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턴-전공의들은 못 말리는 존재일까?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독자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임상 의사’를 양성하는 과정은 매우 길다. 우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국가고시를 통과해야 하는데, 의학전문대학원을 거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과대학은 6년 과정이다(의학전문대학원은 4년 과정이지만 다른 학과를 졸업하고 입학하므로 실제로는 최소 8년이 걸린다).
물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받는 것은 길고 긴 과정의 중간 정도에 해당할 뿐이다. 1년의 인턴 수련과 임상과에 따라 3년 혹은 4년의 레지던트 수련이 다음 과정이며, 순조롭게 진행하면 전문의 자격을 획득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문의’ 자격만으로는 독자적으로 진료하기에 부족하다는 분위기라 1~2년 혹은 3년까지 전임의(Fellow)로 근무하는 사례가 많다.
어쨌거나 의사면허를 받은 후, 대학병원(수련병원이 정확한 표현이지만 인턴, 레지던트, 전임의를 교육하는 병원의 상당수가 대학병원이라 편의상 대학병원이라 지칭했다)에서 이루어지는 긴 수련 과정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1년차는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가장 힘든 시기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인턴에게 해당 업무를 배정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과거에는 의학과 관련 없는 잡다한 일에 인턴을 동원하는 사례가 많았다. ‘필름 찾기’는 그런 ‘잡다한 일’ 가운데 최악의 업무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2010년 이후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경험한 사람 대부분은 ‘필름 찾기’란 말에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전산화를 진행하여 진료용 컴퓨터에 접속하면 엑스레이(X-ray),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촬영(MRI) 같은 영상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전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중반까지는 X-ray, CT, MRI 같은 영상을 필름으로 보관했다. 그래서 외래진료, 병동회진에 앞서 환자의 과거 영상과 이번에 시행한 영상에 대한 필름을 찾아 준비하려고 늦은 밤과 이른 새벽에 병원 건물 지하층에 자리한 거대한 필름 창고를 헤매는 일은 인턴과 레지던트 1년차에게는 일상에 해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무렵에는 의료진이 작성하는 의무기록도 전산화하지 않아 역시 외래진료와 병동회진에 앞서 필름 창고만큼 거대한 의무기록 보관소를 뒤져야 했다. 또 필름과 의무기록이 가끔 원래 위치에 없는 사례도 있어, 그럴 때면 밤새 거대한 창고를 방황하기도 했다.
다행히 필자가 공중보건의사로 복무를 마치고 인턴 수련을 시작할 무렵, 영상과 의무기록 모두 전산화했다. 그래서 선배와 달리 필름과 의무기록을 찾아 병원 지하층을 전전하는 일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다.
대신 교수와 선배 레지던트는 우리를 볼 때마다 ‘요즘 인턴과 레지던트 1년차는 정말 편하다,’ ‘인턴과 레지던트 1년차가 필름을 챙기지도 않고 의무기록도 찾지 않으면 시간이 남겠구나’ 같은 핀잔(?)을 자주 날렸다. 특히 우리가 조그마한 실수라도 하면 ‘요즘 인턴과 레지던트 1년차는 X세대라서 그런지 개인주의적이네,’ ‘요즘 애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아 참 나약하네’ 같은 정말 듣기 싫은 잔소리를 마주했다.
그런데 최근 예전에 함께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겪은 동료를 만나면 다들 ‘요즘 인턴과 레지던트는 정말 버릇이 없다,’ ‘요즘 인턴과 레지던트는 나약하다,’ ‘요즘 인턴과 레지던트는 조금만 불합리하면 고발하거나 언론에 제보해서 문제를 키운다,’ ‘인턴과 레지던트의 근무를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하는 법 때문에 제대로 교육할 수가 없다’ 같은 불평을 토로한다.
특히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일하는 친구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을 때마다 ‘너도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면 요즘 전공의가 어떤지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요즘은 전공의가 상전이다,’ ‘옛날 선배 교수는 정말 편하게 지냈는데 우리는 전공의에 치여서 죽을 맛이다’ 등의 볼멘소리다.
이런 경향은 대학병원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의료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서 비슷한 불평과 불만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요즘 2030은 나약하다,’ ‘요즘 2030은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다,’,‘요즘 2030은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집중하며 공동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요즘 2030에는 가난을 극복하겠다는 산업화 세대의 성실함도 없고 자유와 민주를 향한 586세대의 정의감도 없다,’ 심지어 ‘요즘 2030은 독재를 겪지 않아 민주화 세대의 은혜를 모르며 공동체 의식이 심각하게 부족하여 극우에 쉽게 휩쓸린다’ 같은 망언도 들린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폼페이의 고대 로마 유적에도 ‘요즘 젊은 놈들은 나약하고 버릇없다’는 낙서가 있다. 2000년대 후반 전공의 시절 필자와 동료를 보고 ‘필름도 찾지 않고 의무기록도 찾지 않으니 참 편하겠구나’라며 지적하던 선배 의사도 역시 그 윗세대에게는 ‘나약하고 버릇없는 요즘 녀석’에 해당했을 것이다. 그러니 젊은 세대를 두고 잔소리를 내뱉고 불만을 토로하기 전에 한 번쯤 우리 자신부터 돌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