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젊은데 심장 돌연사? '비대성 심근병증' 치료 확 바뀐다
[바이오VIBE] 듀크대학교 순환기내과 앤드류 왕 교수
심장 돌연사는 심장병을 가진 환자들에 가장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여겨진다. 특히 심장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는 '비대성 심근병증(Hypertrophic cardiomyopathy, 이하 HCM)'은 젊은 연령층의 심장 돌연사에 주범으로 지목되는 상황이다. 최근 심장초음파의 시행 확대와 더불어 국내 유병률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맞았다.
실제로 HCM 환자는 심장 구조가 변형되면서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근본적인 발생 원인은 심장 근육에 있다. 근육을 구성하는 액틴과 마이오신 섬유의 결합 여부에 따라, 심장의 수축과 이완을 통한 펌프 역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HCM 환자의 경우 액틴과 마이오신이 서로 과도하게 연결되면서 심근을 지나치게 수축시키고, 또 이완까지 어렵게 만든다. 심장은 체내 혈액 공급과 혈류 순환을 담당하는 주요 장기인 만큼 젊은 HCM 환자의 사망률이 일반인 대비 4배 이상 높아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단 HCM은 폐색성과 비폐색성으로 구분되며, 증세가 심한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obstructive hypertrophic cardiomyopathy, 이하 oHCM)은 심장에서 대동맥으로 혈액을 내보내는 통로(좌심실 유출로)가 좁아지거나 막히면서 전신에 혈액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심장에 지속적인 무리가 가해진다.
무엇보다 증상이 한 번 발현되면 환자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지장이 생길 정도로 신체 활동 범위가 제한된다. HCM 환자들은 계단 오르기를 비롯해 달리기 등 가벼운 활동을 하는 중에도 호흡곤란 및 심계항진, 흉통, 실신 등의 증상을 겪을 수 있다. 심한 경우엔 심부전과 심방세동, 실신, 돌연사 등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치료법이 없어 단순 증상 완화에만 치료의 초점이 머물러 있었다. 심장 근육의 수축을 약화시켜 단기적인 증상 완화를 돕는 베타차단제나 칼슘채널차단제 등의 약물 치료법은 있었으나, 장기적인 증상 개선이 어렵고 효과도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더욱이 이들 약물 치료에 효과가 없는 경우엔 두꺼워진 심장 근육을 절제하는 수술법이 남은 선택지로, 신체적, 심리적 부담이 상당했다.
이렇게 HCM 치료가 기약없이 미해결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상황에서 최초의 표적 치료 옵션인 ‘캄지오스(성분명: 마바캄텐)’가 처방약 시장에 등장했다. 캄지오스는 oHCM 환자에서 과도하게 활성화된 액틴-마이오신 결합 개수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올해 5월 허가 작업을 끝마친 데 이어, 실제 처방이 시작되면서 치료 환경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앞두고 있다.
최근 코메디닷컴은 캄지오스 임상연구에 참여해 치료제의 혜택을 평가한 글로벌 심장병 권위자 미국 듀크대학교 의과대학 순환기내과 앤드류 왕(Andrew Wang) 교수를 만났다. 왕 교수는 지난달 진행된 대한심장학회 추계학술대회에 심장 질환 분야 신약 발표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왕 교수는 "캄지오스는 심장 마이오신을 선택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최초의 치료제로 기존 개념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계열의 약물로 분류된다"며 "가장 먼저 치료가 승인된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 뿐만 아니라 현재 비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에서도 캄지오스의 치료적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여러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치료제의 승인이 빨랐던 미국 지역에선 지난해부터 본격 처방이 이뤄지면서 긍정적인 반응들이 이어지고 있다. 왕 교수는 "캄지오스는 반감기가 비교적 긴 약물이기 때문에 체내에서 유의한 수준의 효과가 발현되기까지 몇 주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며 "치료를 받은 환자들 대부분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앤드류 왕 교수와 일문일답.
