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칼럼] 다이아몬드값 송이버섯
오메! 올 단풍은 글렀나벼! 송이가 저리 시들한 거 보니!!
내 나이 80에 송이 하나 갖고 이 지랄은 처음이여. 내가 이래봬도 50년 전부터 저 산에서 송이를 땄어. 누가 감히 날더러 송이를 따라마라 해. 제 깐 놈이 산을 샀으면 샀지. 난 판 적 없어. 내가 우리 땅 우리 산에 송이 한 뿌리 따지 못한다면 인간도 아니지. 아 썩을 놈의, 그럼, 노루새끼, 토깽이 새끼도 못 들어가게 해야지. 와, 멀쩡하게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놈, 그 깐 버섯하나 따먹는다꼬 지랄은 지랄이여.
-<안상학의 ‘비나리 윤씨 전하기를’에서>
태백산이나 소백산 줄기 어디 쯤 산에 올랐다가 무심히 송이버섯 하나 땄다간 큰일 난다. 송이버섯은 대부분 임자가 있다. 가까운 마을 주민들 1년 농사다. 주민들이 일정한 돈을 내고 송이를 딸 수 있는 권리를 국가로부터 산 것이다. 산은 나라 소유지만 송이만은 주민들 것이다. 주민들은 해마다 추석전후 송이 철이 되면 ‘입산금지’ 팻말도 모자라 밤새 번갈아 망을 보며 지킨다. 하물며 주인 있는 산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송이(Pine Mushroom)는 산신령이 먹는 음식이다. 산삼과 같다. 옛날엔 임금이나 먹던 귀한 것이다. 신라 성덕대왕(재위 702~737)도 송이를 좋아했다. 조선 영조(재위 1724~1776)는 고추장에 보리밥을 비벼먹을 정도로 소탈한 임금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 조차 “송이, 생전복, 새끼 꿩, 고추장 이 네 가지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는다”며 식탐을 했다. 어쩌면 조선의 스물일곱 임금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82세) 비결이 송이에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송이는 항암효과는 물론 소화효소가 있어 소화가 잘된다. 동의보감에도 그의 효능이 나와 있다. ‘송이는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고 향기로워 솔 냄새가 난다. 이것은 산에 있는 소나무 밑에서 솔 기운을 받으면서 돋은 것으로 버섯 가운데 제일이다.’
송이는 소나무 중에서도 살갗이 붉은 적송(赤松) 잔뿌리에서 자란다. 금강소나무 적송은 산비탈이나 바위 틈 험한 곳에서 잘 큰다. 화강암이 오랜 세월 바람에 부스러진 땅이다. 마사토 비슷한 흙이다. 송이도 그런 곳을 좋아한다.
송이는 너무 늙은 소나무는 꺼린다. 보통 20~90년 된 소나무를 좋아하지만, 이중에서도 40~50년 된 소나무 아래에서 더욱 잘 자란다. 소나무 아래엔 솔가리가 수북하다. 축축해서 습기가 많다. 버섯은 축축한 곳에서 잘 돋아난다. 가을에 비가 와야 솔가리가 축축해진다. 가을 가뭄에 송이가 흉년이 되는 이유다.
송이는 암소나무 밑에 잘 자란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소나무에 무슨 암소나무, 수소나무가 있겠는가. 암꽃 수꽃도 한 소나무에 다 있다. 자웅동체인 것이다. 하기야 일본사람들도 흑송(黑松)을 수컷, 적송(赤松)을 암컷으로 본다.
사실이야 어떻든 한국사람들은 밑동이 두개로 갈라진 소나무를 암소나무라고 부른다. 곧게 한 줄기로 뻗은 소나무는 수소나무라고 한다. 그렇다. 곧은 소나무 밑엔 솔가리가 적다. 갈라진 소나무 밑엔 상대적으로 솔가리가 많다. 송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송이는 그 모양이 남자 거시기 닮았다. 사람들은 송이가 암소나무 밑에 잘 자라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중요한 것은 송이 닮은 독버섯도 많다는 것이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비극시인 에우리피데우스는 독버섯을 잘못 먹고 죽었다. 그의 부인과 두 딸 아들 등 전 가족이 죽었다. 독버섯은 그만큼 독하다.
