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와 카플란이 이룬 소망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414호 (2020-05-18일자)
현실 때문에 미룬 꿈, 도전해 볼 용기는?
20세기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는 누구일까요? 정답은 없겠지만, 많은 음악가들은 구스타프 말러를 꼽습니다. 말러는 1860년 체코의 보헤미안 지역 칼리슈트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1911년 오늘(5월18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동' 말러는 여섯 살 때 피아노 레슨을 받았고 빈 음악원에서 음악을 공부했는데,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음악뿐 아니라 역사와 철학을 공부해서 그의 곡에는 철학의 향미가 녹아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때 작곡에 응모한 콩쿠르에서 떨어진 뒤 현실과 타협, 작곡가가 아니라 지휘자를 직업으로 삼습니다. 그는 유대인은 맡을 수 없는,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의 감독직을 제안 받고 유대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합니다. 철학이 확고한 예술가로서의 고집 탓에 단원들과 마찰을 일으켰고 유대인을 싫어한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자 결국 사임합니다. 이듬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지휘를 맡지만 아르투르 토스카니니에게 밀립니다.
그래도 세계적 지휘자로 명성을 떨쳤고, 음지에서 수많은 명곡을 작곡합니다. 살아서는 그의 곡이 조명 받지 못했지만, 1960년대 레너드 번스타인이 말러의 곡들을 끄집어냈고, 한 곡 한 곡이 음악가들의 찬사를 받습니다.
말러의 교향곡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것은 2번 교향곡 ‘부활’일 겁니다. 이 곡은 말러가 꿈에서 자신의 주검을 보는 ‘유체이탈’ 체험을 한 뒤 작곡, 명지휘자인 친구 한스 폰 뷜러에게 피아노로 들려줍니다. 뷜러는 “이게 만약 음악이라면 나는 음악을 모르는 게 되네”하며 혹평합니다. 말러는 뵐러가 숨졌을 때 장례식장에서 ‘부활’ 장송곡을 듣고 2번 교향곡을 완성합니다.
‘부활’의 지휘자 중에는 길버트 카플란이 도드라집니다. 카플란은 음악학교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 그는 23세 때 카네기홀에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아메리칸 심포니의 연주로 2번 교향곡을 듣고, 충격에 휩싸입니다. 카플란은 죽기 전에 부활을 직접 지휘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을 품습니다.
카플란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경제잡지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트》를 창간해서 성공을 거둡니다. 그리고 젊었을 때 꿈을 실현하려고 음악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는 말러의 부활을 처음 들은 지 18년 만에 같은 장소 카네기홀에서 같은 교향악단 아메리칸 심포니를 이끌고 지휘자로서의 소원을 이룹니다. 말러의 곡을 있는 그대로 해석했다는 평가와 함께, 세계의 교향악단에서 지휘 요청이 쏟아졌고 내한 공연도 갖습니다.
카플란은 말합니다. “나는 두 부끄러움 중 하나를 선택했다. 하나는 남들 앞에서 지휘했을 때 느낄 부끄러움이고, 나머지는 내가 지휘하지 않았을 때 평생 후회하게 될 부끄러움이다. 이 가운데 앞의 것을 택했을 뿐이다.”
말러도, 카플란도 자신의 꿈을 이뤘습니다. 한 사람의 꿈은 사후에 평가를 받았고, 한 사람은 중년에 기대하지 못한 찬사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 자신의 마음을 충족시킨 것이 가장 큰 성과이겠지요. 혹시, 이루지 못한 꿈이 있나요? 나이가 많다고 주저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만약, 그 꿈이 정말 중요하다면 지금, 발걸음을 내딛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대한민국 베닥] 환자 어머니 조언 받아들여 거듭난 명의
어린이 혈액질환의 베스트 닥터로는 가톨릭혈액병원 소아혈액종양센터 정낙균 교수가 선정됐습니다. 정 교수는 최근 ‘코로나 봉쇄령’이 내려전 인도에서 일본을 거쳐 귀국한 5세 소녀의 주치의입니다.
그는 국내외 수많은 백혈병과 재생불량성빈혈 환자들이 진료를 원하는 의사로 정확한 지료 뿐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습니다. 환자 어머니가 귀띔한 조언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명의로 거듭났다는데….
오늘의 음악
말러의 교향곡에서 두 곡 준비했습니다. 첫 곡은 길버트 카플란이 1982년 아메리칸 심포니를 지휘해서 연주한 교향곡 2번 5악장입니다. 둘째 곡은 우리나라의 지휘자이자 벤처기업 대표인 진솔이 지휘하는 말러리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교향곡 6번 1악장 준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