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말’이 토대 닦은, 스포츠 발전 숨은 주인공
[Voice of Academy 2 -학회열전] 대한스포츠의학회
최근 프로 축구선수, 발레리나, 산악인, 보디빌더 등이 함께 한 의학 학술대회가 열렸다. 지난달 14~15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23년 대한스포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대박이 아빠’ 이동국은 의사 100여 명 앞에서 ‘축구선수 입장에서 바라본 스포츠의학과 경기력’ 주제로 특강을 펼쳤고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산악인 김성기, 보디빌더 군인 이도훈 등도 자기 분야에 대해 발표하며 의사와 정보를 교류했다. 또 대한스포츠의학회가 오는 26일 대한골프의학연구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하는 ‘골프의학 심포지엄’에는 두 번의 수술과 긴 재활을 거쳐 극적으로 정상에 오른 KLPGA 골퍼 이다연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골프에서 의료의 중요성에 대해 강의한다.
스포츠가 의학을 만나 경기력 급속 향상
1980, 90년대만 해도 스포츠 선수가 의학적 지식을 갖추고 이를 실천하며 경기력을 키운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팀 감독조차 선수가 타박상을 입으면 얼음찜질을 해야 하는지, 핫팩으로 마사지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축구나 마라톤 때 물을 마시면 배가 아파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야구 투수가 두 경기 연거푸 완투해도 정신력이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경기를 하고 난 뒤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 선수도, 코치도, 심지어 의사도 몰랐다. 의사가 청소년 선수를 찾아가면 “경기 못하게 한다”며 감독도, 부모도 꺼려했다.
대한스포츠의학회는 이런 분위기를 바꿔 선수들을 도우면서 대한민국 스포츠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데 기여한 학회다. 지금은 정형외과 550여명, 재활의학과 400명 등 의사들과 운동 트레이너 440여 명 등 2300명의 정회원이 활약하고 있는 대형학회이지만, 창립 후 10년 가까이 회원이 몇 십 명에 불과한 단출한 학회였다.
이 학회의 성장은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스포츠 과학화’에 대한 필요성에 눈 떴고 1980년대 프로 스포츠의 출범,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등이 바람을 일으켜 가능했다. 하지만 한명의 걸출한 의사가 없었다면 발전 속도가 더뎠을 것이라는 게 의학계의 중론이다.
그 의사는 제주도 출신이어서 ‘제주도의 말’이란 뜻의 ‘제마(濟馬)’를 아호로 쓴 하권익 박사다. 하 박사는 목포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중학교를 다녔고 광주일고를 거쳐 서울대 의대에 들어갔다. 그는 경찰병원 정형외과 과장, 진료부장을 거쳐 삼성서울병원장, 을지대의료원장, 중앙대의료원장 등을 역임한 의료계의 전설적 인물으로 국내에 스포츠의학을 뿌리내린 주인공이다.
하 박사는 경찰대병원 정형외과 과장 때 미국에 정착한 의대 동기를 찾아갔다가, 학술지 《의사와 스포츠의학(The Physician and Sportsmedicine)》을 보고 무릎을 쳤다. 당장 구독 신청을 하고 귀국해서 이 분야를 파고들었다. 하키 국제전에서 팀 닥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대표팀 닥터를 맡았고, 이어 강만수, 김호철 등이 호령하던 배구에 눈을 돌려 선수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의료계 전설적 인물 하권익 박사의 헌신
한편으로는 학회 설립 작업에 들어갔다. 1981년 정형외과, 내과, 외과 의사 25명으로 ‘스포츠임상의학회’를 발족시켰고 이듬해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제1차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학회에선 하 박사가 ‘스포츠임상의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성상철 박사가 ‘몬트리올 올림픽에서의 의사의 역할,’ 최일용 박사가 ‘여성과 스포츠’를 주제로 강의했다. 성 박사는 나중에 서울대병원장이 돼 하 박사와 의료계 최고의 입담꾼을 놓고 다투었으며, 최 박사는 한양대의료원장이 됐다.
