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의 헬스앤] 초기 췌장암 생존율 43%의 의미
췌장암은 최악의 암으로 꼽힌다. 치료가 어려워 사망률이 높기 때문이다.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법은 수술뿐인데, 많은 환자들이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진단된다.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다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췌장암은 증상이 유독 나타나지 않아 황달이나 통증을 느끼면 암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흔히 암 완치의 기준으로 삼는 5년 생존율을 보자. 2020년 12월에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 자료를 보면 췌장암의 5년 상대생존율(2014~2018년)은 12.6%(남자 11.9%, 여자 13.2%)에 불과하다. 환자 10명 가운데 5년 이상 생존하는 사람이 1명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국내 최대 암인 위암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위암 5년 상대생존율은 77.0%에 달한다. 1-2년마다 위내시경만 잘 하면 충분히 ‘예방 가능한’ 암으로 분류된다.
췌장암은 초기에 발견해도 치료 성적이 나쁠까? 꼭 그렇지는 않다. 암 세포가 췌장을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진단되는 ‘국한(Localized) 췌장암’의 경우 5년 생존율이 42.7%이다. 반면에 암이 발생한 췌장 밖의 주위 장기나 림프절을 침범한 ‘국소(Regional) 췌장암’의 경우 17.0%이다. 췌장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부위에 전이된 ‘원격(Distant) 췌장암’은 생존율이 1.9%로 뚝 떨어진다. 간단하게 말해 췌장암을 늦게 발견하면 최악의 상황을 맞을 위험이 높다.
결국 췌장암을 일찍 발견해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위암이나 대장암은 내시경, 자궁경부암은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하지만 췌장암은 아직 뚜렷한 예방법이 없다. 일상생활에서 위험요인들을 피하고 자신의 몸을 잘 살피는 것이 최선이다.
췌장암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흡연이다. 발암물질이 가득한 담배연기는 입속, 폐, 혈액을 돌아 췌장까지 피해를 입힌다. 당장 담배를 끊고 남이 피우는 담배 연기도 피해야 한다. 필터를 통하지 않은 담배연기는 더 독하다. 흡연을 할 경우에는 췌장암의 상대 위험도가 5배까지 높아진다. 췌장암의 3분의 1가량이 흡연으로 인해 발생한다.
당뇨병이나 만성 췌장염이 있어도 췌장암 위험이 높아진다. 당뇨병은 췌장암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췌장암과 연관된 내분비 기능 장애가 당뇨를 일으킬 수도 있다. 당뇨를 오래 앓고 있거나 유전성 없이 갑자기 당뇨진단을 받은 사람은 일단 췌장암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한다. 우리나라 췌장암 환자의 당뇨 유병률은 30% 정도로 일반인(7~9%)의 3배 이상이다. 만성 췌장염은 췌장 세포의 염증으로 췌장 전체가 딱딱해져 기능을 잃게 되는 병으로 음주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따라서 당뇨병 환자나 만성 췌장염 환자는 늘 췌장암을 의식하는 게 좋다.
췌장암은 유전적 원인도 크다. 10% 정도를 차지하니 다른 암에 비해 가족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국가암정보센터 의학정보를 보면 케이라스(K-Ras)라는 유전자의 변형이 췌장암의 90% 이상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모든 암에서 나타나는 유전자 이상 가운데 가장 빈도가 높다. 부모, 형제, 자매 등 직계가족 가운데 50세 이전에 췌장암에 걸린 사람이 1명 이상 있거나, 발병 나이와 상관없이 췌장암 환자가 2명 이상 있다면 유전을 의심해야 한다. 할아버지-아버지-손자 등 3대에 걸쳐 췌장암이 생기는 것은 막아야 한다.
초기 췌장암 생존율 43%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췌장암도 일찍 발견하면 충분히 완치할 수 있다. 전체 췌장암 생존율을 높이는 것이 과제다. 무엇보다 암은 예방이 중요하다. 조기 발견해도 병원을 오가면 일상이 고통스럽다. 담배 끊고 당뇨병, 만성 췌장염 환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가족력이 있으면 늘 췌장암을 의식하고 정기검진을 꼭 받아야 한다.
자신의 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췌장암 전문 의사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암 예방에는 위험신호를 무시하는 ‘대범함’보다 조그만 증상도 살피는 '소심함'이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