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무대, 빠르게 영향력 넓히는 미국 원격의료
[원격의료, 세계인의 삶 바꾼다] (6)-2 미국, 원격의료의 격전장
미국 원격의료는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빠르게 발전했다. 이제 활동 무대는 미국을 넘어서 전세계로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글로벌 거물 텔라닥의 합병식 성장 …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텔라닥은 미국 최초의 원격의료 서비스 앱을 만든 회사로 미국 시장점유율이 70% 이상이다. 2002년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출발한 지역 업체였지만 2005년 전국으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2007년 회원 100만명을 돌파한 이후 지난해 미국내 유료회원만 5360만명(가입자 기준 7850만명)으로 늘어 14년간 53배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텔라닥은 미국만의 회사는 아니다. 해외 175개 국가에서 40개 언어로 서비스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지난해 원격의료 이용횟수는 미국 329만1000회, 해외 111만 6000회로 총 440만7000회 중 해외 비율이 1/4을 조금 넘는다. 회원 가입비로 얻는 수익은 미국 4억6991만6000 달러(약 6108.9억 원), 해외 6681만1000 달러(868.5억 원)로 해외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12%다.
텔라닥에서 진료하는 의사 조합에 가입한 의사만 3000명이 넘는다. 전문 상담사나 진료 간호사 등 450개 분야의 전문가 약 5만5000명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급성 질환을 제외한 대부분 질환을 원격의료를 통해 진료한다. 지난달 텔라닥은 5000만 방문자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미국인 4명 중 한 명은 고용주나 가입 보험회사를 통해 이 회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미국인은 공공의료보험을 제외하곤 고용주나 보험사를 통해 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원격의료 업체를 활용해 고용주나 보험사가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텔라닥은 미국 자본시장의 특징인 투자유치와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면서 성장해왔다. 2009년 900만 달러(약 117억원)의 자금을 조달한 데 이어 2011년 2260만 달러(약 2938억원) 모금에 성공했다. 그 사이 에이티앤드티(AT&T), 아이트나(Aetna) 등 대형 고객을 유치하면서 50개 주에 원격의료를 제공했다. 2013년에는 경쟁사인 컨설트 에이 닥터(Consult A Doctor)를 인수하고 2014년 아메리 닥 (Ameri Doc,) 2015년 베터 헬프(Better Help)를 인수하고 뉴욕증시 상장에 성공했다. 이후로도 경쟁업체를 매년 인수하면서 라틴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의사를 고용한 업체나 해외 현지 진료업체를 인수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시장을 확장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많은 비용을 쓰고 있는 탓인지 아직 경영 실적은 좋지 않다. 최근 폭은 크게 줄고 있지만 아직 적자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2021년 8월 293달러까지 치솟았던 주가가 요즘은 28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미국 금융시장의 유동성 축소라는 외부적 요인도 영향을 미쳤지만, 원격의료의 수익성에 대한 기대감이 코로나19 팬데믹 확산기보다 크게 하락한 탓도 크다.
지역기반 가상 병원도 이미 등장…집이 중환자실
2015년 미국 농업지역인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세계 최초로 원격의료에 특화된 가상진료센터(4층 3500평 규모)가 문을 열었다. 지역 병원인 머시(Mercy)가 만든 이 센터는 입원시설이 없고 찾는 환자도 없어 ‘병상 없는 병원’(hospital without beds)으로 불린다. 고성능 쌍방향카메라, 인터넷에 연결된 각종 의료장비,실시간 생체신호 등을 이용해 다른 병원이나 집에 있는 환자를 의사가 진찰하고 간호사가 보살핀다. 1주일에서 2, 3번씩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각종 측정기에서 환자의 위급함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리면 의료진을 급파해 조치를 취하거나 환자를 병원으로 데리고 올 수 있다.
만성질환자가 집에 머물면서 받는 원격진료의 장점은 명백하다. 우선 환자의 입장에서는 많게는 하루에 수천 달러나 하는 입원비를 절약할 수 있다. 게다가 통원이 필요 없기에 병원, 길거리 등 외부 접촉을 통한 감염의 위험도 크게 줄어든다. 집이라는 익숙한 환경 역시 환자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준다. 병원은 병원대로 만성환자가 아닌 응급환자 중심으로 병상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가상병원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다. 농무부(USDA)는 아칸소, 캔자스, 미주리 및 오클라호마주 등 농촌 지역 의료 서비스 제공 확대를 위해 각종 장비의 설치비를 지원했다.
2011년부터 3년간 약 150만 달러(약 19억5000만 원)가 당뇨병, 심장병 및 호흡기 질환을 포함한 만성병 환자의 모니터링 장치 등 설치에 쓰였다. 이 센터는 2017년에 이미 700명 이상의 의사, 간호사 및 직원으로 구성된 팀이 75만 명 이상의 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 병원에 가려면 수십 km나 차를 타고 달려야 했던 미국의 일부 농촌 의료 인프라에 혁신적 변화가 생긴 것이다.
