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기 힘든 병의 ‘유혹’… “의술을 다 알기엔 삶이 짧다”

[서동만의 리얼하트 #16] 수정 대혈관 전위증, 유혹

히포크라테스 석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30 년 만의 만남이다.

그 당시 (1989 년) 백일 된 아기는 인공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아기는 매우 어려운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수정 대혈관 전위 혹은 심방/심실 불일치와 양대혈관 우심실 기시, 심실중격 결손, 대동맥 축착 및 발육 부전.”
이러한 병의 조합에 대한 이해가 잘 안되었던 시절이었다.
또한 수술에 있어서도
대동맥 축착을 한꺼번에 수술해야 하는지 혹은 두 번에 나누어서 해야 하는지,
심실중격 결손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대혈관 전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 것인지 등의 여러 가지 어려움이 겹친 환아 였다.
(국내 첫 동맥 치환술의 성공이 1986년 이었고, 필자의 첫 동맥 치환술 성공이 1989년 이었다. 당시는 국내 최초로 심실중격 결손을 동반한 대동맥 축착증에 있어서 일차 완전 교정 수술 경험에 대한 필자의 성적이 막 보고된 상태였다.)

대동맥 축착을 넓혀주고 심실중격을 봉합하는 수술을 한번에 해결하기로 했다.
(지금이라면 심실중격 결손 봉합의 방법을 다르게 하면서 심방 치환술로 문제를 해결했거나, 혹은 심방 치환술과 동맥 치환술을 동시에 하거나 했을 것이다.)

수술은 어려웠고 회복은 더디었다.
기관절개까지 하고 중환자실에서 100일 동안의 폭풍 같은 시간을 보냈다.
너무나 다행히 아기는 좋아져 퇴원할 수 있었다. 기적 같았다.

반갑게도 그 아기가 이제 서른이 넘어 당당한 모습으로(174 cm, BMI 24 kg/m2) 나타난 것이다. 국내 유명 대학 중 하나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조기 축구 선수도 하면서, 문무를 겸비(?)한 삶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다니던 병원에서 다시 수술을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것이다.
대동맥 혈류의 흐름이나 심실 내 잔존 단락의 유무 등에서는 문제가 없으나, 좌/우심실의 위치가 뒤바뀌어 심장 기능이 저하되었으니, 형태학적 좌심실을 훈련 시켜 심방 치환술과 동맥 치환술을 하자는 것이다.

가져온 자료들을 살펴봤다(Table 1).

 

2010년경부터 A 병원에서는 네 명의 심장 전문의가 쭉 환자를 추적 관찰하고 있었다. 2016년에 새로운 심장 영상 도구(MRI)를 도입하여 쓰기 시작하면서, 우심실 수축 기능에 대한 판정이 약간 낮은 수치를 보였고, 이어서 시행한 2017년 심장 초음파 검사에서도 기왕의 검사 수치보다 낮은(그것이 의미 있는 차이인지?) 결과를 보이자 수술을 권유한 것이다. 그러나 환자 본인은 30여년 동안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지냈다고 했다. 2019년 B 병원에서 심장 초음파 검사를 시행한 결과 2014년 결과와 큰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일년의 여유를 두고 지켜보니 증상과 검사 결과에서 10년 전과 비교하여 별반 다르지 않다고 판단되었다[동영상 1].

 

 

이 시점에서 수술은 불필요하다.
다만 매일 하던 조기 축구는 회수를 줄이기로 했다.

@ 검사 자료의 신빙성

어떤 검사를 받든지, 검사 결과는 검사자가 달라지거나(inter-observer variability), 동일한 검사자가 수행하더라도 반복 시(intra-observer variability)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검사 방법이 달라지면 물론 다른 결과를 나타낼 수 있다. 이 경우도 새로운 검사 방법에 의한 결과를 기존의 방법과 비교 평가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듯 했다. 급성기 질병이 아니면 장기간에 걸친 여러 자료를 공유하고 관련자들이 모여서 토론하여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중요하다.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필자는 좌/우 심실은 구조와 기능이 일치해야 됨을 매우 강조했는데, 연재 14번 증례와 이번 증례의 경우 심실이 불일치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몸과 마음이 기능적으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며 서른이 넘도록 살아 왔다는 것인가?

좌심실과 우심실은 태어날 때부터 DNA 상 각인되어 다르게 만들어졌고, 발생 과정 중에 마치 큐빅 게임처럼 여러 가지 조합을 맞춰나가야 최종적으로 정상적인 모양의 심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서 심방과 심실의 연결, 심실과 대혈관의 연결에 오류가 발생하면 다양한 선천성 심장병이 나타난다. 수정 대혈관 전위증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잘 못 자리잡은 각각의 심실은 일단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 수행 능력은 개인 마다 다르다. 여기에서 우리 인간 신체의 놀라운 적응력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증례를 하나 더 보기로 한다.

@ 20 세 남자 환자 

수정 대혈관 전위증을 가지고 있었으며, 형태학적 삼첨판막에 중증도의 폐쇄부전이 발생하여 전원 되었다[동영상 2].

 

건장한 근육질의 청년으로(182 cm, 95~100 kg) 이른 나이에 초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폐동맥 밴딩을 시행하였다. 이 후 삼첨판막 폐쇄부전은 호전되었으나, 형태학적 좌심실은 6년 째 근육 만들기에 무반응이다[동영상 3].

 

 

이미 이 정도로 건장한 신체와 고혈압까지도 이 환자의 형태학적 우심실은 매우 잘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우리가 이 병의 모든 것을 파악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꼭 빅 데이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빅(?) 데이터를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드물게 보는 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자 하나 하나의 사례가 소중하며,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볼 필요가 있다.

@ 유혹

그런데 빅(?) 데이터를 만들어내려는 욕심을 부린 사람들이 있었다.
“수정 대혈관 전위증,
매우 드물고 어려운 병이고,
심실의 기능과 구조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알려진 매력적인 도전의 대상이고,
심방 치환술이나 동맥 치환술은 하나 하나의 수술이 어렵고도 화려한데,
이 두 가지 수술을 동시에 구사하여
드라마틱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니!”
심장외과 의사들의 로망일 수 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몇 개 병원의 의사들이 자료를 모아 조작된 논문으로 만들 욕심을 부렸을 것이다. 이 사건은 내부자 고발로 당시 주요 일간지에 크게 실리게 되었고, 해당 국제 학회지로부터 논문 철회라는 국제적인 불명예로 막을 내렸었다.

@ 히포크라테스, ‘인생은 짧고 예술(art)은 길다.’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Life is short, art long, opportunity fleeting, experimentations perilous, and judgment difficult.
의술을 배우고 습득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인생은 짧고 시간은 소중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의 위험성과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경고했다.
It takes a long time to learn and master the medical art, but life is short, and time is precious. He also warned them about the dangers of experimenting on patients and the difficulty of making correct diagnoses.
(AI의 해설이다.)

유혹에 대해 이보다 더 적절한 경구가 없을 것이다.

 

    서동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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