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만 가면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 '소아 진정' 필요한 이유
김진태 서울대병원 교수, "마취와는 다른 개념, MRI처럼 통증 없는 검사에도 시행"
어린 아이들은 병원에서 검사나 치료를 받을 때 안아달라고 보채거나 온몸을 버둥거리며 진료를 거부한다. 아이가 몸부림을 치면 검사나 치료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 이럴 때 아이를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바로 '소아 진정'이다.
아이는 성인과 다르다. 성인은 의료인의 요청에 따라 몸을 움직이지 않고 검사나 시술을 받을 수 있다. 가령 진단을 위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받아야 한다면, 성인 스스로 검사장비에 누운 뒤 고정된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아이들은 검사실에 혼자 들어가는 일부터 난관이다. 아이는 보호자 없이 혼자 있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검사 중 발생하는 소음 등도 아이가 몸부림치는 원인이 된다.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진태 교수는 "아이가 움직이면 검사 자체가 진행되지 않아 진단과 치료 과정이 지연된다"며 "아이가 진정할 수 있도록 '소아 진정'을 시행하면 진단과 치료를 원만하게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소아 진정은 아이가 검사나 시술을 받을 때 진정할 수 있도록 약물을 투여해 불안감, 통증, 불편함 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수면 마취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소아 진정은 내시경 검사나 골수 검사, 상처 치료 등 통증이 심한 시술에도 사용되지만 MRI처럼 통증이 없는 검사에서도 얕은 단계로 시행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진정 상태가 깊어지면 마취 단계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마취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며 "소아 진정을 진행하면 검사나 시술이 필요한 아이가 편안하게 잠들거나 잠들진 않더라도 통증과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는 검사나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큰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데, 소아 진정이 검사나 치료에 대한 나쁜 기억을 형성하지 않도록 돕는다.
소아 진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다. 진정을 진행할 땐 마취에 준하는 장비와 의료 인력 등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진정 약물에 의해 호흡 이상이나 무호흡, 저혈압, 서맥 등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의료진이 진정을 시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환자안전주의경보'에 의하면 진정 과정에서 환자 감시에 미흡해 저산소증, 저혈압, 부정맥 등이 발생해 사망한 소아 환자 사례가 있다. 김 교수는 "진정 담당의가 진정 전 아이의 상태를 평가·기록하고 진정 중에는 산소포화도, 맥박을 포함한 의식수준을 5~10분마다 감시하고 기록해야 한다. 아이가 깨어날 때도 의료진이 필요하고 회복 과정에서는 아이의 활력징후를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 평가, 환자 감시 시설 및 장비, 진정 약물 투여 방법, 진정 담당자 배치 및 교육, 진정 중 감시 등에 미흡하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검사나 시술 목적, 환자 상태에 맞는 적절한 약제와 용량을 선택하고 진정 과정을 주의 깊게 감시하고 환자 상태에 변화가 발생했을 때 적절히 대처하는 전반적인 과정 모두가 중요하다.
김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마취통증의학과 연구팀은 '환자중심의료기술최적화사업단(PACEN)' 연구과제로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소아 진정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얕은 진정, 중간 진정, 깊은 진정에 각각 적용할 수 있는 약물 투여 방법 ▲진정 중 환자의 안전을 체크하는 감시 방법 ▲합병증 예방법 등 다양한 세부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진정 약물은 정맥주사로 투약하는 법, 시럽을 먹는 법, 콧속으로 주입하는 법 등이 있는데 이들의 안전성과 효과, 기존 약물과 새 약물의 조합도 비교 연구하고 있다.
이번 연구가 마무리되면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소아 진정 가이드라인'이 발표될 예정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소아 진정은 아이의 검사 및 치료 효율을 높이고, 소아 진정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진 양성에도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