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고음의 비밀, 유전자에 있다?
신축 단백질인 콜라겐과 엘라스틴 기능 돕는 ABCC9 유전자 변이
목소리는 유전일까 아닐까? 인간 목소리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유전자 연구결과 성별에 관계없이 고음의 목소리와 관련된 유전적 요소가 확인됐다. 9일(현지시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아이슬란드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보도한 내용이다.
종전 연구에서는 주로 사람들의 언어 장애를 유발하는 돌연변이를 확인함으로써 목소리에 대한 유전적 영향을 찾아냈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수행한 아이슬란드의 유전자 기업인 ‘디코드 제네틱스(deCODE Genetics‧이하 디코드)’의 유전학자이자 언어학자인 로사 시그니 기슬라도티르 박사는 “대규모 인구에서 목소리 높낮이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변이를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사람의 목소리는 신체 크기와 호르몬에 의해 부분적으로 형성된다. 여성의 목소리가 남성의 목소리보다 높은 음정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요인은 유전자다.
유전학자이자 디코드의 최고경영자(CEO)인 카리 스테판손 대표는 "목소리가 가족을 따른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이를 유전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유전적 영향과 환경적 영향을 분리할 수 있는 쌍둥이에 대한 비교 연구를 포함해 오랫동안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왔다.
하지만 어떤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내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에 대한 조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디코드가 등장했다. 1996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아이슬란드인의 방대한 유전 정보를 채굴함으로써 아이슬란드를 유전학 연구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38만밖에 안 되는데다 소수의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가계도를 추적할 수 있고, 국가가 상세한 가계기록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변이를 발견하고 특성이나 질병과 연관시키는 것이 쉽다.
디코드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현재 아이슬란드 성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 회사의 유전자 연구에 참여했다. 스테판손 대표는 무료 건강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지원자들은 골밀도부터 정신 건강까지 모든 것에 대해 4시간 동안 집중적인 관찰을 받는다고 소개했다.
목소리 음정의 유전자를 알아내기 위해 디코드의 연구진은 약 1만3000명의 아이슬란드인의 음성을 녹음한 다음, 이들의 목소리 주파수를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했다. 그 결과 ABCC9라는 특정 유전자의 공통된 변이가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고음의 발성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전학적으로 어떻게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구진은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무엇보다도 ABCC9는 콜라겐과 엘라스틴 같은 단백질이 제 기능을 하도록 도와주는 이온 채널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설계도가 포함돼 있다. 콜라겐과 엘라스틴은 신체 조직이 늘어나는데 도움을 주는데 성대도 여기에 포함된다.
연구진은 또한 고음 음성 변이를 가진 사람들이 심장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언뜻 상관없어 보이지만 콜라겐과 엘라스틴은 심장근육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콜라겐이 너무 많거나 엘라스틴에 결함이 있으면 심장 조직이 뻣뻣해지고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다. 이는 성대의 신축성 있는 부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기슬라도티르 박사는 설명했다.
스테판손 대표는 이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며 다른 유전자가 목소리 높낮이를 형성하는 데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찾으려면 더 많은 통계적 힘이 필요하다. 논문을 검토한 미국 애리조나대의 줄리 밀러 교수(신경과학)는 이번 연구처럼 인간의 목소리를 직접 녹취해 유전자와 비교하는 대규모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디코드의 연구가 ABCC9 돌연변이와 목소리 높낮이 사이에 좋은 상관관계를 보여 주지만 돌연변이가 실제로 더 높은 음정을 유발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동물실험으로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bq2969)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