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산악 생태계가 위기인데 우리는?
[이성주의 건강편지]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빈 산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저 아득한 산
빈 산
한국 현대사의 그릇이 담지 못한 ‘큰 산’ 김지하의 절창 ‘빈 산’은 황폐화한 시대정신을 노래했겠지만, 이 시가 울린 1970년대만 해도 실제로 우리나라 많은 산들이 벌거숭이산이었고 민둥산, 독산(禿山)이었지요. 국토가 6.25 전쟁의 화마에 불타버린 데다가 화전농업까지 사라지지 않았으니…. 이 벌건 산들이 푸르게 변한 것은 ‘한강의 기적’ 못지않은 기적이 아닐까요?
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늘이 ‘국제 산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국제 산의 날은 2003년 UN 총회에서 소중한 산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지속가능한 산지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정한 날입니다.
바다가 생명의 기원이라면, 산은 인류의 젖줄이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와 도시에 살지만, 아직도 세계 인구의 15%가 산에서 삽니다. 인류 절반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담수를 공급합니다. 수많은 의약품의 보고이며 양봉업, 낙농업 등의 터전입니다. 보리, 감자, 옥수수, 수수, 토마토, 사과 등이 산에서 유래해 다양화됐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산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에베레스트산도 플라스틱으로 오염되고 있고 각국의 산이 공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가까스로 보존된 생물 종이 파괴될 위험에 처한 곳을 뜻하는 ‘생물다양성 핫스팟’의 절반이 산입니다. 또 ‘국제기후변화패널’에 따르면 각국 산에 사는 생물의 84%가 멸종 위기에 있다고 합니다.UN에서는 국제식량농업기구(FAO)가 이 날을 주관하는데 올해 슬로건은 ‘산악 생태계 복원(Restoring mountain ecosystems)’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가까스로 살린 산악 생태계가 손상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우리나라에선 박정희 정부가 산림법을 제정하고 산림청을 출범시켜 대대적인 산림녹화사업을 펼쳐 20여년 동안 100억 그루 나무를 심어 민둥산을 숲이 우거진 산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공해방지법, 환경보전법을 만들고 그린벨트를 지정해서 국토의 65%를 푸르게 바꾸었지요. 세계에서 부러워할, 어떤 허물도 덮을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20년 말 기준으로 산림 면적이 629만ha로 국토의 62.6%를 차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산림률에서 핀란드(73.7%), 스웨덴(68.7%), 일본(68.4%)에 이어 4위입니다. 하지만 10년 전 637만ha, 63.7%이 비해선 줄었고, 그러께와 지난해에도 산림 면적이 시나브로 줄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산림이 줄면 공기 악화와 홍수, 산사태 등의 재해 증가 등이 불을 보듯 뻔하지요. 정부가 민간을 위한다는 미명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산림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서 대한민국, 나아가 인류 미래를 위해서 숙고해야 할 이유입니다.
지난해 국제 산의 날 슬로건이 ‘지속가능한 산악관광’이었는데, 등산에도 해당하겠지요? 산을 찾는 것은 심신의 건강에 좋지만, 겸허해야겠습니다. 산에는 단 하나의 쓰레기도 버리지 말고, 제발 가지 말라는 곳은 가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가 산을 우습게 여기면, 우리의 후손은 ‘빈 산’에서 울지 모릅니다. 위대한 산, 아름다운 산에 대한 명언 세 개를 음미하며 어떻게 산을 사랑할지도 생각하는 ‘국제 산의 날’이 되기를….
○인간은 결코 산을 정복하지 못한다. 우리는 잠시 그 정상에 서 있을 수는 있지만 바람이 이내 우리의 발자국을 지워 버린다. -알린 블럼(미국의 등산가)
○계곡에서는 안 보일지라도, 모든 산에는 길이 있다. -시어도어 로스케(미국의 시인)
○지혜로운 사람은 (강과 같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지자요수 知者樂水, 인자요산 仁者樂山). -공자
1938년 오늘은 프랑스 가수 앙리코 마샤스가 알제리 콩스탕틴에서 태어난 날입니다. 앙리코 마샤스의 노래 가운데 우리나라에선 ‘사랑의 발라드’로 알려진, ‘이 모든 이유로 당신을 사랑합니다(Pour toutes ces raisons je t'aime)’ 준비했습니다. 유튜버 mono 님의 페이지에서 링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