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염려증만큼 건강에 치명적인 것도 없다
[권순일의 헬스리서치]
소화가 조금만 안 되도, 피부에 전에는 없던 것 같던 작은 점만 보여도 덜컥 큰 병이 아는가 싶어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몸의 한쪽이나 얼굴의 마비, 감각 이상, 언어나 시력 장애가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뇌졸중 증상이나 극심한 가슴 통증과 메스꺼움, 호흡 곤란 등의 심장마비 증상 등은 잘 인지하고 있어야 돌연사를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소소한 증상에도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염려를 하다보면 신체는 물론 정신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 오죽하면 ‘건강에 대한 지나친 걱정만큼 건강에 치명적인 것도 없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건강에 대한 과도한 걱정은 건강 염려증을 발생시킨다. 질병불안장애로도 불리는 건강 염려증은 사실은 그렇지 아니한데 몸 안에 무슨 병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강해 그러한 증상이 느껴져 고통스러워하는 병적 증상이다.
건강 염려증에 걸리면 병에 집착해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재검사를 요구한다. 의사가 신체검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신체 이상에 대한 염려와 집착을 포기하지 못한다. 문제는 건강 염려증은 환자가 자신에게 질병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지 증상을 꾸미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건강 염려증은 왜 발생할까. 그리고 예방책이나 치료법에는 어떤 게 있을까. 건강 염려증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건강 염려증은 만성 정신질환
전문가들은 “건강 염려증, 즉 질병불안장애는 만성 정신질환”이라고 말한다. 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증상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심각하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지속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다.
질병불안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전형적인 신체 기능을 질병의 징후로 잘못 해석할 수 있다. 의료 검사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건강 염려증이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심각하게 아프다고 생각에 빠져 있다. 그들의 지속적인 건강 걱정은 그들의 관계, 직업 그리고 삶을 방해할 수 있다.
◇건강 염려증의 유형
질병불안장애는 모든 연령과 성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장애가 있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지나치게 의료적 돌봄 서비스를 원하거나 반대로 극도로 회피하기도 한다. 환자 중에는 많은 시간을 의료 기관에서 보내고 여러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며 의료 검사를 계속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의사 등 의료 관계자를 피하는 경우도 있다. 의사를 믿지 않거나 의료 관계자들이 자신의 증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더 큰 두려움과 불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간혹 병원을 믿지 못하고 나름대로 치료하겠다고 하며 건강식품을 섭취하거나 민간요법에 심취하기도 한다.
◇증상과 원인
질병불안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심각한 질병에 대해 지속적이지만 비현실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들이 걱정하는 특정 질병을 종종 바뀐다. 질병불안장애가 있는 일부 사람들은 실제로 진단받은 신체적 질병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질병불안장애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상태가 그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느낄 수 있다.
질병불안장애의 증상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병에 걸리는 것에 대한 걱정으로 사람이나 장소를 피하는 것 △끊임없이 질병과 증상을 연구하는 것 △증상 및 중증도 과장(예: 기침이 폐암의 징후가 됨) △개인 건강에 대한 높은 수준의 불안.
△심장박동 수(심박수)와 같은 정상적인 신체 기능에 대한 집착 △증상 및 건강 상태를 다른 사람과 과도하게 공유 △혈압이나 체온을 재는 등 질병의 징후를 반복적으로 확인 △당신의 증상이나 건강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안심 구하기 △가스나 땀을 흘리는 것과 같은 건강한 신체 기능에 대한 불안감.
건강 염려증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만약 가족력이 있다면 질병불안장애에 더 걸리기 쉽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이 꼽는 원인으로는 △아동 학대나 방임과 같은 아동기 트라우마 △극도의 스트레스 △가족의 건강 불안 또는 기타 불안 장애 △어린 시절 가족의 심각한 질병 또는 어린 시절 질병 경험 △불안 또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 건강 문제 △성폭행이나 신체적 또는 정서적 학대와 같은 트라우마 등이 있다.
◇진단과 검사
건강 염려증의 진단 기준은 △신체적 증상이나 감각을 잘못 해석해 자신의 몸에 심각한 병이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 집착 △내과적 또는 신경과적 검사 상으로는 이상이 없지만, 몸에 이상이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6개월 이상 지속돼 일상생활, 직장생활 등에 지장을 주는 경우다.
◇관리와 치료
약물과 인지 행동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건강 염려증 환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신체적 질환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정신 치료를 거부한다. 하지만 정신 치료를 통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만성 경과에 대응하는 대처 요령을 터득하도록 도와야 한다.
우울이나 불안 증세가 동반된 경우는 약물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또한 미리 계획된 검사를 정기적으로 시행해 의사가 환자를 무시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합병증
지속적인 두려움과 걱정은 신체적, 정신적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건강 염려증은 사회관계와 삶을 해칠 수 있다.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놓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심하게 우울해지고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또한 △의료비와 결근으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 △의학적 장애와 실업 △불필요한 의학적 검사와 잠재적인 검사 합병증과 같은 부작용이 있다.
◇예방법
불행하게도 건강 염려증에 대한 알려진 예방책은 없다. 그러나 환자에게 지원과 이해를 제공하는 것은 증상의 심각성을 줄이고 환자가 장애에 대처하는데 도움이 된다.
◇경과, 예후
어떤 연령에서든 발생할 수 있지만 주로 2, 30대에 발병한다. 건강 염려증은 회복과 재발을 반복하는 질병이다. 스트레스 등에 의해 재발하는 경우가 많으며, 수개월 또는 수년씩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만성적으로 계속되지만 건강에 대한 불안 증상이 거의 없거나 없는 기간을 거치고 나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