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취제로 우울증 치료? (연구)
치료 내성 424명에게 10회 투약 후 반응율 72%, 완화율 38%
전신마취제인 케타민을 정맥주사로 맞은 사람들이 우울증, 불안감, 자살충동에서 벗어나게 해주는데 상당한 개선효과를 보였다는 임상 연구결과가 나왔다. 12일(현지시간) 《임상정신의학저널(Journal of Clinical Psychiatry)》에 발표된 미국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CNN이 보도한 내용이다.
케타민은 병원에서 주로 마취제로 사용되는 강력한 약물이다. 한동안 몽환적 상태를 가져온다고 해서 ‘스페셜 K’라는 별칭의 ‘클럽 약물’로 남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의료진이 제한된 처방을 할 경우 우울증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는 논문이 잇따라 발표됐다. 마국에서도 우울증 치료제로 공식 승인된 것은 아니기에 의사 직권으로 처방이 가능한 '오프 라벨' 약물로 분류돼 있어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미국 버지니아주 일대 정신과 전문의들로 구성된 연구진은 2017년 11월~2021년 5월 자살충동, 우울증, 불안감 등을 가진 환자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케타민 처방 클리닉 3곳에서 치료받은 치료내성 우울증 환자 424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진료소를 방문할 때마다 환자들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 설문조사를 작성했다. 환자들은 21일 이내에 6차례의 케타민 주사를 맞았다.
연구진은 조사 대상자의 절반이 6주 내에 치료에 반응했고, 20%는 우울증 증상의 뚜렷한 완화를 보였다고 밝혔다. 10회 투여 후 반응율은 72%, 완화율은 38%로 나타났다. 자살 충동을 느낀 환자의 절반은 6주 만에 차도를 보였으며 불안감 환자는 치료과정에서 30% 완화효과를 보였다.
치료 초기 단계의 반응 속도는 치료 저항성 우울증에 대한 경구 약물 및 경두개자기자극요법의 반응 속도와 유사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완화율은 경두개자기자극요법과 동등했지만 최적화된 전기경련자극요법의 효과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두개자기자극요법과 전경경련자극요법은 모두 비용이 더 많이 들고 추가 위험을 수반할 수 있다.
연구의 한계점은 무작위 선정된 대조군과 비교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수액 주입을 거부한 사람들을 조사하지 않았고, 환자들의 보고에만 의존했다. 게다가 해당 치료의 부작용을 체계적으로 평가하지 않은 채 기억력 및 인지력 저하 같은 장기적이거나 영구적인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종전 연구들만 인용했다.
논문을 검토한 예일대의 제라드 사나코라 교수(정신의학)는 “많은 임상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면서도 부작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점은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케타민은 약물 남용에 대한 우려가 크기에 부작용에 대한 관찰이 필수적이며 대조군과 비교를 통해 유익성과 위해성이 객관적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케타민은 심각한 기분장애와 정신질환과 싸움을 위해 우리의 무기고에 추가해야 할 치료법의 하나로 고려할 수는 있지만 책임감 있고 신중하게 사용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케타민의 사촌격인 에스케타민(esketamine)을 이용한 비강 스프레이를 치료저항성 우울증 치료제로 승인했다. 이번 연구의 연구진은 단일분자 형태의 에스케타민이 아니라 두 가지 형태의 케타민 분자를 사용하는 라세미케타민(racemic ketamine)이 에스케타민보다 더 저렴하고 의료보험 절약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psychiatrist.com/jcp/depression/clinical-effectiveness-intravenous-racemic-ketamine-treatment-resistant-depression-suicidal-ideation-generalized-anxiety-symptoms/)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