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허문 중국 제약 시장, 기회 잡으려면?
급변하는 중국 제약 시장 ②
해외 제약사에겐 어렵기만 했던 중국 제약 시장의 벽이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주먹구구로 운영되던 의약품 승인 절차는 2015년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개혁이 진행 중이다. 중국 정부가 제약 산업을 국가 경제 성장 동력으로 삼으면서 중국 제약 시장을 '혁신 신약 경쟁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중국 제약 시장이 한국 제약사에도 기회의 장이 될 수 있을까? 6일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KoNECT)가 개최한 '국내 의약품 중국 진출 심포지엄'에 연사로 나선 글로벌 임상시험수탁기관(CRO) 파락셀의 빅토르 쳉 부대표는 명확하게 "그렇다"고 답했다. 의약품 승인 제도가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기준에 맞춰지고, 심사 기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면서 한국 제약사의 중국 시장 진입 기회가 확대됐다는 것이다.
중국 식품의약품감독관리국(CFDA)은 혁신 신약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마련한 개혁안에서 해외에서 진행한 임상 데이터도 3가지 기준 충족 시 중국인 임상 데이터가 없어도 수용하기로 해 해외 제약사의 의약품 승인 기회를 넓혔다. 과거엔 신약 허가를 받기 위해선 중국인 임상 데이터를 반드시 제출해야 했다. 3가지 기준은 데이터 진위성, 유효성 및 안전성, 인종적 민감도이다. 이 기준을 바탕으로 해외 임상 데이터를 평가한 후, 전부 수용, 일부 수용, 수용 불가 결정을 내린다.
이 가운데 전문가들은 인종적 민감 요인을 특히 강조했다. 빅토르 쳉 부대표는 "글로벌 임상 데이터의 경우 인종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대한 ICH 가이드라인(E5)에 따라 인종적 민감도 분석을 실시해야 하며, 이를 통해 민감도가 낮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자의적으로 제출할 임상 데이터를 선택해선 안 되고, 1~3상에 이르는 모든 임상 데이터를 제출해야 한다.
데이터 전부 수용 결과를 받으면 중국인 임상 데이터가 없어도 신약 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국 내 어떠한 임상도 시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또 다른 연사인 임상 CRO 타이거메드의 웨이 취 박사는 "중국 내 추가 연구를 통해 안전성과 효과성 증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만약 인종적 민감 요인이 안전성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되거나 인종적 측면에서 효과성 및 안전성 평가에 불확실성이 상당하다고 판단될 때 부분 수용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 경우, 제약사는 규제 당국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관련 임상 시험을 수행해야 한다.
희귀 질환 등 미충족된 의료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우선 심사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도 기회 요인이다. 중국은 이미 해외에서 시판돼 효과가 입증됐고,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질병 치료제로 리스크보다 이점이 훨씬 많은 경우 등에 한해 우선 심사로 조건부 승인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중국 내 임상 시험도 면제된다. 우선 심사로 조건부 승인을 받았을 경우 시판 후 안전성과 효용성을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최근 CFDA는 에이즈, 결핵, 소화기 질환, 악성 종양, 고령층에서 특히 많이 발병하는 질환 등과 관련된 치료제가 우선 심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빅토르 쳉 부대표는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 맞추고자 하는 중국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4일 희귀 질환 치료제가 중국에서 우선 심사 제도를 거쳐 조건부 승인을 받기도 했다. 웨이 취 박사는 "급박하게 의료적 수요를 충족해야 하는 상황에서 타국에서 시판되고 있던 치료제가 우선 심사 제도로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임상적 효능이 입증됐고, 성인과 아동 모두 복용 가능해 혜택이 부작용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돼 중국 내 임상 시험이 면제되고 바로 승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중국 제약 시장 진출 기회가 넓어진 만큼,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하루빨리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규제 당국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빅토르 쳉 부대표는 "시장에 늦게 진입한 만큼 신약으로 등록될 기회도 적어진다. 독점적 권한을 부여하려 해도 당국이 특혜를 주기 어렵다"며 "중국 시장 상황을 고려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진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웨이 취 박사는 "임상 및 신약 심사 검토 기간이 짧아진 만큼 제약사도 임상 프로토콜의 과학성, 제어 가능성, 효용성 등을 반드시 증명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당국과의 소통이 굉장히 중요하다. 언제든지 자주 미팅을 갖고 신약 개발과 관련한 내용을 알려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xtock/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