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임상 시험 부작용, '코끼리 사나이' 막으려면?

최악의 임상 시험 부작용, '코끼리 사나이' 막으려면?

2006년 영국에서 류머티스 관절염 및 백혈병 치료제 임상 1상 시험에 참여한 건강한 남성 6명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약품을 투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염증 발생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머리가 코끼리처럼 부풀거나 손가락, 발가락이 괴사해 절단하기에 이르렀다.

임상 시험의 부작용으로 지금도 언급되는 이 사건의 특징은 원숭이 등을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비임상)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반응이었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 해당 약제는 인간의 단백질 CD28에서만 작용하는 특징을 지니며, 기존에 주로 다뤘던 작용제와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는 탓에 기존의 계산법과는 달리 훨씬 적은 용량을 투여했어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 시험 전에 동물을 대상으로 치료 효과와 안전성을 시험하는 단계를 반드시 거친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얻은 데이터만으로 임상 시험의 효용성과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동물 실험 결과로 임상을 예단하지 말고 꼼꼼하게 리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9일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KoNECT)와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KDDF) 주최로 열린 Global Clinical Development 포럼에선 '임상 개발 계획을 위한 성공적인 비임상 시험 전략'을 주제로 현장 전문가들의 허심탄회한 조언이 이어졌다. 이상윤 한독 상무, 문한림 큐어랜케어리서치 대표, 조관구 큐라티스 대표 등이 연사로 나섰다.

이들은 비임상 데이터 분석 시 안전성에 대한 세심한 리뷰를 강조했다. 문한림 대표는 비임상과 임상 간 안전성 시그널을 분석한 논문을 소개하며 "놀랍게도 비임상 실험에서는 안전성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임상에서 발견된 케이스가 1000례에 달했다"라며 "그만큼 동물 실험에서는 알 수 없는 안전성의 문제가 많기 때문에 제약사는 비임상에서 안전성 문제가 나타나지 않아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윤 상무도  "환각, 불면 등 동물 실험에서는 절대 잡히지 않는 '보이지 않는 독성'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비임상 단계에서 독성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독성이 없다'고 간주하는 것은 비약이다. '잡아낼 수 없는 독성'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이상윤 상무는 비임상 단계에서 '네거티브 데이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점은 보통 네거티브에서 발생하는데, 대부분 포지티브 데이터에만 집중하다가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 이 상무는 "이 때문에 항암제 비임상 단계에서 고려되는 작용 기전(MoA)이 직관적이고 명료해야 하며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데이터를 모두 볼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임상 데이터의 세심한 리뷰는 예상치 못한 질환에 대한 적응증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문한림 대표는 "화이자가 비임상 실험에서 발견하지 못한 유방암에서의 효과를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발견해 큰 성공을 거뒀다"며 "비임상에서 아무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진행을 잘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비임상 결과를 꼼꼼하게 리뷰한 뒤에는 과감한 결단도 필요하다. 조관구 대표는 "임상 시험 중 독성이 발견돼 중단한 케이스 중 대부분은 비임상 단계에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던 케이스"라며 "윗선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혹은 비용이 아까워 강행했다가 나중에 더 큰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결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상 대행 업체(CRO)를 통해 비임상 실험을 진행할 땐 더욱 세심한 디자인과 리뷰를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한림 대표는 "CRO의 루틴한 디자인과 결과를 제약사가 그대로 받아들여 잘못 해석될 소지가 많다"며 "CRO에 미리 선입견을 줄 필요는 없지만 약제의 특징에 대해선 사전에 고지해야 탈이 없다"고 조언했다. 조관구 대표도 "글로벌 CRO에 맡기면 알아서 해주리라 여기지 말고, 분야별 전문 CRO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진=임상 시험 부작용으로 손이 괴사된 남성]

    정새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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