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 켜진 보훈 의료
[박효순의 건강직설]
국가유공자의 복지 및 의료를 책임지는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하 공단)에서 최근 해프닝에 가까운 이사장 취임 관련 소동이 빚어졌다. 12월 1일 자로 부임하려던 이사장이 취임도 못 해보고 경질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공단은 감신 이사장이 지난여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물러날 의사를 밝힌 이후 후임 이사장 공모가 진행됐다. 8월 29일 공고가 나고, 9월 17일 접수가 마감되어 새 이사장 후보가 선정됐다. 11월 말경에 공단 및 산하 보훈병원 등에 새 이사장 약력이 내부적으로 공고됐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사장 취임이 취소되고, 결국 다시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달 24일 현재 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은 공석 상태로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 중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이사장 취소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공단 임원추천위원회는 이사장 공모 절차를 거친 끝에 ‘공단에서 잔뼈가 굵으며 2019년까지 주요 핵심 간부를 역임한’ A씨를 임기 3년의 새 이사장으로 낙점했다. 그런데 취임일인 12월 1일이 되기도 전에 A씨를 이사장으로 공식화한 약력 등의 문건이 산하 병원 등에 공지됐다. 게다가 A씨와 가까웠던 공단 내부 인사들이 파벌을 조성하고 장관의 결재가 나기도 전에 취임식을 준비하고 관사까지 정비하면서 부산하게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와중에 내부의 반발이 생기면서 임명이 전격 보류됐다는 것이다.
공단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국가유공자의 진료와 재활 및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이다. 7000여 명의 임직원들이 종사하며 중앙보훈병원 등 전국 6개 보훈병원과 8개 보훈요양원, 2개 요양병원, 보훈교육연구원, 보훈원, 보훈재활체육센터, 보훈휴양원 등을 운영한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번에 공단 이사장 취임 불발 해프닝이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한국의 보훈 의료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깊이 따져볼 것도 없이 일단 새로운 리더십의 출발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중앙보훈병원 의사들은 보훈 의료체계의 정상화를 위해 의료 현장 경험이 있는 의료 경영인을 이사장으로 임명해 달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중앙보훈병원 전문의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지난 6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보훈처가 보훈부로 승격한 후에도 보훈 의료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공단이 전국 6개의 대규모 공공병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를 실제로 관리하고 운영, 감독할 주체인 보훈공단의 역량은 매년 공단 평가가 D, E 등급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이 낮은 상황"이라며 "최소한 각 병원들이 내는 의견을 이해할 수 있는 식견을 갖고, 유공자 진료를 알며, 현장을 경험한 의료 경영인을 공단 이사장으로 임명해 주길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한국의 보훈 의료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국가유공자 환자의 감소 추세가 계속되면서 일반 공공분야 유공자와 일반인을 위한 진료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코로나19 대처에서 공공병원의 역할을 잘 수행했고, 여러 해묵은 문제점들도 많이 개선했다. 하지만 유공자 진료만으로는 이제 성장은 고사하고 현상 유지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새 이사장뿐 아니라 이사진에도 의료를 아는 전문가들을 영입해야 하는 ‘필요충분한 이유’ 아래 공단은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