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진 머리카락, 시간 흐르면 다시 자란다
[조주희의 암&앎] 암 환자의 탈모 관리법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탈모포비아(탈모와 공포를 뜻하는 ’포비아(Phobia)’의 합성어)’란 신조어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 선천적 원인과 유전뿐만 아니라 환경오염,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습관 등의 여러 이유로 탈모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탈모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5명당 1명이 탈모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외모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탈모 시장으로 이어져 점차 그 규모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내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적은 머리 숱에 한숨을 쉬었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돈을 들여 머리가 덜 빠진다는 제품을 사기도 하고, 두피 마사지도 수시로 챙겨야 했다. 문득, 필자는 수년 간 지켜본 우리 암환자들의 마음을 다시금 헤아려보게 됐다.
암환자들은 어떨까? 일반인들이 암환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올리는 이미지 중 하나가 ‘민머리’일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드라마나 영화 곳곳에 머리카락이 없는 암환자가 등장한다. 안타깝지만 실제 암환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암환자들이 치료를 받으면서 숨기고 싶지만, 겉으로 드러나 숨기지 못하며 고민하는 문제가 바로 항암치료로 인한 ‘탈모’이다.
항암제를 맞으면 무조건 머리가 빠지는 것일까? 다행히도 아니다. 사실 머리카락이 안 빠지거나 부분 탈모만 생기는 항암제가 더 많다. 탈모는 탁산계열 항암제, 아드리아마이신, 고용량의 사이톡신 등 일부 몇가지 종류에서만 특별하게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그렇다면 머리카락은 왜 빠지는 걸까? 말 그대로 이 항암제들은 세포독성항암제로 정상세포에 비해 증식 속도가 빠른 암세포의 특징을 이용해서 만든 치료제이다. 다시 말해 빨리 자라는 세포들을 파괴시킨다. 그러다 보니 이 약을 맞는 환자의 몸 속 정상 세포도 영향을 받게 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세포가 바로 모낭 세포다. 세포독성항암제 탓에 모낭세포의 손상되어 탈모가 생기는 것이다. 머리카락 뿐만 아니라 눈썹, 겨드랑이 등 온몸의 털이 다 빠지게 된다.
어떤 이들은 “치료가 중요하지, 그깟 머리카락 빠지는 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성적으로는 무엇보다 사는 것이 중요하니 치료가 우선이고, 머리카락쯤이야 빠져도 다시 나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살아내는 이 현실에서는 그렇게 쿨하게 정리되지 않는 문제가 적지 않다. 앞서 몇몇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암환자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머리카락이 없는 모습은 암환자의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라 인식되기 때문에, 대부분 환자들이 본인이 암환자라는 것을 직장이나 지인에게 어떻게는 밝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도 금세 들통이 난다. 몇몇 사람들은 갑자기 삭발한 주변인이나, 민머리 모습의 사람들을 보면 암환자라고 수근거리기도 하고, 거리에서 낯 모르는 이의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도 견뎌내야 한다.
어린 자녀를 둔 여성암환자라면 이러한 고민이 더 크다. 엄마의 달라진 외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녀, 그리고 주위 엄마들의 시선과 질문들. 환자는 혹여 ‘아이가 내 질병 때문에 놀림이나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라는 아이에 대한 걱정에 심리적 어려움도 겪는다. 어떤 엄마는 이런 시선이 무서워 무더운 여름에도, 잠을 잘 때도 불편하더라도 집안에서 항상 가발을 쓰고 있다고 한다.
