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서도 일하신 대학자, 한성수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23: Kim HY, et al. Cancer Lett, 2014
■사람: 고(故) 한성수(동아대 의대 해부학교실), 김혜영(연구교수)
■학문적 의의: Sorafenib의 간암 치료 효과 기작 연구

십여 년간 한성수 교수님과 해부학교실 동료로 지냈다. 한 교수님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에 유학하여 수학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미시간대학에서 교원에 임용되어 정교수까지 지냈다. 전자현미경을 이용하여 연구한 저명한 해부학자다.

그는 1987년, 동아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원에 임용되었다. 주된 임무는 의무부총장으로 의대와 대학병원 기초를 다지는 일. 그러나 학내 민주화 과정에서 대학 내 파워게임 희생자가 되어 보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해부학 교원으로만 십여 년 재직했고, 나는 해부학 동료로 그분과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분과의 시간은 독특한 경험으로 점철되었다. 저명한 과학자일 뿐 아니라 교육철학 박사과정도 밟으신 그의 식견과 경험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학자의 식견과 경험은 내게 큰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 교수직을 놓고 귀국한 후 겪은 불행으로 초래된 불편한 감정을 오롯이 내가 감당하게 되어 사실 힘들었다. 어떤 날은 하루 여덟 시간 교수님 푸념 상대가 되어 드렸다.

30대 중 후반, 나는 내 일에 매여 여유가 없을 때였다. 교수님 대화 상대가 되어드리는 역할이 때로는 고역이었다.

"교수는 수영장, 학생은 거기서 마음껏 헤엄치게"

하지만 당시 교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배운 연구 수행 관련 원칙 하나 때문에 나는 지금도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그는 “대학원생을 처음 만나 대학원생의 희망과 (지도)교수의 희망을 조화시켜 연구 방향을 정해 나가는 때가 연구 성패를 좌우한다”고 했다. “교수는 범위를 정하고, 구체적인 방향은 학생의 뜻에 맞춰 주라”는 원칙도 가르쳐 주었다.

그가 활발히 연구할 때에는 DNA 구조가, 또한 단백질이 합성되는 기작이 밝혀질 때였다. 교수님은 “단백질 합성이라는 큰 수영장을 마련해 두고, 여러 방향의 연구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그 수영장 안에서 마음대로 헤엄치도록 하라”고 했다.

그의 이런 가르침은 내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나는 내게 다가오는 모든 학생에게 ‘세포사’라는 내 연구 저수지 범위 내에서 자신의 관심 주제를 연구하도록 인도하였다.

암(癌), 눈, 관절염, 면역을 연구하고 싶은 학생들은 내게 와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세포사에 맞추어 연구하였다. 나는 세포사라는 분야의 최신 지견을 저수지에 계속 더해가고,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 주제를 세포사 저수지에서 헤엄치며 결과를 내었다. 내 연구는 이런 틀을 유지하며 지속하였다.

본 연구 역시 같은 원칙에서 수행되었다. 내 실험실 여섯 번째 연구교수, 김혜영 박사는 HBx 단백에 의한 지질 축적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내 방에서 연구를 수행하게 되면서 HBx를 가지고 들어와 세포사라는 저수지에서 헤엄을 쳤다.

김 박사는 먼저 HBx가 간암 세포사를 막아 항암치료효과를 방해한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그리고 소라페닙이라는 항암제는 HBx 단백이 세포사에 저항하는 길을 우회하여 간암 치료제로 효능을 발휘한다는 사실도 밝혀 본 논문을 간행하였다.

대학자 한성수 교수님은 고인이 되어서도 내게 남긴 유산으로 여전히 일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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