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학술지, 단숨에 세계 권위지 만든 전략은?

[Voice of Academy 4-학회열전] 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

2015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24회 세계알레르기학회(World Allergy Congress)에서 이혜란 교수(한림대 성심병원)가 발표를 하고 있다. 알레르기 분야 학술대회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71개국에서 3000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했다.[사진=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
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대소알호·이사장 김현희)는 ‘국내용이 아니라 국제용’이라는 평가를 받는 학회다.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와 공동으로 발간하는 영문학술지 《AAIR》(Allergy, Athma and Immunology Research)는 영향력 지수(IP)가 4~5점을 오르내리는 국제적 학술지다. 2021년 이 학회가 주관한 아시아태평양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APAPARI)에는 아시아 오세아니아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각국에서 1500여 명이 참석해 북적댔다. 매년 두 번의 학술대회에 외국 학자들이 참가하며, 일본소아알레르기임상면역학회와 서로의 학회에 ‘대표선수’를 보내는 교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권위있는 해외 학회에 참여하는 의사들의 비용을 지원하고, 매년 춘계학술대회에서는 전임의가 영어로 발표하게끔 하고 있다.

국제 영향력 자랑하는 영문학술지 발간

대소알호의 역사에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있다. 이 학회는 1987년 4월 17일 국립의료원 스칸디나비아클럽에서 초대 회장을 맡은 이 병원 손근찬 박사부터 막내 편복양 순천향대 의대 교수까지 26명이 모여 ‘소아알레르기연구회’를 창립하면서 닻을 올렸다. 국립의료원은 6.25 전쟁에 파견된 북유럽 3국의 의료인력을 붙잡아 1958년 개원한, 당시 최고의 병원. 스칸디나비아클럽은 원래 의료사절단 전용 식당으로 문을 열었다가 나중에 일반인에게도 공개돼 뷔페요리를 선보인 레스토랑이다. 이 역사적 장소에서 ‘국제적 학회’의 봉오리가 움튼 것이다.

“앞서 1972년 대한알레르기학회가 창립할 때 소아과 의사는 서울대 의대 문형로 교수, 고려병원 김종진 박사와 나 3명뿐이었어요. 1984년 연세대 이기영 교수, 계명대 신동학 교수, 한림대 윤혜선 정우갑 교수 등과 함께 일본알레르기학회에 갔다가 그곳 소아알레르기학회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어요. 미국 UCLA 의대에서 더글라스 하이너 교수의 가르침을 받은 이상일 당시 인제대 교수가 우리도 학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서울백병원 앞 경양식 레스토랑 ‘파인힐’에서 만나 연구회 창설을 의논했지요.” -고 손근찬 박사

손 박사는 노르웨이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오슬로대어린이병원의 셀 아스 교수 연구실에서 연수했는데 스승은 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로 참전해 전투 중 한쪽 눈을 잃었지만 남은 눈으로 진료와 연구에 매진한 대가. 이상일 교수의 스승 하이너 교수는 6.25 전쟁 때 군의관으로 참전한 소아 알레르기 분야의 대표적 학자였다.

당시 일부에서는 대한알레르기학회와 떨어지면 안된다고 반대했지만, 알레르기학회 강석영 회장이 창립기념 심포지엄에서 거금 30만원을 쾌척하면서 갈등의 싹을 잘라주었다.

연구회는 처음부터 세계로 눈을 돌렸다. 첫해 심포지엄에는 일본 교토대의 미카와 하루키 교수를 초대했고 1988년 학술대회에선 하이너, 아스 교수와 영국 킹스칼리지의 클라이브 페이지 교수 등 해외 대가들을 초청했다. 이듬해에는 네덜란드 그로닝겐대의 K. 크놀 교수, 일본 국립소아병원의 이이쿠라 요지 부장 등을 초청했다.

해외석학 국내 초청…돈 없어 집에서 대접

당시 재정이 넉넉지 않아 이들 해외 대가들을 위한 환영연을 개최하는 것이 부담이었는데, 손근찬 회장의 부인 한영희 여사의 제안에 따라 집으로 초대해 한식을 대접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1993년 이기영 교수가 회장이 되면서 지금 이름으로 학회명을 바꿨고 《소아알레르기및호흡기학회지》를 발간했다.

