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갑질? "중소병원에서는 꿈도 못 꿔요"
"간호사 태움 문제요? 중소병원에서는 상상도 못합니다."
최근 직장 내 갑질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간호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병원 내 간호사 간의 괴롭힘은 '태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움"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작년부터 태움으로 인한 간호사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면서 태움이 크게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중소병원에서 태움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병원마다 인력이 크게 모자라 신규 간호사들을 '잘 모셔야'할 입장이기 때문이다.
취업 지망생들이 대기업으로 몰리는 것처럼 의료계도 대형 병원 편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17일 열린 대한지역병원협의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중소병원의 간호인력 부족 문제가 핵심 주제로 다뤄졌다.
발제자들은 "대형병원들이 신규 간호사들을 독점해 중소병원의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다"는 주장을 했다. 심정현 학술이사는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들은 대부분 간호사 '합격 대기'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간호사를 1차로 선발해놓고 불합격자들도 '대기 합격자'로 분류해 중소병원의 인력난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간호대학을 늘려 신규 간호사를 많이 배출해도 졸업생들이 대형병원으로만 몰려 중소병원의 만성적인 인력난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병원들은 채용 불합격자까지 대기 순번으로 합격권에 올려 놓아 중소병원에서 열심히 일하는 간호사의 기대감을 자극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추가 합격 통보를 받으면 곧바로 퇴직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심정현 이사는 "수술 일정이 확정됐는데도, 대형병원 추가 합격 통보를 받고 곧바로 퇴직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중소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며 대기 합격 제도의 문제점을 질타했다.
그는 "간호사 태움은 중소병원에서는 상상도 못한다"면서 "간호인력 부족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입 간호사 대기합격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간호협회의 인권침해 실태조사(2018년 1월)에 따르면 태움은 욕설, 외모 비하, 인격모독적 발언 등 폭언이 가장 많았다. 주로 선배 간호사가 "널 낳고 어머님이 미역국은 드셨다니?" "너같이 못생긴 신규(간호사)는 처음이야" 등 모멸감을 주는 말로 신규 간호사를 괴롭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의료노동실태보고서에 의하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간호사의 76%가 이직을 고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표를 내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않다가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중소병원에서는 간호사의 이직을 우려해 대형 병원에 비해 태움이 생길 여지가 적을 수밖에 없다. 이상운 지역병원협의회 회장은 "대도시 외에는 시군구에 1~2 개일 정도로 병원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면서 "의료 인력도 서울-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려 있다. 특히 간호인력이 적정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정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지역병원협의회는 오는 4월 12일 간호인력 수급 문제와 관련, 국회 공청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일부 대형병원에서는 직장 갑질이 수그러들지 않고, 지방의 중소병원은 간호사가 없어 수술도 못 하는 세태...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환자를 치료하기는커녕 스스로 병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