실제 필자의 연구팀에서 진행한 <항암치료로 인한 탈모스트레스와 우울증 연구>에 따르면 탈모로 인한 스트레스는 자아신체상의 변화, 심리적인 위축, 사회 활동의 제약과 함께 더 나아가 우울증으로 진행되고, 무엇보다 환자가 계획된 항암치료를 마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필자가 속한 암교육센터는 환자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결해주기 위하여 개소와 함께 암환자 외모관리 교육프로그램를 처음으로 개발해 진행했다. 시작 당시 국내 모 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서 소규모로 진행했지만, 병원내 정규 교육프로그램으로 정착됐고, ㈜아모레퍼시픽의 ‘Make up your life’라는 사회공헌프로그램으로 정착돼 국내 많은 암환자와 가족에게 온-오프라인으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처음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만 해도 ‘Make u’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오해를 받곤 했다. 암 환자한테 치료가 중요하지 무슨 외모관리냐, 화장품이나 가발을 팔려고 병원에서 장사하느냐 등 곱지 않은 시선이 그것이다. 외모관리 교육프로그램은 단순히 암환자를 예쁘게 만들어주거나 치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암환자가 항암치료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외모들에 대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보를 주고, 건강한 대응방법으로 자신감을 북돋워주는 교육프로그램이다. 우선, 치료를 받으면 언제 어떤 변화들이 나타나는지, 일상생활에서 변화한 피부와 외모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대응 방법을 알려준다. 그 예로 치료 중 사우나는 해도 되는지, 약해진 피부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탈모 후 머리카락이 없으면 샴푸를 어떻게 하는지, 듬성듬성 빠지고 새롭게 나는 새싹 머리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등 진료실에서 가르쳐주지 않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와 대처 방법을 알려준다.
암은 인생 전체에서 커다란 사건이다. 일상의 많은 부분이 변화되고, 달라진 세상에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항암치료가 질병을 치료하는데 중요해 마음 준비를 하는 것처럼, 치료를 받으면서 생기는 변화된 외모를 안고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또 다른 준비가 필요할 뿐이다.
평상시처럼 세수하고 옷 입고 외출하는 것, 아이 학교에 가서 부모 역할을 하고 직장에 나가 남들과 어울리는 별것 아니었다고 여긴 일상이, 너무나 중요한 문제가 돼 버리기 때문에 약해진 피부와 몸, 그리고 마음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돌보는 대응법을 주는 것이다. 암 치료 중에도 치료전과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라는 질문들에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그래서 환자의 마음과 일상 생활이 흔들리지 않도록…
빠진 머리카락은 시간이 흐르면 다시 자란다. 암으로 일상이 무너지는 것 같지만, 반드시 새로운 인생이 자란다. 새로운 인생이 자랄 때까지, 여러 사람의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조주희 센터장이 알려주는 두피관리법 15개
- 머리카락이 빠지고 나면 두피도 피부로 노출되기 때문에 세수를 할 때 두피도 함께 씻어주기
- 두피를 말린 뒤 두피 보호를 위해 두피에도 로션발라 주기
- 약해진 두피의 자극을 최소화하기 위해 집에서도 면으로 된 두건 쓰기
- 파마나 염색은 항암치료가 끝나고 6개월 이후에 하기
- 거품이 많이 나지 않고 알코올 함유가 없는 중성 샴푸나 손상된 모발용 제품을 사용하기
- 두피에 모낭염이 생기거나 트러블이 생기면 항암 샴푸 사용하기
- 각질이 많이 일어나면 비듬 제거 두피 용품을 한달에 1~2회 정도 사용하기
- 헤어드라이는 뜨거운 바람보다 찬바람 또는 부드러운 수건으로 말리기
- 두피의 혈액순환을 자극하고 머리카락의 성장을 돕기 위해 샤워 중1~2분 정도 두피 마사지 하기
- 머리카락이 새로 나기 시작할 때는 빗살이 적고 부드러운 빗으로 매일 아침 저녁으로 빗기
- 샴푸 전에 머리를 빗고 머리를 감고 난 다음에는 머리카락이 마른 후 머리를 빗기
- 하루종일 외부 오염물질에 시달린 머리카락을 씻기 위해 아침보다 저녁에 머리 감기
- 머리를 감은 뒤 두피 속까지 깨끗하게 말려서 머리카락 손상을 막기
- 샴푸나 린스의 잔여물이 남으면 탈모와 비듬의 원인이 되므로 머리를 잘 헹구기
- 샴푸 시 물의 온도는 미지근한 정도인 섭씨 37도로 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