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 떼달라"...연명치료 중단, 죽음의 선택인가?
[손춘희의 죽음과 의료]
오늘날 한국인 10명 중 8명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러면서 자연사는 없어지고, 모든 죽음이 병사나 사고사가 되었다. 태어난 자는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자연사가 없어지니, ‘이렇게까지 살아야 되는가’ 할 때도 치료가 멈추지 않는다.
연명치료 거절이 법제화되면서 멈춰야 될 곳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올바른 선택법은 배우지 못한 채, 중환자실 앞 담당 의사의 긴박한 설명만으로 결정하고 오랫동안 후회할 수도 있다. 본 칼럼에서는 간단하게라도 연명치료 중단 결정을 어떻게 할지 같이 생각해 보려 한다.
<싣는 순서>
-연명치료 중단, 죽음의 선택인가?
-치료가 의미 없다고?
-누가 의미 없다고 하는가?
-죽겠다고 한다면 죽일 수 있나, 안락사란?
-나의 연명치료 중단 결정 어떻게, 왜 해야 하나?
1975년 4월 15일. 미국 뉴저지에서 21살 카렌 퀸란(Karen Quinlan)이라는 여성이 파티 도중 정신을 잃고 호흡이 멈췄다.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뇌 손상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해 9월. 부모는 의료진에 “다시 회복될 수 없다면 기계환기장치(‘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때까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적은 없었다. 결정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논란 끝에 1976년 5월, 뉴저지주 대법원은 제거 결정을 내렸다.
인공호흡기 제거 후에도 퀸란은 코를 통해 영양죽을 공급하는 ‘비(鼻)-위(胃) 영양관’을 꽂은 채 요양원에서 지내다 9년 후, 1985년 6월 '폐렴'으로 사망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는 “우리는 그 아이가 죽도록 해달라고 한 적은 없다. 그 아이가 하나님이 정한 때에 죽을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한 것”이라 했다.
퀸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중단하면 죽을 수도 있는 치료를 거절할 수 있는지, 자연스럽지 못한 치료를 어떻게 법으로 규정할 것인지 계속 논쟁을 벌였다.
법원 판결이 있고도 연명치료 중단 논란은 계속 이어져
1983년 1월, 미주리주 밤길을 운전하던 낸시 크루잔(Nancy Cruzan, 25)은 미끄러지는 차량에서 튀어 나가 길바닥에 떨어졌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구급요원들은 맥박이 없고 호흡도 멈춘 그녀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병원으로 이송했다. 하지만, 크루잔은 혼수상태에서 깨지 못하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5년이 지나자 부모는 의료진에 비-위 영양관을 제거해달라 요구했다. 인공호흡기와 달리 영양공급 중단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의료진은 부모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2년의 법정 공방 후, 법원은 “의사 결정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치료를 거절할 권리가 있고, 이는 자살로 죽을 권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비-위 영양관 제거를 명령했다. 낸시는 2주 후 사망했다.
판결에서 중요 쟁점은 낸시 크루잔이 의사 결정 능력이 있을 때 특정 치료를 거절했다는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가 있는가’였다.
언론을 통해 재판의 과정이 보도되는 동안 미국에서는, 의식을 잃었을 때 본인이 어떤 치료를 원하고,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현을 서류로 남겨놓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떤 치료 중단도 본인의 사려 깊은 결정에 따른 것이라면 존중해야 한다는 판례를 남겼다.
인공호흡기뿐 아니라 비-위 영양관을 통한 인위적 영양공급도 자연스럽지 못한 치료의 범주에 들 수 있다. 또, 어떤 치료를 어디까지 받을지 숙고해서 그 의사를 명확하게 밝혀둔다면 치료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그게 생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후 이런 결정을 ‘존엄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연명치료 중단 둘러싼 갈등... 우리나라는 어떤가?
1997년 12월. 58세 남자가 술에 취해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져 뇌출혈이 생겼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는 중에도, 담당 의사는 환자 부인에게 호전될 것 같다 했다.
하지만 부인은 치료비도 부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환자가 17년 동안 무위도식하면서 술만 마시고 가족들에 대한 구타를 일삼아왔다”라면서, “환자가 가족들에게 계속 짐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퇴원시켜 달라 했다.
극구 만류하던 담당 의사는 결국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은 후 퇴원시켰다. 환자는 집에 도착 5분 후 사망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 가족은 의료진과 가족을 고발했다. 대법원은 부인, 담당 신경외과 과장, 3년 차 수련의를 ‘부작위 살인범’으로 인정했다. 유명한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법원은 환자 뜻이 아닌 가족의 바람 때문에 치료가 중단되었고, 그런 결정이 윤리위원회에서 숙고하지 않은 채 의사와 부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졌으며, 생존 가능성이 큰데도 중단되었다는 점에 유죄를 인정한 것이다.
이 판결 후 한동안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 중단이 금기시되었다. 그러던 중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2008년 2월 기관지 내시경으로 폐암 조직 검사를 받던 한 할머니는 과다 출혈로 뇌 손상이 생겨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자녀들은 인공호흡기 중단을 요구했고, 2009년 5월 대법원에서 제거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200여 일을 비-위 영양관 상태로 생존하다가 2010년 1월 10일 사망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합법적 연명치료 중단자 사례가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 연명치료 중단은 2010년...
앞 사례와 달리 평소에 인공호흡기 중단에 대한 거절 의사를 밝혔고, 병원윤리위원회, 법원 결정 등의 적절한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 그러고 난 후, 이번엔 "매번 법원 판단을 거치지 않도록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여론까지 형성되었다.
마침내 Δ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 과정’에 있거나 Δ적극적인 치료에도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으며 Δ증상이 악화하여 수개월 내 사망할 것으로 예상하는 ‘말기 환자’에 대해 ‘연명치료 중단’ 권리를 인정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2016년 2월 제정된다.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등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연명치료 중단의 범위는 ‘승압제’(혈압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약) 투약 등으로 확대되었으나, 아직 영양공급 중단은 포함되지 않는다.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럽게 죽을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사망에 이르게 할 조처를 하는 ‘안락사’와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조처가 ‘무의미한’ 치료라고 누가, 어떻게 결정해야 할 것인가?
회생불능 노인에게 콧줄로 영양공급하는 것도 연명치료에 포함시켜야 한다. 회생할 가망이 없는데도 '부모님을 어떻게 굶깁니까'면서 강제영양공급을 강요하는 의사들은 과연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그랬을까?
굳이연명치료를 할필요가 있겠는지요 자연사가 좋을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