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똑! 누군가 내 방을 노크한다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20: Lee JS, Kim HY, Jeong NY, Lee SY, Yoon YG, Choi YH, Yan C, Chu IS, Koh H, Park HT, Yoo YH. Expression of αB-crystallin overrides the anti-apoptotic activity of XIAP. Neuro Oncol. 2012;14:1332-2345

■사람: 이지숙(박사과정)
■학문적 의의: αB-crystallin이 XIAP 항세포사멸기능에 미치는 영향

문을 열고 들어온 동료는 “몸이 아프니 연구진에서 빼달라”고 청하였다.

똑! 똑! 똑! 다음 동료는 “열심히 연구하였지만,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똑! 똑! 똑! 다음 동료는 “매우 중요한 단서를 얻었으니 좋은 잡지에 논문을 내고 싶다”며 “중간평가 이전에는 논문이 나올 수 없다”고 말하였다.

집단연구사업 중간평가를 앞두고 동료들의 연구 진행을 점검하는 날이었다. 동료들은 내게 한결같이 해로운(?) 소식을 가져왔다.

타악기 소리 위에 내 인생을 얹어 훑어 나간 자전적 에세이 소설 ‘드럼이야기’(예솔, 2022)에는 동료 연구자들 노크 소리를 센터장의 ‘운명’을 직시하라는 울림으로 들었던 이야기가 적혀 있다. 내게 그 노크 소리는 “리더이니 책임을 지라”는 아우성으로도 들렸다.

동료들뿐 아니다. 대학원생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내 문을 두드린다. 똑! 똑! 똑! 이번에는 이지숙의 노크 소리가 분명하였다.

며칠 동안 나는 조마조마하게 이 노크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석사 학위를 받은 이지숙은 박사과정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쉽게 내리지 못하였다. 그녀는 내게 와서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녀가 고민하는 동안 나는 조마조마하였다.

실험실은 대학원생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야 유지될 수 있다. 선배가 후배를 지도하면서 실험이 계승되어야 실험실이 제대로 돌아간다.

그런데 의학과 졸업생들은 대부분 임상으로 진출하기 때문에 의대 기초의학 실험실에는 타과 출신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각기 다른 과에서 모이기에 대학원생들이 대(代)를 이어가며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마침내 내 방의 문이 살며시 열렸다. 이지숙의 표정이 밝았다. 안도하였다.

박사과정에 진학한 후 이지숙은 석사과정보다 더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였다. 이지숙은 수정체 단백인 알파크리스탈린B를 발현하는 뇌교세포암을 사용하여 박사학위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지숙은 세포사 저항에 주된 역할을 하는 XIAP이 이 세포에서는 저항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밝혀내었다.

이지숙이 박사학위를 졸업하며 지도교수와 한 컷 찍었다. [사진=유영현 제공]

“지금 이지숙의 그 논문이 나왔다면 ‘한빛사’ 논문 저자는 충분히 되었을 것”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 하지 않는가? 굴러 들어온 단백인 알파크리스탈린B가 세포 저항에서 평소 주된 역할을 하고 있던 XIAP을 무력화시킨다는 해석이 가능한 자료였다. 이처럼 생명현상은 그 자체로도 놀라운 은유이다.

흥미롭고 유익한 정보로 가득한 이 논문으로 이지숙은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현재 기준으로 이 논문이 게재된 잡지는 인용지수가 10을 넘었다. 이지숙 박사가 지금 배출된다고 가정하면, 이지숙은 영예로운 ‘한빛사’(한국을 빛내는 사람들) 논문 저자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으론 아쉽다.

올해 2월 말로 대학 실험실을 정리하였다. 대학원생들은 학위과정을 마치고 떠났고, 방을 지키던 연구원 포닥(박사후과정)들도 모두 떠났다. 집단 연구를 마친지도 오래되었다.

그래도 가끔 누군가 내 방문을 노크한다. 똑! 똑! 똑! 지금의 노크 소리는 연구와 관계있을 리 없다. 아마도 택배 소리일 것이다. 그래도 습관처럼 긴장하면서 머리를 들어 문 쪽을 바라본다.

    에디터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 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0
    댓글 쓰기

    함께 볼 만한 콘텐츠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