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의료원, "의사 구하기 이렇게 어렵다니…"
연봉 3억6천만원 내과의 "근무 포기"... 채용 과정 원위치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의 내과 의사 구하기가 다시 미궁에 빠졌다. 거의 1년을 끌어오다 지난달에야 60대 의사를 채용하긴 했으나, 그가 근무를 포기하면서 원점으로 되돌아온 것.
27일 산청군에 따르면 충북 청주에서 개인 의원을 하다 지난번 4차 공모에 응시해 합격했던 그 의사는 신변 정리를 마치는 대로 진료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는 이승화 산청군수와 면담도 마친 상태였다.
계약 조건은 월 3천만 원, 연봉 3억6000만 원(4대 보험 및 세액 포함)에 2년 근무. 계약을 1년 연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한다.
그는 며칠 전 계약 포기 의사를 군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운영하는 병원 정리에 시간이 걸린다. 6월 초부터 근무하겠다”고 말했지만 마음이 바뀐 듯하다. 구체적인 사유는 밝히지 않은 채 “산청에 가지 않기로 했다”는 뜻만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산청군은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지난 4차 공모에 지원자가 그 의사 1명뿐이었던 터라 그를 대체할 차순위자도 없기 때문이다.
산청군은 26일 급히 채용공고(제5차)를 내고, 내과 전문의(‘업무대행 의사’) 공모 절차를 다시 시작했다. 채용 조건은 이전과 같고, 내달 11일까지 신청을 받는다.
[사진=산청군 홈페이지 공고 캡처]
산청군 보건의료원은 이 일대 유일한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으로 내과, 소아청소년과, 치과, 한방과, 마취통증의학과를 비롯해 방사선실, 물리치료실, 임상병리실, 입원실, 응급실 등을 운영해왔다. 김솔 의료원장 등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11명이 근무한다.
노령 환자가 많은 산청군은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에 대한 수요가 높아 내과 전문의가 꼭 필요한 실정이다.
지역 의료계에선 "과도한 업무 부담에다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을 개인이 져야 하고, 산청군 명령에 따라 업무 내용이나 근무 형태가 들쭉날쭉하던 전례 등 여러 요인이 겹쳐서 계약을 포기한 게 아니냐"고 추론하고 있다.
고연봉에도 의사들 기피...하지만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도
그러나 다른 측면도 있다. 의사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산청의료원은) 베링해의 꽃게잡이", "의료계의 신안염전과 같은 곳"이란 얘기가 나돈다. 한마디로 산청의료원은 지원하면 안 되는 곳이란 얘기다.
직접 운전하지 않고선 오가기 어려운 '대중교통 오지'인데다 관사도 제공하지 않는다. 게다가 2년 계약직의 '업무대행 의사'. 공무원 신분이 아닌, 업무대행을 하는 자영업자 신분이란 얘기다. 세금을 사업자처럼 내야 하니, 연봉 3억6000만원이라 해도 실수령액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지난 2019년엔 전임 의료원장이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산부인과 전문의였던 권현옥 전 원장은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의료봉사에 열심이어서 환자가 급증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하루에 100명씩 진료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의료봉사를 다니던 요양원 장애인들에 약을 주기 위해 직원들 이름으로 '대리처방'을 받은 게 문제가 됐다. 이를 빌미로 행정직원들이 권 원장을 고발했고, 그는 의사면허를 박탈 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를 안 주민들과 요양원 등에서 대거 탄원서를 내며 구명운동을 벌였고, 검찰은 기소유예했다. 하지만 그 당시, 보건복지부는 그에게 의사면허 자격정지(1개월 7일)를 내렸고, 산청군청은 그를 직위해제했었다.
'행정직' 아닌 '업무대행'에 불과한 의사가 직원들 통솔하며 진료를 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아닌 셈이다. 우리나라 '공공의료' 현장의 한 단면이다.
한편, 산청군 보건의료원은 내과 의사 공백이 길어지자 임시방편으로 진주에 있는 경상국립대병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1주일에 1차례씩 내과 진료를 지원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