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의 헬스앤] 난소암 4기 자넷 리의 마지막 승부
당구 월드스타 자넷 리(50세·한국명 이진희)가 최근 난소암 4기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013년 한국 방문 때를 떠올렸다. 수차례 유산 끝에 뒤늦게 낳은 어린 두 딸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 그는 천생 엄마의 모습이었다. 자넷 리는 암 진단 후 SNS를 통해 “어린 딸들을 위해 암과 싸워 꼭 이기겠다”고 밝혔다.
한국계 미국인인 자넷 리는 큰 키(175cm)에 검은 드레스, 날카로운 표정과 카리스마로 상대 선수를 압도해 ‘독거미’(The Black Widow)라는 닉네임으로 통했다. 그도 이 별명에 만족한 듯 SNS 머리에 ‘Jeanette Lee, The Black Widow’로 표기하고 있다.
자넷 리는 경기 때는 독거미의 면모를 보였지만 유니폼을 벗으면 자식 사랑이 넘쳐났던 평범한 엄마였다. 지난 2013년 한국의 방송에 출연해 “처음으로 아이를 가졌을 때 펑펑 울었다. 결혼 후 아이를 갖기 위해 10년 동안 노력했다. 임신이 되기도 했지만 수차례 유산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 그가 치료가 매우 어려운 난소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암이 목, 폐, 림프절까지 전이된 난소암 4기는 5년 생존율이 10-12%에 불과하다. 필자는 자넷 리가 ‘시한부’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가 강조한대로 “암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난소의 암이 림프절까지 전이되어 상황은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난소에서 생기는 암인 난소암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 국립암센터 자료를 보면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배란으로, 일생에서 배란기가 길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난소암(난소상피암)의 발생 위험이 높다. 즉 빠른 초경이나 늦은 폐경은 난소암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또 난소암의 5-10%는 유전성이 있다. 어머니나 자매 등 직계가족이 난소암에 걸린 경우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진다. 자넷 리의 두 딸도 성인이 되면 건강검진을 철저히 받아야 할 것 같다. 유방암, 자궁내막암, 대장암을 앓았던 병력이나 석면, 활석 등에 노출된 사람도 난소암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최근에는 BRCA 돌연변이를 보유한 여성이 ‘예방적’ 난소난관 절제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유전성 난소암을 우려해 자녀 출산 계획이 다 끝나면 위험을 줄이는 난소난관절제술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유방암과 난소암을 앓은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는 유전성 유방암을 우려해 멀쩡한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기도 했다.
자넷 리의 SNS를 방문하면 어린 세 딸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 그는 샤이엔(16세)을 입양을 통해 얻었고 두 번의 유산 끝에 클로이(11)와 사바나(10)를 낳았다. 두 딸은 8년 전 한국에 왔을 때에 비해 훌쩍 컸지만, 여전히 앳된 모습이다.
자넷 리는 힘든 항암치료 와중에도 세 딸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펀딩사이트 ‘고펀드미’(GoFundMe)를 통해 “모금을 통해 세 딸의 교육 등에 쓰일 자금을 마련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이를 갖기 위해 10년 동안 고생했던 자넷 리는 자신의 건강보다 아이들의 장래가 더 걱정인 모양이다.
자넷 리는 지금 척추 부위에 철심을 박은 채 난소암과 싸우고 있다. 어릴 때부터 척추측만증을 앓아온 그는 12세 때 휘어진 척추를 펴서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했다. 허리를 당구대 쪽으로 숙이면 아픔이 밀려왔지만 끝내 세계적인 당구선수로 성장했다. 척추측만증의 여파로 목디스크 수술까지 받았고 고된 훈련으로 어깨뼈까지 마모됐다. 그래도 당구를 포기하지 않고 끝내 세계 정상에 올랐다.
자넷 리는 이제 일생일대의 마지막 승부를 하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고통스럽고 힘든 싸움이다. 바로 난소암과의 한판승부다. 그는 “당구대 앞에서 가졌던 결기를 암과의 싸움에서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한 근성과 승부욕으로 세계를 호령했던 자넷 리가 난소암과의 싸움에서도 한판승을 거두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