송이는 요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송이와는 다르다. 새송이는 큰 느타리버섯 품종이다. 모양이 송이버섯과 비슷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을 뿐이다. 톱밥을 원료로 인공으로 키울 수 있다. 서양송이인 양송이(Button Mushroom)는 주름버섯 종류다. 여름철 풀밭에서 무리지어 잘 자란다. 북한에선 볏짚버섯이라고 부른다.
‘일능이송삼표’는 왜 그럴까. 왜 첫째가 능이버섯이고, 둘째가 송이버섯, 셋째가 표고버섯이 되었을까. 그건 맛이 아니라 효능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한약재로 볼 때 효능은 능이버섯이 가장 좋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송이는 맛이 으뜸이다. 모양도 능이보다 훨씬 우아하고 품격이 있다.
송이는 갓이 중요하다. 갓이 거의 펴지지 않고 자루가 굵고 뭉툭하며 살이 두터운 게 1등품이다. 갓이 30%이내 펴진 것은 2등품, 갓이 30% 이상 펴지면 3등품이다. 파손품, 벌레 먹거나 물 먹은 것은 등외품이다.
[출처 : 셔터스톡 / matsutake mushroom]
송이는 향과 씹는 맛이 으뜸이다. 소금으로 간을 맞춰 세로로 잘게 찢어 먹는 게 가장 맛있다. 일본 사람들은 아예 쇠칼을 안 쓴다. 그 귀한 송이에 쇠 냄새라도 날까 저어하는 것이다. 대나무 칼로 썰어 날것 그대로 소금에 찍어 먹는다.
송이를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발라 구워 먹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송이 향이 사라진다. 참기름 냄새에 송이향이 묻힌다. 불고기전골에 송이를 넣어 끓여도 향이 달아난다. 심지어 라면에 송이를 넣어 끓여먹는 사람도 있다. 아깝다. 소금으로 간을 한 뒤 은박지에 싸서 구워 먹는 게 좋다. 향과 씹는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올 송이가 대흉년이다. ‘논두렁에도 송이가 난다’는 말은 몇 년 전 이야기다. 보통 단풍이 곱게 드는 해에 송이가 많이 난다. 송이와 단풍은 함께 간다. 선선한 날씨에 가을비까지 자주 내린 해가 그렇다. 올핸 값이 금값이 아니라 다이아몬드값이다. 1,2,3등품 가릴 것도 없이 씨가 말랐다. 올 여름 폭염과 가뭄 탓이다. 1㎏에 150만원을 호가한다.
송이는 보통 9월 중순부터 10월말까지 나온다. 먹을거리로는 11월 중순까지가 끝물이다. 좀 질이 떨어지는 송이인들 어떠랴. 갓이 펴진 송이라고 맛이 없을까. 송이의 인공번식은 아직 멀었다. 일본도 100년 넘게 연구해 왔지만 아직도 대량 인공생산엔 실패했다.
금쪽같은 송이버섯. 그래도 어느 금강소나무 아래 솔가리에선 송이가 돋는다. 우우우 갓난아이 이가 돋듯 하얀 송이들이 솔잎 사이 스리슬쩍 돋아난다. 축축한 솔 냄새. 향긋한 송이냄새. 마른 생풀냄새. 온갖 버무려진 가을 냄새들이 콧속에 가득해진다. 가을이 송이 향기와 함께 통째로 피어나고 있다.
가을 향기로운 것은
송이버섯 때문이다.
송이버섯 향기로움은
새의 노래 덕분이다.
산골짝 울리던
뻐꾹새 노래도
송이버섯에 숨어있다.
-<김시종의 ‘송이버섯’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