Q. 미국과 한국에 HCM 질환의 임상적 특징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나?
앤드류 왕 교수- 발생 현황과 특성의 차이를 알아보고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HCM 환자에 대한 논문들을 검토해보고 한국 의료진들과도 여러 견해를 나눴다. 그 결과 두 국가의 HCM 환자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은 유사한 점이 많았다. 미국과 한국 모두 많은 환자들이 운동을 할 때 숨이 차는 증상이 심하거나 피로감과 흉통, 심계항진, 실신 등의 증상을 흔하게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질환이 심장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에는 차이가 있었다.
Q. 환자별로 증상 발현 및 폐색 여부가 다양하게 보고된다. 증상이 발현되는 폐색성(oHCM) 환자 비율과 특징적인 증상은 무엇인가?
앤드류 왕 교수- 한국과 서구권 HCM 환자에서 나타나는 임상 양상의 차이 중 하나가 바로 oHCM 환자의 비율이다. 서구권에서는 전체 HCM 환자 중 oHCM에 해당하는 환자들이 약 70%를 차지하고, 비폐색성(non-oHCM) 환자들의 비율은 약 30%로 보고된다. 반면 한국은 비폐색성 환자들의 비율이 더 높다. 이러한 차이는 유전적 요인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폐색성과 비폐색성 HCM 환자에서 나타나는 증상 자체는 거의 동일하지만 폐색성이 비폐색성보다 중증으로 이환될 위험이 더 높은 편이다.
Q. 여러 증상 중에서도 젊은 환자의 돌연사가 높다는 게 문제다. 고령 환자보다 젊은 연령대에서 돌연사 위험이 높은 이유가 있나?
앤드류 왕 교수- 심장 돌연사는 HCM 환자들에게 있어 가장 심각한 합병증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전체 HCM 환자에서 돌연사가 발생하는 비율은 연간 1% 정도이며, 폐색성과 비폐색성 환자 간 돌연사 발생 위험 자체는 유사하다. 다만 전체 HCM 환자 중에서도 약 10~15%는 돌연사 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해당 환자들의 돌연사 경험 비율은 연간 약 2~3%로 좀 더 높은 편이다.
아직까지 HCM 환자들의 심장 돌연사 발생 위험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대신 환자들의 상태를 전반적으로 평가해 돌연사 위험이 높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제세동기 삽입 시술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실제 제세동기가 사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보통 HCM의 평균 진단 연령대는 40대 중반인데, 증상이 심하고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은 이보다 어린 나이에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 실제 젊은 나이에 진단을 받은 HCM 환자 중에는 심장 리듬에 문제가 있거나, 돌연사 위험 요인을 가진 환자들이 많은 편이다. 반면 60대 이후에 진단을 받은 HCM 환자들은 추가적인 위험 요인 유무와 관계없이 돌연사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Q. 현재 폐색성 HCM 환자 치료는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되고 있나?
앤드류 왕 교수-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 중 하나는 증상의 여부이다. 폐색성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증상이 없는 상태라면 치료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 치료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환자가 얻을 수 있는 임상적 이점이 낮기 때문이다.
반면 증상성일 경우 보통 1차 요법으로 약물치료를 시도한다. 상당수의 환자들이 약물치료 단계에서 중격감소요법(SRT, Septal Reduction Therapy)과 같은 침습적 치료를 진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증상 호전을 경험한다. 이 때 침습적 치료 방식이 약물치료보다 더 좋은 치료 결과로 이어진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점을 환자들에게 항상 안내한 뒤에 약물치료로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 경우 침습적 치료를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치료 옵션의 종류에 상관없이 oHCM의 치료 목표는 궁극적으로 환자들이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지 않고 자신의 삶의 질에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증상을 개선시키는 것이다. 이 때 환자들이 희망하는 증상 개선의 정도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규칙적으로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증상이 개선되기를 원하는 환자들이 있는가 하면 장보기, 정원 가꾸기 등 강도가 낮은 가벼운 일상활동이 가능해지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환자들도 있다. 따라서 치료 전에 환자들이 어느 정도로 증상 개선을 희망하는지를 확인하고, 각 환자에 맞춤화된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Q. 캄지오스의 허가 임상시험인 EXPLORER-HCM에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학회 발표 당시 심장병 전문가들의 반응은 어땠나.
