의 안구 기증
추기경의 선한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대한안과학회도 각막 기증 운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러다 2005년 4월, 부산에서 열린 춘계학술대회에서 안과 의사들 750여명의 ‘각막기증서약서’를 지금의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에 전달한다. “전 국민이 각막 기증에 참여하는 그날까지 안과의사가 먼저 각막 기증을 시작하자”는 취지였다.
눈은 안과 의사들에겐 정말 특별하다. 탁구공(40mm)보다도 작은 직경 24mm 안구(眼球)를 그 어떤 것보다 크게 본다.
각막 등 눈 표면 질환을 전공하는 외안부 전문의가 있는가 하면 안구 내부 망막과 포도막을 주로 보는 전문의, 안압과 연관된 녹내장만 전문으로 보는 이도 있다.
또 선천성 안질환이나 사시를 진료하는 사시소아, 눈 주위 성형을 전문으로 하는 성형안과, 노안 및 백내장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백내장 굴절 분야 전문의 등 그 작은 눈을 더 깊게, 또 세세하게 나눈다.
안과 의사들에겐 그 세세한 분야 하나 하나가 '삶의 현장'이면서도 눈을 둘러싼 숱한 질환들을 찾아내고 치료하는 데 인생을 건, ‘의술의 현장’이기도 하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란 얘기가 가슴 절절히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중 각막 이식 수술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역사는 꽤 길다. 가톨릭대 김은철 교수는 “해방 직후인 1949년부터 각막이식 수술이 시작됐다”고 했다.
“1962년, 서울대에 ‘안(眼)은행’이 조직되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어요. 1980년에는 인공 각막을 이식하는 수술로 나아갔고요. 지난해까지 시행한 수술만 모두 1천여 건에 이릅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결과이기도 하죠.”(김은철 교수)
한국실명예방재단과 함께 진행한 개안(開眼)수술도 특별하다. 1973년부터 무려 50여년간 진행해온 장기 프로젝트. 지난해까지 노인 7만9000여명을 비롯해 모두 9만2000명 넘게 가족의 얼굴을, 또 새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줬다.
기초 진료과목이자 필수의료를 다루는 기간(基幹)학회인 대한안과학회는 올해 77주년을 맞는다. 학회는 서울대 윤봉헌, 연세대 최재유, 고려대 김희준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1947년 11월 1일 발족했다.
윤봉헌 최재유 김희준 주춧돌...숱한 인재 배출
그 때 동참했던 이들이 윤원식, 최창수, 손정균, 이명서, 홍승민, 김선준 교수 등. 그 중 윤원식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판 ‘안과학’ 교과서를 편찬한 주인공. 이들 20여명이 파운더스(founders)였던 셈이다.
그 후에도 안과학회엔 숱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학회 태동기에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준 고(故) 윤봉헌, 홍승민, 김희준, 한천석 교수 등을 후학들은 기억한다.
또 서울성모병원을 ‘안과 성지(聖地)’로 만든 가톨릭대 고 이상욱 교수, 미국 안과의사로 국내 의사들의 미국 연수를 도와 세계 흐름에 눈 뜨게 해준 고 신동호 교수(웨인주립대), 학회 뿌리 중 하나인 ‘부산안과지회’ 토대를 만들고 후학들을 키운 고) 이송희 교수 등도 학회 역사 속에 지금도 존재한다.
이들의 헌신을 밑거름 삼아 현재는 4900여 회원을 보유한 매머드 학회로 커졌다. 전공의, 준회원까지 두루 참여한다. 전국에 18개 (지방)지회가 있고, 세부 전공분야 별로 12개 연구회도 있다. 대한검안학회가 ‘작은집’으로 또 하나의 축. 개원의들 중심의 대한안과의사회 역시 학회의 중요한 파트너다.
학회는 1980년대 들어 해외로도 눈을 돌린다. 자신감이 붙었다는 얘기다. 한국의 의료기술과 임상연구 결과를 알리고, 더 나은 선진 의술을 배우고 익히자면 국제학술대회만큼 효율적인 게 없다.
