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도, 퇴사도 순서 정하는 이상한 회사
[바이오워치] 국회 병원 노동자 노동 조건 실태 조사 결과 발표
계속 간호사로 살 수 있을까?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기동민, 남인순 의원실 등이 주최한 병원 내 연장 근무 대안을 논하는 토론회에서 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의료노련) 이수진 위원장이 지난 간호사 생활을 요약한 말이다.
이 위원장은 20대 시절, "이런 환경에서 계속 간호사로 살아도 되는 걸까" 하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었다. 시간이 지나면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 노동자의 삶의 질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노동자의 대표 주자인 병원 노동자의 삶은 변화가 없다.
수당을 다 받아내면 병원이 망한다
의료노련에 따르면, 병원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을 때 "연장 근무가 일상적"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67.2%로 나타났다. 주된 원인은 일상적 업무 과중이다. 절반 이상인 52.4%가 "평소 업무가 너무 과다해 연장 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그렇다고 당연하게 시간 외 근로 수당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 외 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8.2%였다.
"환자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그때 그때 연장 근무를 신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동료 간호사의 한 달간의 연장 근무 기록을 모아서 수당을 신청하려고 하니 너무 어마어마해서 다 받아내면 우리 병원이 망한다, 그런 수준이었어요."
실제로 지난해 모 의료원 산하 5개 병원에서는 무려 240억 원의 체불 임금이 적발된 적 있다. 연장 근로 수당 10억 원을 미지급한 대학 병원도 있었다.
순번제로 돌아가는 병원
병원 내의 인력 부족으로 생기는 기형적인 문화는 순번제로 나타난다. '임신 순번제'와 '사직 순번제'다. 같은 시기에 임신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로 병동 내에서 순서를 정해 임신과 출산을 하는 임신 순번제는 계속해서 문제가 되었지만, 여전히 대안이 세워지지 않고 있다.
사직 순번제도 비슷하다. 퇴사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한꺼번에 빠지면 진료 공백이 생겨, 신규 직원이 충원되고 순서가 돌아와야 퇴사를 할 수 있다. 신규 직원의 교육 기간을 포함해 5~6개월 정도는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 상황에서 휴가를 쓰기도 쉽지 않다. 병원 노동자의 휴가 평균 사용률은 65.48%. 휴가를 쓰지 못하는 이유 주된 이유는 '부서 동료에 대한 피해'가 압도적이었다. 내가 아니면 누군가는 반드시 출근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병원이 위기감 느껴야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 52시간 상한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가 올해 7월부터 적용됐지만 보건업은 특례업종에 포함되어 무용지물에 가깝다. 이러한 상항에서 인력 충원 관련 입법보다 근로감독 강화가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서울대병원 등 6개 종합 병원에 대한 근로 감독을 시행했다. 이어 문제가 된 한림대병원 등이 추가됐다.
그 결과, 많은 병원이 수당을 주지 않고 연장 근로를 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된 내용은 주로 연장 근로 수당과 휴일 근로 수당 미지급, 당사자 동의없는 연장 근로, 휴게 시간 미부여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노동부가 나섬으로써 병원이 자율 개선하지 않는 경우 시정 조치 등 행정 처분 내려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현장에서는 노동부가 근로 감독이라는 실질적 칼을 휘두르면서 병원사업장에 '노동법 지키지 않으면 망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평한다. 순천향대부천병원노조 민송희 위원장은 "인력 충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노동 환경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간호사는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라고 배웁니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 근무가 반복되면 환자는 감당해야 하는 존재로 보이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