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망증일까, 치매 문턱 '경도인지장애'일까?
[소아크론병 명의 최연호의 통찰] ⑤망각이 낳는 소확혐
나이가 들어가며 깜빡깜빡 잊는 일이 잦아짐을 느낀다. 단순한 건망증이면 좋겠는데 옆에서는 ‘경도인지장애’ 아니냐며 놀리기도 한다. 사실 경도인지장애는 정의 상 치매로 진행하는 중간 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농담이라도 기분이 서늘해진다.
건망증은 약속 시간이나 날짜를 잠시 망각한 경우이지만 경도인지장애는 약속 자체를 잊거나 그와 관련된 사실들을 완전히 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바로 경도인지장애 진단이 내려지지 않으며 여러 검사를 시행하고 오랜 기간 추적하면서 진단한다. 그래도 정상 노화 현상인 건망증에 대해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를 접하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노화 속도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운동이다.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이면 금상첨화이기에 아내에게 골프를 권유했고 이제 보기플레이어를 넘어서려는 아내는 골프를 꽤 즐겨 한다.
겨울에 접어든 어느 주말, 친구 부부와 골프 모임을 가지기로 했다. 얄궂게도 그날 따라 영하의 기온이라서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았다. 새벽에 정신없이 나와서 클럽하우스에서 옷을 갈아입고 식사를 하려는데 아내가 다급하게 얘기했다.
“나 국밥 시켜줘요. 밥 나오는 동안 골프샵에서 양말 사가지고 올 게요. 양말을 놓고 왔나 봐.” 그 많은 양말을 집에 두고 또 비싸게 하나를 산다고 하니 속이 조금 쓰렸다. 오전 라운딩이 끝나고 락커룸으로 돌아왔는데 오후조로 플레이를 시작할 중년의 두 남자가 내 앞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 참, 집에서 나올 때 뭔가 찜찜했는데 역시나 모자를 안 가지고 왔네?”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나 사가지고 나가.” 두 사람의 대화에 속으로 웃음 지으며 샤워를 하려고 준비하는데 친구가 옷도 못 갈아 입고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왜 그래?” 내 질문에 친구가 손에 락커 번호표를 든 채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침에 이 번호 락커에 옷을 다 넣어 놨는데 지금 열어보니 아무 것도 없어.” 그 번호의 락커에 넣지 않고 실수로 다른 곳에 넣었다는 의미였다. 직원과 함께 주변의 락커를 여러 개 열어 봤는데 다 아니었다고 했다.
도대체 어디에 넣은 걸까? 친구는 직원과 함께 찾아보겠다며 다른 장소로 움직였다. 샤워를 마칠 때까지도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 1층 로비에 나머지 세 사람이 모였다. 자초지종을 친구 부인에게 알리고 친구를 기다렸지만 계속 소식이 없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친구 부인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혹시 지금쯤 다 해결돼서 샤워 마치고 락커룸에 와 있을 수도 있으니 전화 한번 해보지 그래요?” 그랬더니 친구 부인이 겸연쩍은 듯 말했다. “저… 아침에 나올 때 폰을 놓고 왔나 봐요.”
건망증은 삶의 매우 정상적인 부분인 것 같다. 사람들이 얘기하고 걱정하는 경도인지장애는 아마도 대부분이 건망증일 게다. 경도인지장애는 기억력이 많이 상실돼 결국 알츠하이머 병으로 이행되는 경우도 있고, 망각이 심하지는 않지만 인지 기능이 손상됐다면 혈관 치매가 의심되기도 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정보에 자주 접하는 우리는 사소한 망각에도 화들짝 놀라 자신이 경도인지장애에 해당되지 않을까 불안에 떨게 된다. ‘내 건망증, 병의 시작 아닐까?’ 나쁜 기억은 이상하게 잊히지도 않는다.
나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세계 곳곳에 알박기를 해놓은 ‘소확혐(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은 꼬리인 주제에 몸통을 흔들며 언제나 머리 행세를 한다. 병이라고 믿는 순간 병만 보인다. 젊어서 전전두엽을 충분히 이용하고 좋은 경험을 많이 한 치매 환자는 순하고 ‘예쁜 치매’로 가게 되고, 나쁜 기억만 집착하고 늘 불안해하던 치매 환자는 화를 잘내는 ‘미운 치매’로 가는 법이다. 나이가 들며 유독 건망증이 심해진다고 불안해하지 말자. 이 또한 정상 노화과정일 테니 삶의 일부로 같이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잠깐, 친구가 어떻게 락커 번호를 잘못 읽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451을 순간적으로 421로 착각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숫자의 인지 실패. 친구는 정상일까 아니면 경도의 인지 장애일까? 갑자기 또 불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