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칼럼] 푸하하! 하루에 4번 하고도 또 하고 싶어진다고?

[김화성 칼럼] 푸하하! 하루에 4번 하고도 또 하고 싶어진다고?

[이미지 출처 : ChameleonsEye/Shutterstock.com]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위해

-<가수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에서>

민물장어(우나기)는 ‘장어의 황제’다. 길이는 약 70cm. 민물에서 5~12년 정도 살다가 때가되면 멀리 필리핀앞바다 수심 2000~3000m 깊은 곳에 알을 낳고 죽는다. 알은 실뱀장어가 되어 부모가 원래 살던 강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온다.

하지만 이제 실뱀장어는 더 이상 강을 오를 수 없다. 태평양을 헤엄쳐 오느라 지쳐서 그럴까? 아니다. 인간들 때문이다. 사람들은 강 하구에 촘촘한 그물을 치고 기다린다. 그리고 실뱀장어들을 남김없이 잡아다가 양식장에 판다. 실뱀장어는 양식장에서 양계장 닭처럼 사료와 항생제로 사육된다. 요즘은 국내산이 모자라 상당부분을 중국에서 실뱀장어를 사온다. 1㎏에 2000만원이 넘을 정도로 금값이다.

2010년 일본은 세계 최초 인공수정으로 실뱀장어 생산에 성공했다. 이어 그 실뱀장어가 어미가 되어 다시 새끼를 부화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한국도 2016년 세계 두 번째로 일본을 따라잡았다.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이나 아직 대량양식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갈 길이 멀다.

장어는 힘이 세다. 장어를 먹은 사람도 힘이 세다. 고단백식품이다. 장어(長魚)는 길다. 장어는 꿈틀거린다. 장어는 꿈을 꾼다. 장어는 거슬러 오른다. 장어는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 장어는 좁고 좁은 문으로 쉬지 않고 간다. 한국인들은 장어를 좋아한다. 일본인들도 그렇다. 장어는 한국과 일본에서 복달임으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오죽하면 뱀장어의 영어이름이 ‘재패니즈 일(japanese eel)’일까.

장어는 한자로 ‘만(鰻)’이다. 고기 어(魚)+날 일(日)+넉 사(四)+또 우(又)를 종합한 글자다. 말 짓기 좋아하는 구라꾼들이 옳거니! 무릎을 탁 치며 말한다. “남자가 장어를 먹으면 하루에 섹스를 네 번하고도, 또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까마득한 옛날, 중국에서 그렇게 한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흐흐흐 과연 그럴까. 모르겠다.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장어에는 민물장어(우나기)와 바다에서 잡히는 먹장어(꼼장어) 붕장어(아나고) 갯장어(누타우나기)가 있다. 한국인들은 민물장어나 꼼장어 갯장어는 주로 구워먹고, 붕장어는 회로 즐겨 먹는다. 일본인들은 민물장어든 붕장어든 거의 구워 먹는다. 붕장어의 뼈 때문에 회로 먹는 걸 꺼린다. 갯장어도 역시 뼈가 억세어서 그런지 잘 안 먹는다. 일본인들은 참치처럼 부드러운 회를 좋아한다.

뱀장어는 풍천에서 잘 자란다. 풍천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 하구를 말한다. 한자로는 ‘물이 풍부한’ 풍천(豊川), 혹은 ‘바닷물과 바람을 몰고 오는 풍천(風川)’을 뜻한다. 풍천은 특정지방의 지명이 아닌 것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 하구는 어디나 풍천이다. 그곳엔 먹이가 풍부하고, 뱀장어가 살 수 있는 갯벌이 찰지다.

물론 전북고창에선 서해 줄포만으로 흘러드는 인천강 하구만이 ‘우리나라 유일의 풍천’이라고 주장한다. 인천강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구간이 10㎞가 넘을 정도로 길긴 길다. 그만큼 민물장어가 자랄 환경이 좋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요즘 우리가 먹는 민물장어 중에 자연산이 어디 있는가. 대한민국 어느 음식점에서 먹든 대부분 양식장어 아닌가. 고창의 풍천장어집이나 서울의 풍천장어집이나 ‘도찐개찐’ 양식장어인 것은 마찬가지다. ‘풍천장어 논쟁’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물장어음식점은 대부분 풍천 부근에 모여 있다. 전북고창선운사 입구의 인천강 같은 곳이 바로 그렇다. 부근에 신덕식당과 연기식당이 장어구이집으로 이름났다. 진주남강의 유정장어집도 발길이 붐빈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김포강화의 별미정숯불장어집도 있다.