창립 멤버들은 1984년 학회 이름을 현재 이름으로 개명하고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하 박사는 경북대 의대 소아과 교수 출신으로 국회의원 겸 대한체육회 부회장이었던 김집 박사, 성모병원에서 아시아 최초로 신장이식에 성공했던 이용각 박사, 최기홍 이화여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 이광호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김건열 서울대 의대 내과 교수 등을 회장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10년 동안 그들의 그림자 속에서 부회장으로 지내며 학회를 키웠다.
초기엔 회원을 많이 확보하진 못했지만 하 박사가 스포츠매니아였던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 보령제약 김승호 회장을 설득해 지원을 받았고 정부 부처에서도 예산을 따내 학회가 곤궁하진 않았다. 덕분에 학회는 학술대회와 논문 발간, 대국민 공익활동의 네 바퀴를 모범적으로 굴릴 수 있었다.
학회의 국제화는 그 바퀴가 속도를 내는 데 역할을 했다. 학회는 창립 첫 해에 국제스포츠의학연맹에 가입했다. 하 박사는 1991년 아시아스포츠의학회의 부회장을 맡았으며 그 영향력으로 2002년 9월 서울에서 각국 의학자 4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시아스포츠의학회를 열었다. 하 박사는 1999년 아시아올림픽평의회로부터 받은 아시아스포츠의학상의 상금에 사재를 보태 ‘제마스포츠의학상’을 만들었으며 이 상은 젊은 의학자들이 스포츠의학에 매진할 수 있는 거름이 됐다.
제마스포츠의학상-학회지 통해 성장
학회는 출범 이듬해부터 《대한스포츠의학회지》를 발간했으며 우수논문에는 당시로서 파격적인 연구장려금을 줬다.
하 박사가 다진 토대 위에 박원하, 진영수 교수의 ‘2세대’가 스포츠의학의 꽃을 피웠다. 박 교수는 하 박사가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갈 때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요구에 따라 ‘삼성스포츠의학센터’를 설립하며 한국체육대학에서 스카우트한 전문가다. 진영수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김철준 교수의 뒤를 이어 스포츠의학센터를 맡았다.
1990년대에 스포츠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스포츠 스타들이 찾는 병원에 환자들이 몰렸다. 이에 의사들이 스포츠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학회도 커졌다. 이때부터 제마스포츠의학상 수상자를 중심으로 이경태, 양윤준, 유재철, 김진구, 박진영, 오주한 등 스포츠의학 스타들이 학회의 발전을 이끌었다. 특히 이경태 박사는 ‘민암 스포츠 장학금’을 만들어 한일스포츠의학 교류에 참여하며 학문적 성과를 낸 의학자들에게 수여토록 했다.
학회는 1997년 스포츠의학 분과 전문의제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24회의 인증전문의 자격시험을 치르며 의사 전문가들을 배출했다. 2002년부터는 대한선수트레이너협회(KATA)와 함께 선수트레이너(AT) 센터를 운영하며 의학 지식을 갖춘 트레이너를 양성했다. 이들이 의사들을 찾는 선순환이 자연스럽게 자리잡도록 했다.
스포츠의학회는 대한체육회, 반도핑위윈회, 핸드볼협회, 프로축구연맹, 스키연맹, 수영협회, 빙상경기연맹, 농구협회, 여자프로골프협회, 아이스하키협회 등과 협약을 체결하고 의사들을 보내고 있다. 대표팀이나 리그, 대회에서 요청하면 의사들을 파견하고 있다. KLPGA의 경우, 대회 때마다 학회의 당번 의사가 가서 의무실에서 선수는 물론 갤러리의 건강까지 챙기고 있다.
최근에는 국민의 건강을 위한 운동에도 눈을 돌려서 미국스포츠의학회에서 시작해 세계로 번진 ‘EIM(Exercise is Medicine)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추계학술대회의 테마도 ‘운동이 약이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