“학술대회에 임박해서 들어온 원고를 교정할 시간이 촉박했지만 지금처럼 e메일도 없고 밤늦게까지 함께 일할 방을 제공하는 식당도 없었어요. 각자 병원에서 일하고 떡볶이, 김밥 등을 사와서 편복양 교수 집에 모여 방바닥에 앉거나 엎드려 밤새 교열을 봤지요.” -윤혜선 교수

학회는 2009년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와 영문학회지 《AAIR》을 창간했고, 2013년 대소알호의 학술지를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학술지와 통합해 《알레르기 천식 호흡기질환》(AARD)를 발간했다.

“AAIR는 창간 10여 년 만에 알레르기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로 성장했어요. ‘국제화 전략’ 덕분이지요. 학회에선 대소알호와 알레르기학회 회원들이 해외 대가들에게 논문과 리뷰 등의 투고를 부탁하는 작전을 펼쳤고 이 덕분에 인용 횟수가 많아지면서 단기간에 영향력 지수도 높아졌지요.” -염혜영 대소알호 홍보·사외이사(서울의료원 소아청소년과장)

그렇다고 학회가 ‘세계화’에만 신경 쓰고, 안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학회는 2005년 무려 773쪽에 이르는 교과서 《소아 알레르기 호흡기학》을 발행했다. 이때에도 편복양 교수의 집이 아지트였다. 교과서는 2013년 2판, 2018년 3판을 냈으며 내년 4판을 발행할 계획이다.

또 1997년 ‘소아천식 가이드라인,’ 2007년 ‘부비동염 진료 가이드라인,’ 2008년 ‘소아청소년 아토피피부염 진료가이드라인,’ 2010년 ‘소아청소년 알레르기 비염 진료가이드라인,’ 2015년 ‘한국 천식 진료지침(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와 공동),’ 2019년 ‘소아 마크로라이드 불응성 중증 마이코플라즈마 폐렴 치료지침,’ 2021년 ‘임상의를 위한 근거 기반 기관지확장증 진료지침,’ 2022년 ‘소아청소년 아토피피부염 진료지침’ 등 꾸준히 진료지침서를 펴내 의사들이 기준으로 삼게 했다.

무엇보다 환자와 보호자를 포함한 대중에게 다가서는 것도 잊지 않았다. 1995년 《감기를 달고사는 아이들》, 1999년 《어린이 알레르기를 이겨내는 101가지 지혜》 《천식: 알면 치료된다》, 2001년 《한국의 알레르기 식품》, 2003년 《어린이 청소년 천식 바로 알고 바로 치료하자》 등의 안내서를 냈는데, 상당수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를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지난 10월 그랜드 워커힐에서 열린 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 추계학술대회. 150여명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참석해 소아 수면과 호흡기 질환을 주제로 진행됐다. 김현희 이사장(앞 줄 가운데)과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회원간 활발한 소통이 환자에 도움줘”

“2008년부터 학교, 보건소를 찾아가며 병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고,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와 함께 전국 10곳에 아토피·천식 교육정보센터를 운영하고 있지요. 환자를 위해 제도를 고치는 데에도 힘을 쏟았어요.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천식 발작이 일어났을 때 응급 휴대 주사는 의사나 보호자만 사용토록 돼 있었어요. 보건교사도 아이에게 놓을 수가 있으면 사고 위험을 확 줄일 수가 있는데 그게 안 고쳐져 무려 15년 동안 정치권과 행정부 등을 찾아다니며 설득해서 겨우 고쳤지요.” -김현희 대소알호 이사장(가톨릭대 의대 의정부성모병원 교수)

학회는 개원의와 수련의, 전임의 교육에도 전력을 기울여왔다. 매년 두차례의 연수강좌, 매달 학술집담회와 전임의 공부 모임을 각각 개최하고 있으며 전국 지회 5곳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며 학문을 교류하고 있다.

“요즘 알레르기 질환뿐 아니라 기관지확장증, 섬유성 낭종 등의 호흡기질환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여러 이유로 대형병원에 집중돼 있어요. 연구결과를 다른 병원이나 개원가 의사들이 알 수 있도록 지식 소통 통로를 마련해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김현희 이사장

“대소알호는 회원들이 학문을 중심으로 늘 소통하는 전통이 강해요. 서울아산병원이 가습기살균제의 호흡기 손상 원인을 밝힌 것도 학회 회원들끼리 ‘전례 없는 독특한 환자가 자꾸 나온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해 소통했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어쩌면 학문은 소통의 과정인데 그런 면에서 우리 학회가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 결과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염혜영 이사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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