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맞춤형 항암시대'... AI로 '수백 개 암백신' 발굴
'MHC' 활용 '항암 항원' 생성... 면역세포의 '공격 대상' 정해주는 인증서 역할
국내 연구진이 인공지능(AI) 기술로 암 백신을 발굴하고 항암 효과를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상용화해 암환자 개개인에게 맞춤형 항암 치료제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이세훈 교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최정균 교수·김정연 박사 과정생, 정밀의료 전문기업 '펜타메딕스'가 함께 내놓은 최신 연구 결과다. 연구팀은 개인 맞춤형 항암 백신에 활용하는 신생 항원을 발굴하고 유효성을 예측하는 AI 딥러닝 모델 '딥네오(DeepNeo)'를 구축하고 실제 항암 반응성(항암 효과)도 규명했다.
◆ '항암 인증서' MHC 활용 암백신... '개인 맞춤형 항암시대' 단초
최근 의료계는 차세대 항암치료 기법으로 우리 몸의 자연면역 원리를 활용하는 '암백신' 개발에 몰두 중이다.
암백신은 인체 면역세포가 암 종양 세포에 작용하도록 조건과 환경을 조성해 암세포만 정확히 사멸하는 것을 목표한다. 기존 항암 치료제가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세포와 조직에도 영향을 줘 환자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고통을 주던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다. 종양이 커지기 전에 사멸시킬 수 있어 암 예방 효과도 있다.
이 연구는 '주조직적합성복합체(MHC)'를 이용한 암백신 기술이다. 유전자 단백질 뭉치인 MHC는 면역 과정에서 이물질이나 세균 등 우리 몸이 공격해야 할 대상(항원)을 인식하고 지정하는 매개체 혹은 인증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는 T세포 등 대식세포의 면역 원리를 활용한 기존의 기술에서 더욱 진일보한 형태다. T세포의 면역반응을 MHC가 유도하기 때문이다. 즉, T세포는 우리 몸에 침투한 이물질과 병원균을 잡아먹어 감염을 막는데, 이에 앞서 MHC가 T세포의 공격 대상을 정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MHC는 우리 몸에서 암세포의 돌연변이에서 나온 단백질 조각과 결합한 후 암세포에 대한 항원을 만든다. 이론적으로 MHC는 수백 종의 새로운 항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상용화하면 개인 맞춤형 항암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수백 가지의 암백신 중 환자 개인마다 항암 효과는 뛰어나고 부작용이 적은 종류를 찾아 처방하는 것이다.
◆AI로 기존 기술적 한계 극복... "암백신 상용화 앞당기길"
이번 연구는 기존의 한계점도 뛰어넘었다. MHC가 T세포에 암세포를 정확하게 공격을 유도할 수 있는 항원의 종류가 많이 밝혀지지 않아 이를 정확히 가려내는 기술이 필요했다.
이 문제는 AI 딥러닝 기술로 해결했다. 암세포의 돌연변이 단백질과 MHC 단백질 사이의 아미노산 구조 결합의 특성을 학습시켜 T세포의 항암 반응성을 예측하도록 설계했다. 이 과정에서 MHC 1형뿐 아니라 2형을 활용한 것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MHC 2형은 이전까진 정확한 면역반응 유도 과정이 거의 밝혀지지 않아 활용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해당 딥러닝 모델로 새롭게 발굴한 항원이 유효한 항암 효과를 보인다는 것도 대규모 암 유전체 데이터, 면역치료 환자 데이터, 동물실험 등을 통해 규명했다.
이세훈 교수는 "이번 연구로 예측이 어려워 치료에 활용하지 못했던 'MHC 2형 기반의 암백신(CD4 T세포 면역 시스템)'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코로나19 백신을 통해 'mRNA 백신 플랫폼'의 검증이 시작된 만큼 같은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암백신 역시 빠르게 상용화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펜타메딕스 조대연 대표는 "이번에 개발한 딥러닝 모델을 항암백신 개발에 적용해 향후 효율적인 '개인 맞춤형 항암 치료제' 기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했으며, 논문은 유명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 최근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