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보는 의사 vs 연구하는 의사

[김용의 헬스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상위권 고등학생들의 의과대학 집중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더욱 심화되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최근 마감한 2022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에서 자연계 전체 지원 분야 중 의·약학계열의 비중은 12.6%로 지난해 8.9%보다 3.7%포인트 증가했다. 이공계열 학과의 취업난까지 더해져 의사 등 전문직 선호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의 가전, 반도체, 스마트폰 강국이 된 것은 70-80년대 최우수 학생들이 공과대학, 이과대학으로 몰렸기에 가능했다. 당시 물리학과, 전자공학과, 기계공학과, 화학공학과 등의 입시 커트라인은 의대를 앞선 곳이 많았다. 과거 일본의 소니, 도시바 전자제품을 부러워했던 공대생들이 오늘날 미국에서 50% 이상이 사용하는 한국 전자제품 개발-생산의 주역이 됐다.

반면에 백신 개발 같은 연구 분야는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 국산 코로나19 백신은 임상3상 얘기가 들리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런 연구에 몰두하는 의사과학자(의과학자)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고 있지만 의과학자 분야는 극소수만 지망하고 있다. 대부분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의과학자 양성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의학전문대학원은 실패로 끝나가고 있다. 지난 2004년 도입된 국내 의학전문대학원들은 대부분 의과대학 6년제로 회귀했다. 의전원은 다양한 학문배경을 가진 의사를 양성해 우수한 의과학자를 육성하자는 목적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의전원 졸업생들은 당초 취지와는 달리 대부분 환자 진료를 위한 병원 취업이나 개원의로 진출했다. 자신의 안정된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려면 약리학 전문가와 한 팀을 이뤄 모든 시간을 연구에만 매진하는 전일제 의과학자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질병을 가장 잘 아는 의사들의 기초연구가 절실하다. 한국의 의료기술은 세계수준에 근접했지만 연구 분야는 뒤떨어져 있는 게 현실이다. 유능한 의과학자들을 키워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과대학은 ‘세계 1위 제품의 산실’이 되었지만, 의과대학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의과대학 중 9개 대학은 5년 동안 의과학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대학들도 소수에 그치고 있다. 국내 의대들이 진료의사 배출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연구교육을 담당할 교수진이나 예산 확보도 어렵고 무엇보다 의과학자를 지망하는 학생이 너무 적다. 대학병원이 환자들을 모아 돈을 버는 진료 분야에 집중하다보니 연구하는 의사를 양성하기 힘든 구조다. 개인 역량으로 의과학자가 되더라도 수익 위주의 병원에선 버티기 힘든 실정이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국내 제약사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막대한 투자와 시간이 소요되는 고위험 사업이기 때문에 아예 엄두를 못내는 곳이 많다. 그동안 손쉽게 남의 회사 약만 베껴 복제약만 팔아온 타성도 혁신의 장애물이다. 현재 코로나19 백신 국내 1차접종자가 80%에 육박하고 있고 2차 접종자도 60%를 넘고 있다. 그럼에도 백신 개발은 계속 되어야 한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은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을 경고하고 있다. 또 다시 외국산 백신을 확보하느라 발만 동동 구를 수는 없다. 우리 손으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야 한다. 백신은 코로나 뿐 아니라 항암제나 다른 질병에도 사용할 수 있다. 반도체나 전자제품처럼 우리도 ‘백신 강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하다.

정부 차원에서 ‘연구하는 의사’에 대한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연구소에서 정년과 상관없이 정부과제 연구비를 집행하면서 지속적으로 연구성과를 발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제약사 등 기업과의 산학협력을 더욱 강화해 의과학자의 진로를 확대해야 한다. 질병을 보는 것은 임상의사지만, 그 내부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치료약을 개발하는 사람은 바로 의과학자들이다. 임상의사 못지않은 경제적 여건을 지원하고 70, 80세에도 연구실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백신강국이 될 수 있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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