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를 ‘간병’할 수 있을까?

[김용의 헬스앤]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해 간병이 필요한 중년들이 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자유롭게 ‘싱글 라이프’를 즐기던 사람도 아프면 결혼한 사람이 부럽다. 곁에서 보살피며 시중들어 주는 옆지기가 절실한 것이다. 고열로 뜨거운 이마를 만져주며 걱정만 해줘도 한결 낫다. 특히 골절상이나 암 등 치료가 오래 걸리는 병에 걸리면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형제-자매도 한 두 번이지 장기간 시중들 들 수 없다. 결국 돈을 주고 간병인을 써야 한다.

나이 들면 ‘자다가 편하게 죽는 게 소원’이라는 말을 한다. 오랜 간병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다. 어느 노인은 “내가 ‘거기’를 가야 하는데...”라는 말을 되뇌인다. ‘거기’는 바로 요양병원이다. 어르신들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이란 단어를 쉽게 꺼내지 않는다. 3년여 코로나19 유행 동안 사망자의 절반이 이곳에서 나왔다. ‘현대판 고려장’이란 말이 과장된 수식어가 아니다.

많은 환자들이 정들었던 ‘내 집’에서 죽기를 원한다. 하지만 실제로 숨을 거두는 곳은 의료기관이다. 요양병원도 법적으로 의료기관 중 하나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들이 재활-치료를 돕기 때문이다. 의료법에 근거해 치료비도 건강보험에서 나온다. 코로나 유행 중 환자가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곁에는 낯선 외국인 간병인만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가족은 병원 측의 ‘위독’ 연락을 받고서야 급하게 오다 임종도 못 본 경우가 적지 않았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 간병’ 뿐만 아니라 요즘은 ‘중-중 간병’도 흔하다. 혈관병인 뇌졸중(뇌경색-뇌출혈)으로 몸의 마비가 심해 중년의 나이에도 투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 곁에는 시중들 사람이 필요하다. 투병 초기에는 남편이나 아내가 간병을 한다. 요양병원 입원은 미루고 또 미룬다. 그러다 힘이 부치면 중년의 ‘젊은’ 나이에 요양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17년 동안 치매 아내를 간병한 남편의 사연이 방송에 소개됐다. 경기 성남시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77세 남성은 “아내의 대변을 손으로 치우는데 냄새를 못 느꼈다. 그것이 사랑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두 사람이 만나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부부는 삼남매를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했다. 이제 살 만해 졌을 때 아내에게 알츠하이머 치매가 찾아왔다. 그는 17년 동안 남편을 못 알아보는 아내를 극진히 간병했다. 아내의 마지막 순간도 간병인이 아닌 남편이 지켜봤다.

중년의 나이에도 간병은 눈앞의 현실이다. 내가 간병을 할 수 있고, 반대로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때 내 곁에는 누가 있을까? 낯선 외국인 간병인? 수십 년을 함께 한 내 남편, 내 아내라면 한결 마음이 편할 것이다. 하지만 간병은 참 힘든 일이다. 간병하다 골병 들어 같은 환자가 될 수도 있다. 누구나 77세 상점 사장님처럼 간병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령자들은 몸이 아파도 내 집에서 머무르길 원한다.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2020년)’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56.5%는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 31.3%는 요양시설 등을 이용하고 싶다고 했다. 간병을 가족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많은 선진국들은 노인 환자의 경우 요양시설이 아닌 가정이나 소규모 지역사회에서의 케어를 권장한다. 거동이 불편해도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의료와 간병 서비스를 받는 형태다. 우리나라도 ‘노-노 간병’, ‘중-중 간병’을 이런 방식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

직장인의 월급에서 매달 떼어가는 장기요양보험은 간호·간병과 함께 식사 등을 해결해준다. 장기요양보험의 이런 재가 서비스를 대폭 확대해서 남편, 아내가 간병 부담 없이 환자의 시중을 들 수 있게 해야 한다. 말동무 역할만 하는 게 최종 목표다. 나이 들어 아픈 사람은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가 절실하다. 실제로 치유에도 큰 도움이 된다. 노인 돌봄의 주체를 시·군·구 지방자치단체로 일원화해 간병, 식사, 세탁, 병원 방문 등의 서비스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 힘든 ‘노-노 간병’은 ‘노-노 말동무’가 될 수 있다.

많은 환자들이 마지 못해 요양시설로 향한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도 “죄송하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환자들은 병세가 악화되면 내 남편, 아내, 자녀들의 손을 잡고 떠나고 싶어한다. 아프면 피붙이가 그립다. 더 이상 치매 아내를 오래 간병한 남편이 미담으로 소개되지 않고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 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국가가 지원하는 간병 서비스가 대폭 확대되어 남편, 아내가 아픈 배우자의 말동무만 하길 기대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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