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장면 목격하면, 뇌 패턴 달라진다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 전쟁으로 상처를 입는 사람들의 모습은 각종 매체를 통해 시시각각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간접적 수단 없이 현장에서 이런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면 다가오는 충격 강도는 다르다. 누군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등 극심한 고통을 받는 모습을 목격하고 나면 뇌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이스라엘 바르일란대학교 연구팀이 뇌자도(MEG·magnetoencephalography) 검사를 통해 극심한 고통을 직접 목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뇌 반응 차이를 살폈다. 뇌자도는 자기공명영상(fMRI)처럼 특정한 정신활동이 일어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를 살필 수 있는 검사법이다. fMRI로는 감지하기 힘든 부분까지 좀 더 섬세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단 장점이 있다.
이번 실험참가자들은 이스라엘 방위군들로, 평균적으로 28회 전장에 참여한 경험이 있으며 최소한 한 번 이상 동료가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을 목격한 바 있다. 대조군으론 비전투부대에 소속된 군인 16명이 참여했다.
연구팀은 실험참가자들에게 누군가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장면과 그렇지 않은 장면이 담긴 사진들을 보여주고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했다. 가령 고통스러운 장면은 도끼에 발이 찍힌 모습, 고통스럽지 않은 장면은 도끼가 발 옆의 통나무에 찍혀있는 모습이다.
실험 결과, 두 그룹의 뇌신경 활성도 패턴에서 차이점이 드러났다. 대조군은 고통스러운 장면을 본 뒤 20ms(밀리세컨드·1000분의 1초) 안에 뇌의 우측 감각운동 피질과 좌측 후대상피질(PCC)이 활성화되는 특징을 보였다.
이러한 뇌 부위들은 ‘통증 기질’로 알려진 영역들로 혐오스러운 자극을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는 또 다른 통증 기질인 뇌섬과 우측 PCC를 포함한 다른 영역들도 차차 활성화되는 결과를 보였다.
반면 실제 전장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실험군은 PCC가 특별히 활성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고통스럽지 않은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볼 때 PCC가 상대적으로 보다 활성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가령 도끼가 발을 직접 찍지 않고 옆에 놓인 통나무를 찍은 사진에 통증 기질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같은 뇌 활성도 패턴이 잠재적 위험 요인을 감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았다. 대조군과 달리 도끼가 언제든 발을 찍을 수 있는 위험 요소라고 자각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 누군가 고통을 당한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감각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이 같은 특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확인하는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참혹한 상황에서 고통스러운 장면에 노출된 적이 있는 생존자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을 구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인지, 감정, 행동 신경과학(Cognitive, Affective, & Behavioural Neuroscience)저널’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