1982년 ‘제1차 한일안과학회’를 시작으로 동아시아를 겨냥한 국제화에 시동을 걸었다. 1989년엔 ‘아시아태평양 안과학술대회’(APAO)도 유치했다. 처음 해보는 대형 국제행사. 다들 입술 터져가며 준비한 끝에 외국에서 800여 명, 국내에서 500여명 등 무려 1300여명이 참가하는 성황을 이뤄냈다.
세월이 쌓여 2007년 4월부턴 ‘한중일 안과학회’를 세 나라가 교대로 개최하는 등 동아시아 주역으로 떠올랐다. 기존 한일안과학회에 중국 의사들까지 참여하면서 규모가 확 커진 것.
서울대병원 현준영 교수는 “지난해 11월 추계안과학회’와 함께 열린 ‘제16회 한중일안과학회’엔 무려 2500여 안과 의사들이 서울을 찾았다”고 했다.
“중국, 일본은 물론 대만, 태국, 싱가포르, 홍콩,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의사들이 매일 여러 세션들에 참여해 강의 듣고 토론하곤 했죠. 거기에 미국, 호주, 프랑스, 독일 의사들까지 있었고요. 당시 학회장에는 매일 1000명 이상의 안과 전문의들이 북새통을 이뤘습니다.”(현준영)
한국 의사들의 시력교정술 노하우는 이들이 감탄해 마지 않는 것들 중 하나다. 1990년대 초반에 처음 국내에 도입됐지만, 그 사이 라섹, 라식, 스마일라식, 안내렌즈삽입술 등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전 세계에서 각막굴절수술에 사용되는 레이저 수보다 우리나라 레이저 수가 더 많을 정도.
한국인들의 타고난 손재주와 명석한 두뇌의 합작품이다. 임상 경험과 정보까지 풍부하다. 그래서 외국 의사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 하고, 가장 오고 싶어하는 학회가 한국 학회이기도 하다.
녹내장 연구 등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 잇달아
그런 흐름 속에서 세계 안과학계가 주목하는 연구 성과들도 줄줄이 나오고 있다. 유전성 망막질환의 유전자 치료부터 근시의 작용원리와 치료, 건성안의 진단 방법, 다초점 인공수정체의 임상결과 비교, 아시아인에 특별한 근시성 녹내장 연구 등은 세계 주요 저널에까지 실렸다.
성균관대 최철영 교수는 “우리의 최소침습형 녹내장 수술(MIGS)과 성형안과 수술, 개인 맞춤형 백내장 및 노안교정술에 아시아가, 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면서 "인공각막을 포함한 줄기세포 치료나 이종(異種) 각막이식, 황반변성이나 건성안의 새로운 약제 개발 등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이는 세계적인 최첨단 연구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국내 난치성 안질환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 및 유전자 치료,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영상 진단 프로그램 및 안과 의료기기의 개발, 거기에 다양한 바이오의약품 개발 등까지 구미와 우리나라 사이에 시차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한안과학회가 이런 학술활동 외에 1년 중 가장 역점을 두고 준비하는 게 있다. ‘눈의 날’ 행사다. 1956년 처음 제정했을 때는 11월 1일. 안과학회 창립기념일이기도 하다.
그러다 1973년부터 의료 관련 여러 행사가 ‘보건의 날’과 합해지면서 맥이 끊겼다가 1989년 ‘눈의 날’을 부활시키면서, 웃는 눈 모양을 상징해 11월 11일로 변경했다. 이후 2017년부터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눈의 날’(World Sight Day)에 맞춰 10월 두번째 목요일로 기념하고 있다.
2004년부터는 ‘눈 사랑 주간’으로 길어졌다. “눈은 또 하나의 생명입니다” 캠페인이 시작된 것. 인구 고령화 추세로 유병률이 빠르게 증가하는 ‘3대 실명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안저검사’가 대표적이다. ‘안저검사, 눈 건강의 시작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5년 넘게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
이종수 학회 이사장은 “노인성 안질환인 백내장, 황반변성, 녹내장, 당뇨망막병증, 안구건조증 등의 유병률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3대 실명질환’은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단시간에 쉽고 빠르게 촬영해 바로 알 수 있는 안저검사가 가장 효율적”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