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데이터 물결 속에 되짚는 '환자의 의미'
[서동만의 리얼하트 #24] 심방중격 결손증
증례1. 모녀.
망설이고 미루고,
미루고 망설이던 심장 수술을 20여 년 만에 받기로 했다.
(심방중격결손증에 대한 개심 수술을??)
모두들 심장 수술 중에서는 어렵지 않은 수술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병이다.
소녀 시절에는 증상이 별로 없고 몸에 칼을 대는 것도 싫어 미루고, 결혼하고 나서는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나는 네 자매 중 맏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 모두는 같은 병(심방중격 결손증)을 가지고 태어났다. 동생 셋은 나와 달리 사춘기를 지난 나이에 치료를 받았다. 둘은 각자 직장 연고가 있는 병원에서 가슴 정중앙을 절개하는 개흉 수술을 받았고, 다른 하나는 국내에서 시술을 가장 많이 한다는 병원에서 기구를 삽입하는 시술로 결손을 막았다. 개흉 수술을 받은 둘의 상처를 볼 때마다 나는 수술 받기가 꺼려졌다. 한편 시술 받은 동생도 흉터는 무시할 만하지만 부정맥을 비롯한 여러 불편한 증상들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있는 걸 보니, 시술도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 심장 초음파 검사에서 심방중격 결손에 따른 이차적인 변화들이 나타났다고 수술을 권유 받았다. 게다가 하나뿐인 우리 딸이 같은 병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아이도 수술을 시키지 않고 있다 보니 곧 중학생이 된다. 매사에 열심인 아이인데, 아이의 심장 초음파 검사에서도 삼첨판막과 좌심실 기능에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서둘러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 내가 먼저 매를 맞아보고 내 아이를 시키리라’
수소문을 끝에, 가슴 정중 절개술 대신에 오른쪽 겨드랑이 밑 부위를 절개하여[사진1-1] 개심 수술을 할 수 있다는 흉부외과 의사를 찾았다. 수술은 순조롭게 끝났고 겉으로 보이는 상처도 만족스러웠다.
즉각 아이의 수술도 부탁드렸다.
딸아이가 퇴원하던 날, 우리 모녀는 더욱 가까운 동지로서 웃을 수 있었다.
이제 아이는 방학 동안에 있을 경시 대회 준비가 한창이다.
(시술 후 고생하는 동생의 재수술을 상의 드렸으나, 삽입된 기구를 제거하면서 추가적인 부정맥이 발생할 수 있고, 이미 발생한 부정맥은 호전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므로 지켜보다가 필요하면 인공 심박동기를 넣기로 하였다.)
증례 2.
응급실을 통하여 전원 문의가 왔다.
세 살 반 된 여아로 모 대학 병원에서 심방중격 결손에 대한 시술 후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심방중격 결손인데??)
중환자실로 입원한 환아를 살펴보았다. 매우 커다란 심방중격 결손을 가지고 있었고, 사타구니 혈관을 통해, 못지 않게 큰 기구를 삽입하여 결손을 봉합하려 시도한 후였다. 그러나 결손이 너무 커서 일부분만 막힌 채로 기구가 좌심방 쪽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매우 큰 기구를 사용하다 보니 기구가 심장 내부의 전도 부위를 잘 못 압박하여 완전 방실 블록이 발생한 것이었고, 이러한 문제점들이 쌓여 우심실 기능 저하가 온 상태였다[사진2-1]. 게다가 2주째 지켜보고 있었다니, 후속 조치가 늦은 것이다.
지체 없이 수술을 시행하였다. 여아이기 때문에 향 후 미용을 고려하여 우측 겨드랑이 하부를 절개하고 인공 심폐기를 가동하였다.
이미 삽입된 매우 큰 기구는 정 위치를 벗어나 있었고, 주위에 혈전도 형성되어 있었다.
기구와 혈전을 제거하고 결손 부위는 환아 자신의 조직을 이용하여 안전하게 봉합하였다.
부정맥에 대하여는 인공 심박동기를 심방과 심실에 직접 거치하였다[사진2-2].
후유증을 안은 채 아이는 열 살이 넘었다.
@ 심방중격 결손증
먼저 첫 번째 증례에서의 가족력이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선천성 심장병의 발생 빈도는, 가족 중에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있으면 아래와 같이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직계 가족(부모나 형제) 중 한 사람이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경우: 2-3%
직계 가족 중 두 사람이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경우: 9-10%
직계 가족 중 세 사람이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경우: >50%.
심방중격 결손증은 선천성 심장병 중에 가장 빈번히 보이며(8-10%), 대부분의 복잡 심장병에서 다른 구조적인 문제들과 동반되며, 어떤 경우에는 이것의 존재가 꼭 필요하기도 하여, 없을 경우에 일부러 만들어 주기도 한다.
개심 수술의 역사에서, 닥터 기본(J. H. Gibbon) 이 인공 심폐기를 발명하여 1953 년 첫 수술에 성공했던 병이고, 이제는 개심 수술 대신에 시술로 더 많이 치료되는 병이다.
그러나 그 위치나 크기, 시술자의 숙련도에 따른 위험 등은 상존한다. 위 증례들에서 보았듯이 결손의 크기가 매우 큰 경우, 무리하게 커다란 기구를 삽입하다가 심장 전도 조직에 손상을 주어 심각한 부정맥을 초래할 수 있다[사진3-1]. 이러한 실패한 증례들이 소상히 보고되지 않으면 소위 ‘빅 데이터’에 묻혀 버릴 수 있다.
첫 번째 증례 중 시술 후 고생했던 자매의 경우, 시술은 소아과에서(선천성 심장병이므로) 시행하고 부정맥 발생 후에는 심장내과에서(성인 나이이므로) 추적 관찰됨으로써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두 번째 증례의 경우 시술 후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하였으나 후속 조치를 다른 병원에서 받았으므로 그 심각성을 모른 채 지나갔을 것이다. 데이터의 맹점이다.
반면에 기억을 거슬러보면, 인공심폐기 사용 첫 개심 수술이 성공하기 한 해 전인 1952년 시도된 수술에서, 심방중격 결손으로 진단된 환아를 잃어버린 역사도 있다. 그러나 부검을 거쳐 오진 이었음을 소상히 밝혔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추진력은 인정받고 다음 성공으로 나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하나 하나의 증례들이 모여 의미 있는 ‘빅 데이터’가 되는 것이다.
1994년 미국 클리블랜드 심장 병원에서의 연수 시절에, 나의 멘토인 거장 닥터 미 (R. B. Mee) 는 나에게 자신의 책상 위에 있던 명패를 정표로 주셨다[사진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