미국 의료 컨설턴트인 컬미네이트 케어(Culminate care)의 마이크 리 씨는 “지역병원에서는 환자를 밀착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원격의료를 한다”면서 “텔라닥과 같은 대형 원격의료업체와는 달리 이미 잘 알고 있는 환자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다”고 말했다.
지역 원격의료의 가격 경쟁…세계에 열린 진료
미국에는 전국적 영업을 하는 원격의료업체가 텔라닥 외에도 많다. 지난달 미국 건강정보지 ‘헬스라인(Healthline)은 시세미케어(Sesame Care), 플러시케어(PlushCare), 미엠디(MeMD), 암웰(Amwell), 엠디라이브(MDLive) 등 10개 업체의 서비스를 평가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소규모 지역을 기반으로 영업하는 업체도 적지 않다.
대다수 병원이 대면진료와 원격의료를 병행하면서 무차별 경쟁을 벌인다. 때문에 가격 경쟁도 치열하다. 진료의 질은 알 수 없지만 가격 차이가 상당하다.
케이헬스(K Health)란 업체는 홈페이지에 다른 원격의료 업체와 비용을 비교해 게재하고 있다. 케이헬스는 응급 의료의 경우 35달러를 받는다. 암웰(79달러), 미엠디 (67달러) 등과 비교하면 저렴하다고 홍보한다. 정신건강의 경우 격차는 더욱 심하다. 케이헬스는 한 달에 29달러를 받고 있지만, 미엠디는 정신과는 첫 방문에 279달러, 이후 진료당 109달러를 받는다.
한국 원격의료 솔루션 업체인 메디히어가 뉴욕에 설립한 닥터히어의 경우 홈페이지에 팝업창에 1년간 99달러만 내면 개인 주치의에게 무제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광고를 낸다. 한 달 59달러를 내면 무제한으로 대면진료와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다. 닥터히어는 한인 의사가 있어 미국 교포나 주재원 등이 많이 이용한다.
이 병원의 가정의학과 의사인 이현지 대표는 “영국 독일 포르투갈 등에 사는 교포들도 많이 진료를 받는다”면서 “한인 여행객들이 병원을 찾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뉴욕에 기반을 둔 지역 병원이면서도 원격의료와 한국어라는 언어의 특성과 장점을 기반으로 세계를 향해 뛰고 있는 셈이다.
수십년 다져온 성장의 기틀 …팬데믹에 폭발적 증가
미국의 원격의료 성장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수십년에 걸쳐 다져진 기반이 코로나19 펜데믹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미국은 1920년대에는 무전을 통해 해상 응급의료를 지원했고 1960년대에는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네브래스카대 심리학연구소가 우주비행사들의 심리를 돌보는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1970년대에는 우주비행사들의 건강을 원격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 시스템은 오지의 진료를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아리조나주 남서부 파파고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이뤄진 원격 모니터링 프로젝트는 1977년까지 지속됐다.
1996년 연방보건복지법과 일부 주정부의 원격의료개발법이 제정되면서 농촌 및 오지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원격의료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또 이 해에 개인의 의료 정보서비스 이용이 허용됐다. 원격의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규제를 푼 것이다.
1997년 균형재정법으로 연방재정법으로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어의 원격의료에 대해 보험급여가 적용되면서 주별로 점점 확대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2020년 3월 전체에 보험적용이 확대됐다. 이로부터 1년간 메디케어 수혜자 2800만명이 원격의료를 했다. 이는 2019년 대비 88배의 증가세였다.
여전히 남은 과제들
원격의료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원격의료의 질은 초기부터 논란이 돼왔다. 원격의료를 통해 응급환자를 직접 처치하거나 수술하지는 않기 때문에 사망사고 등 심각한 의료사고나 부작용 등이 정식 보고된 적은 없다. 2016년 미국의학회 피부과학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원격의료의 경우 사진만으로 진단이 가능한 경우는 적중률이 높았으나 의사가 직접 세밀히 확인하고 추가 정보가 필요한 질병이 경우 오진율이 높아졌다.
미국의료비용관리협회(Healthcare Financial Management Association)는 원격의료에 대한 사이버공격 방어 비용이 치솟는다는 보고를 하기도 했다. 인터넷통신망을 이용하는 모든 분야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원격의료나 전자건강기록에서 나타나면 혼란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원격의료가 비용적으로 저렴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차례 진료하고 필요하면 별도로 검사를 받는 게 대면진료보다 저렴하지 않다는 일부의 주장도 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원격의료는 이미 미국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미국 원격의료 업체들은 시스템과 경쟁,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튼튼한 체력을 갖추고 세계 시장을 넘보고 있다. 환자와 병원 또는 의사를 인터넷으로 연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어느 나라나 만들 수 있지만 이를 산업화하는 시스템이나 제도, 경제적인 구조를 갖춘 나라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은 원격의료 발전 과정에서 의사 집단 등 이해관계자들 간의 갈등이 거의 없었다. 방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미국 원격의료의 빠른 발전의 가장 큰 기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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