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발작 악화시키는 원인 포착
쥐 실험에서 발작 이후 뇌 신경세포 감싸는 미엘린의 이상증식 발견
뇌전증 발작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뇌의 신경세포를 감싸는 미엘린의 이상 증가로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4일 동안 미국 테네시주 네슈빌에서 개최된(이하 현지 시간) 미국뇌전증학회(AES) 연례 학술대회에서 소개된 미국 스탠포드대 연구진의 논문을 건강의학 웹진 ‘헬스데이’가 5일 보도했다.
미엘린은 신경세포의 축삭돌기를 여러 겹으로 감싸는 지질이 풍부한 백색의 지방질 물질이다. 전선의 플라스틱 피복과 같은 역할을 해 신경세포를 통해 전달되는 전기신호가 누출되거나 흩어지지 않게 보호한다. 우리말로 '말이집'이라고 하는데 미엘린이 감싸고 있는 신경세포를 말이집신경세포, 그렇지 않은 신경세포를 민말이집신경세포라고 부른다.
스탠포드대 줄리엣 놀스 교수(신경학)는 “뇌전증 발작이 뇌의 발작 네트워크의 일부 영역에서 미엘린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런 미엘린의 변화가 다시 질병을 악화시킨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설을 바탕으로 뇌전증 발작을 일으키도록 조작한 쥐의 뇌를 조사했다. 그 결과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쥐의 뇌에서 말이집신경세포가 증가하고, 그 말이집이 더 두꺼워지는 것이 관찰됐다.
지금까지 미엘린이 뇌에서 일단 형성되면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연구는 미엘린의 구조가 더 역동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엘린 구조가 뇌 활동에 의해 변화된다는 것이다. 놀스 교수는 “신경 활동이 미엘린 구조를 변화시키고 미엘린 구조의 변화가 차례로 뇌의 기능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을 이를 감안해 뇌전증 발작이 미엘린의 형성을 바꿀 수 있는 신경세포 활동을 가져오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다발성 경화증처럼 잘 알려진 퇴행성 질환은 무엇인가가 미엘린 수초를 신경 세포로부터 뜯어냄에 따라 발생한다. 뇌전증 환자가 의식을 잃게 만드는 결신 발작은 그와 반대로 미엘린이 이상 증가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판단이다.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뇌전증센터의 딜레 나이르 박사는 미엘린이 형성되는 것은 정상적인 과정이지만 뇌전증 발작이 일어나게 조작된 쥐 모델에서의 발작은 미엘린의 비정상적 형성이 촉진돼 더 쉽게 일어나게 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런 악순환을 몇 가지 방법으로 중단시킬 수 있음을 발견했다. 항경련제가 투여된 쥐는 비정상적인 미엘린을 형성하지 않았다. 이는 미엘린의 이상증식이 발작을 야기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또 연구진이 유전자 변형이나 약물을 통해 미엘린 형성을 억제하면 쥐의 발작 횟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하는 것이 관찰됐다.
미국 터프츠 의대의 크리스 덜라 교수(신경과학)는 이번 연구에 대해 “미엘린 구조를 간질 발작과 연관시킨 최초의 연구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연구는 발작이 시작되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치료법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면서 “뇌전증 환자의 기억상실이나 사고력 약화 같은 다른 문제를 미엘린 구조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놀스 박사는 뇌전증 발작과 미엘린의 발달 간의 관련성을 밝히기 위해 더 많은 쥐실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엘린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발작에 대한 반응이 건강한 미엘린 형성을 방해하는지, 발작 후 미엘린 변화가 뇌의 전체에서 일어나는지 특정 부위에서만 일어나는지를 추적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한 그는 “자기공명영상(MRI)와 뇌파전기기록술(EEG) 같은 도구를 통해 인간의 뇌전증 발작에 미엘린의 구조와 기능이 유사하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하는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의학 회의에서 제시된 연구 결과는 동료 검토 저널에 발표될 때까지 예비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