앤드류 왕 교수- 2020년에 EXPLORER-HCM 임상 결과가 처음 발표됐을 당시 학계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기존에 사용되는 대다수의 약물은 HCM 치료를 주요 적응증으로 개발되거나 허가 승인을 받은 약물이 아니고, 고혈압 등 다른 관상동맥 질환 치료에 쓰이던 약물이다. 해당 약물들이 HCM 치료에서 실제 어느 정도의 임상적 이점을 가지는지 연구를 진행했는데, 유의한 치료 혜택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HCM을 직접 표적할 수 있는 최초의 치료제로 캄지오스가 등장하면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캄지오스는 연구의 1차 평가변수 뿐만 아니라 채택된 모든 평가변수에 대해 임상적 유용성을 입증했다. 통상 어떤 약제가 임상연구에서 임상적 유용성을 확인했다 하더라도 일부 평가변수에 국한해서일 뿐 캄지오스처럼 모든 변수에서 이점을 보인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반응이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학계 반응을 놓고는 개인적인 일화도 있다. EXPLORER-HCM 임상 결과가 처음 공개됐을 당시 운영위원회에 속해 있어 일반 대중들보다 결과를 일찍이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전문가들이 각자의 자택에서 온라인으로 모여 결과를 확인했다. 데이터가 공유되는 순간, 모두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침묵 상태가 이어질 정도로 깜짝 놀랄만한 결과였다.
Q. 베타차단제, 칼슘채널차단제 등의 기존 약제들도 심근 수축력을 약화시키는 효과가 보고된다. 캄지오스는 어떻게 다른가?
앤드류 왕 교수- 베타차단제나 칼슘채널차단제 역시 캄지오스와 마찬가지로 액틴과 마이오신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간접적인 경로로 작용하는 약물이다. 심근세포에 영향을 미치는 작용 경로로 비교해 본다면, 베타차단제와 칼슘채널차단제는 캄지오스보다 상위 단계에서 간접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심근 수축력 뿐만 아니라 혈압, 심박동수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면 캄지오스는 심근세포에 있는 근육원섬유마디(sarcomere)를 직접 타깃하기 때문에 심근 수축력 조절 효과도 베타차단제나 칼슘채널차단제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Q. 캄지오스의 허가 임상에는 1차 평가변수로 환자의 'NYHA 등급' 변화가 잡혔다. 등급이 악화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치료 효과가 의미있다고 할 수 있나?
앤드류 왕 교수- 그렇다. EXPLORER-HCM 임상은 복합평가변수 구조로 설계돼 각기 다른 두 개의 평가변수를 모두 충족해야지만 임상적으로 유의한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구체적으로 환자들이 기저 시점 대비 주관적인 증상(NYHA 등급)과 운동 능력(pVO2)이 모두 개선됐는지를 평가변수로 설정해 살펴봤다.
이 중 환자들이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과 관련해서는 만약 환자들이 유의한 개선을 느끼지 못했다면(NYHA 등급 유지), 다른 복합평가변수이자 객관적 지표인 운동 능력이 상대적으로 더 큰 폭으로 개선돼야지만 평가변수를 충족했다고 설계했다. 실제 해당 임상 결과를 살펴보면, 캄지오스 치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대부분의 환자에서 주관적 증상과 운동 능력 모두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5%의 환자에서 1단계 이상의 주관적 증상의 개선을 확인했다.
Q. 향후 HCM 치료 패러다임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하는가.
앤드류 왕 교수- 캄지오스는 심장 마이오신을 선택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최초의 치료제로 기존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계열의 약물로 분류하고 있다. 가장 먼저 치료가 승인된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 뿐만 아니라 현재 비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에서도 캄지오스의 치료적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MAVERICK-HCM, ODYSSEY-HCM과 같은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다.
MAVERICK-HCM은 비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2상 임상 연구인데, 일부 평가변수를 충족하기는 했지만 운동 능력 지표에서 유의한 개선 효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에 비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를 대상으로 운동 능력을 포함한 여러 2차 평가변수에 대한 캄지오스의 임상적 유용성을 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ODYSSEY-HCM 3상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 400여명의 비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를 등록하는 것을 목표로 올해 환자 모집을 시작했으며, 한국에서도 여러 의료기관이 참여할 예정이다.
아주좋은 정보 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