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7층에서 뛰어내렸다”...독감 주사 때문?
[유희은 의료소송 ABC]
한 고등학생(17)이 아파트 7층에서 뛰어내렸다.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척추 손상으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원인이 엉뚱했다. 201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학생은 전신 근육통과 고열로 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검사 결과, ‘A형 독감’ 때문이었다.
의사는 치료를 위해 페라미플루 주사제를 투약했다. 항바이러스 주사다. 환자는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은 후 먹는 약까지 처방받아 귀가했다.
그다음 날 오후, 몸이 아파 홀로 집에 있던 학생은 자신이 살고 있던 7층 아파트에서 부엌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하지만 학생은 자신이 뛰어내린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단지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떨어지는 꿈을 꾸고 나니 병원이었다”라고 할 뿐….
이 사건은 페라미플루 주사제의 부작용과 흡사했다. “환각이나 이상행동이 나타날 수 있고, 소아나 청소년은 더 위험해 이틀 동안 혼자 두어선 안 된다”고 나와 있기 때문. 식약처에서 페라미플루 시판을 허가해줄 때 ‘허가사항’에 명시된 내용이다.
그런데 의료진이 그 부작용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것. 부모와 학생은 소송을 제기했고, 5년(?)이 지나 법원(서울남부지법)은 주사제 부작용을 설명하지 않은 의사에게 5억 7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도 이전부터 의약품 투여의 경우, 수술과 같이 의사의 설명의무가 인정된다고 판단해왔다.
“환자에 대한 수술은 물론, 치료를 위한 의약품의 투여도 신체에 대한 침습(侵襲)을 포함하는 것이므로…(중략)…환자의 의사결정을 위하여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사전에 설명함으로써 환자로 하여금 투약에 응할 것인가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가지도록 할 의무가 있다.”(대법원 2002. 1. 11. 선고 2001다27449 판결 [손해배상(의)])
대법원은 그러면서 “이러한 설명을 아니 한 채 승낙 없이 침습한 경우에는, 설령 의사에게 치료상의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환자의 승낙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가 된다”고 했다.
수술처럼 약도 설명의무 필수... 최근 들어 점점 커지는 손해배상액
위와 같이 의약품 투약 시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례를 몇 가지 더 살펴보자.
2017년, A 씨는 항생제인 세프트리악손 주사를 맞던 중 가슴에 불편감을 호소하였고, 결국 심정지에 이르렀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A 씨는 혼수상태로 약 1년을 더 투병하다 사망하였다.
A 씨 유가족은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 씨의 심정지 원인이 약물에 의한 아나필락시스 쇼크에 해당하고, 의료진이 약물치료 전 부작용에 관해 설명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사건의 1심 법원인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유족 측에 약 1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 판단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위자료를 3000만 원 상당으로 더 올려 판결했다.
실명을 유발할 수 있는 결핵약을 처방하면서 그 부작용을 설명하지 않은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창원지방법원은 2011년 결핵약 부작용으로 시각장애 판정을 받은 환자가 한 의료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병원 측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시각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약물 ‘에탐부톨’을 처방하면서 부작용에 관해 설명을 하지 않았다.
처방 당시 병원에서 결핵 약제 복용 안내문을 내주었으나, 재판부는 “추상적인 설명이나 약제 복용에 대한 안내만으로는 설명의무를 다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였다. 에탐부톨 처방에 따른 설명의무 위반은 부산지방법원에서의 사건에서도 나왔다. 보건소에서 해당 약물을 처방받아 복용하던 중 시력 이상 증세가 발생하였다. 환자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1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수술이 아닌 약물 복용이나 투약을 할 때는 의사도 "부작용을 설명해야 한다"는 의무사항을 놓치기 쉽다.
하지만 문제는 "부작용 없는 약은 (거의) 없다"는 사실. 특히, 그 부작용이 치명적일 경우는 반드시 환자나 보호자에게 미리 설명해야 했다. 의사의 상세한 설명이 있다면 의약품 부작용에 따른 피해를 미리 경계하고, 그 발생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