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으로 노년기 치매 예방"…보건복지 은퇴공무원들의 한 목소리
[박효순의 건강직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차르륵, 딱 딱, 차르륵 똑 똑…’ 소리가 경쾌하게 반복된다. 60대, 70대 어르신들이 수담(바둑)을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대부분 남성인데, 드물지만 여성도 있다. 바둑판을 응시하며 한 수 한 수 두어가는 모습들이 가히 ‘진지함’ 그 자체이다.
지난 4일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근처의 종로기원(종로구 관수동)의 오후 풍경이다. 이날 이곳에서는 특별대국실에서 ‘2023년도 보건복지부장관배 바둑대회’가 열렸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은퇴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보사기우회(회장 안정인)’가 주최한 바둑 행사다. 1980년대 초(당시 보건사회부)에 결성된 보사기우회는 해마다 1~2회 보건복지부장관배 바둑대회를 개최해 왔으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중단되었다가 4년 만에 대회를 재개한 것이다. 3급 이상 승자 1개, 4급 이하 우승자 1개 등 2개의 보건복지부장관배 트로피를 증정한다.
이날 대회에는 보건복지부 차관과 심평원장, 아동권리보장원장 등을 역임한 신언항 현직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장, 약정국장으로 이름을 날린 홍연탁 위드팜 회장(약학박사), 홍순철 보사기우회 초대 총무, 서효석 특별회원(기우회 고문), 안정인 기우회장, 김춘년 총무 등 약 30명이 참석했다. 90대를 바라보는 36년생(실제는 34년이라고 함) 회원도 참석해 후배들과 계속 대국을 벌였다. 서효석, 신언항, 홍순철(존칭 생략, 가나나 순)은 모두 1946년생 동갑으로 올해 77세이며 아마바둑 5∼6단(한국기원 기력)의 실력을 갖춘 고수급이다. 이들은 50대, 60대와 바둑을 둬도 밀리지 않는 집중력과 끊기와 체력을 지닌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날 참석자들이 기자에게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이 "바둑이 치매 예방에 좋다"는 사실이다. 신언항 위원장은 "바둑과 치매 예방을 주제로 기사를 쓰면 큰 관심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근 노인치매율은 10.33%로,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고, 85세 이상 노인 10명 중 4명이 치매 환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말 전국 25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 중인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된 환자 수는 53만 3959명이다. 치매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점차 증가해 2020년에는 17조 7000억원에 이르렀으며, 2050년에는 1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국가적으로 치매 예방을 위한 각종 대책과 사업이 나오고 있다. 특히 바둑을 노년기의 두뇌스포츠로 육성하면 효율적으로 치매 예방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다. 대한노인회(회장 김호일)도 최근 바둑을 통한 치매 예방 범국민 캠페인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강남구치매안심센터(센터장 서상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와 함께 지난 9월 6일 강남구민회관에서 어르신 5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치매 예방과 인식개선의 중요성을 알리는 행사를 열었다. 금년 4월 26일에는 사랑의교회에서 어르신 5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같은 캠페인을 벌였다. 두 행사 모두에서 댄스와 바둑이 신체적 건강증진과 활발한 두뇌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전문가들의 강의가 있었다.
대한노인회 ‘치매 예방 전담 고문’인 서효석 한의사는 치매 예방 범국민 캠페인뿐 아니라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바둑을 통한 치매 예방론’을 적극 펼쳐 주목받는다. 또한 고도의 두뇌활동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바둑을 기존 19줄-19줄에서 13줄-13줄로 축소 개량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쉬운 바둑(easy Go, 이지고)’을 보급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80대 90대가 20~40대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가 바둑이다. 한국 프로기사 가운데 치매 환자가 아직 한 명도 없다고 한다. 바둑의 효과를 증명한 논문도 있다. 서울대 연구팀이 바둑을 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뇌를 비교한 논문을 냈는데, 바둑을 두면 정서 처리와 직관적 판단을 좌우하는 편도체와 전두엽 등이 활성화된다. 서 고문은 "10년 가까운 연구 추적 결과 바둑을 열심히 두면 뇌 구조를 바꿔서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각종 연구 조사 결과 증명이 됐다"면서 "이지고를 통해 60에 바둑을 배워 70에 치매를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2023년도 보건복지부장관배 바둑대회 현장뿐 아니라 종로기원 여기저기를 4시간 넘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기자에게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13줄 바둑 보급과 대중화에 관한 것이다. 치매 예방을 위해 바둑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경로당을 점찍은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각 지자체별로 수백 개의 경로당을 운영한다. 시설은 행정안전부에서 지어주고 운영은 각 시·군·구가 담당한다. 전국적으로 6만 5000여 개의 경로당이 있으며, 여기에 가입되어 있는 숫자만 300만 명에 달한다. 19줄 바둑은 노년기에 새로 배우기란 쉽지 않다. 제대로 빨리 두지 않는 것을 ‘경로당 바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13줄 바둑이라면 경로당에서 어렵지 않게 정착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