자연산 풍천민물장어는 어쩌다 가물에 콩 나듯 잡힌다. 엄청 비싸다. 부르는 게 값이다. 양식 장어는 길어야 7~10개월 키운다. 길게는 10여년 갯벌의 온갖 영양분을 먹고 자란 자연산장어와 비교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한마디로 강하구 풍천에 내로라하는 장어전문집이 많지만, 자연산은 없다고 보면 된다. 수입산(거의 중국산)만 아니라도 다행이다. 한마디로 굳이 그곳까지 갈 이유가 없다. 다르다면 요리법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요즘엔 갯벌장어라는 것도 있다. 실뱀장어를 몇 달간 양식장에서 키운 다음, 한동안 갯벌에 풀어놓은 것이다. 이 땐 사료를 주지 않는다. 항생제도 쓰지 않는다. 삼으로 치면 장뇌삼이라고나 할까? 산삼은 아니지만 인삼보다는 효능이 낫다. 갯벌장어는 양식장어보다 비싸다. 육질도 탄력이 있다. 석쇠에 구울 때 S라인으로 꼬부라진다. 양식장어는 전혀 반응이 없다. 잠자는 ‘배둘레햄’이다.

장어요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장어양념구이, 장어소금구이, 장어마늘구이, 장어구이덮밥, 장어탕, 장어볶음, 장어깐풍기, 장어호박잎쌈…. 어떤 요리이든 장어의 비린내와 느끼함이 없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마늘 계피 생강 고추장을 쓰는 이유다. 노릇노릇한 장어구이를 먹을 때 반드시 생강채를 곁들이는 것도 그렇다. 생강채는 장어의 소화를 도와주기도 한다. 민물장어를 손질할 때 장어 뼈를 건드리면 핏줄이 터져 살에 핏물이 밴다. 핏물 밴 장어는 군내가 난다. 그렇다고 물로 핏물을 씻으면 장어를 구울 때 불판에 들러붙는다.

요즘 서울장어 전문집에선 장어를 구울 때 초벌구이를 하는 집이 많다. 장어의 느끼한 기름기를 빼기 위한 것이다. 양념하지 않은 상태에서 숯불에 살짝 한번 구운 다음, 양념을 발라 다시 한 번 굽는다. 이렇게 하면 장어가 훨씬 부드럽고 맛있다. 일본에서는 한번 찐 다음에 양념 발라 굽는 곳이 많다.

바람이

시립니다

난간 위에 섰습니다

발밑은

천길 벼랑

나락도 보입니다

하늘빛

부신 날에도

구름 일고 있습니다

-<김연동의 ‘하늘빛 부신 날’ 전문>

바다장어는 모두 자연산이다. 양식이 없다. 바다장어의 3대천왕은 먹장어 붕장어(아나고) 갯장어(하모)이다. 바다 물고기는 육지와 가까운데서 사는 것일수록 크기가 작다. 바다장어도 그렇다.

먹장어는 흔히 술꾼들이 ‘꼼장어’라고 부르는 것이다. 얕은 바다에서 산다. 길이가 50~60cm 정도로 바다장어 중에서 가장 작다. 연탄불이나 짚불에 껍질 채 구워 먹는 게 으뜸이다. 거의 양념구이 안주로 먹는다. 턱이 없고 입이 흡판 모양이다. 서울한복판 지하철 종각역부근에 공평동꼼장어같은 전문점도 있다.

붕장어는 약간 깊고 따뜻한 바다에서 산다. 약 1m정도로 크고 굵다. ‘바다의 갱’으로 불릴 정도로 거칠다. 낮에는 모래에 파묻혀 있다가 밤에 활동한다. 붕장어 회는 얼음에 차지게 해서 먹어야 맛있다.

갯장어는 바다장어 중에서 가장 먼 바다에서 산다. 길이도 2m가 넘을 정도로 가장 크다. ‘개의 이빨을 가진 뱀장어(자산어보)’라서 갯장어다. 바다장어 중에서 맛이 으뜸이라서 참장어라고도 부른다. 일본인들은 ‘하모’라고 부른다. 하모는 ‘아무거나 잘 문다’는 뜻이다. 그만큼 포악하다. 뭐든 보기만 하면 물어뜯는다. 뱀처럼 생긴 몸에 삼각형입속의 이빨이 억세다. 송곳니도 뾰족하고 길다.

갯장어는 주로 남도에서 회로 즐겨 먹는다. 여수 앞바다에서 잘 잡히는 데 7월이 제철이다. 여수경도회관, 여수백두산산장어전문점이 이름난 곳이다. 갯장어 중에서 크고 맛있는 것은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된다.

장어의 지방은 성인병을 막아주는 좋은 지방이다. 돼지삼겹살의 지방과 다르다. 장어는 그런 지방을 명태의 15배나 갖고 있다. 명태 100g을 먹으면 98Kcal의 에너지가 나오지만, 장어 100g을 먹으면 223Kcal의 힘이 솟는다. 60~70년대 결핵에 걸렸을 때 장어요리는 필수식품이었다.

장어에는 비타민A가 듬뿍하다. 밤눈 어두운 사람에게 특효다. 요즘엔 훤한 대낮에 멀쩡한 눈을 가진 사람조차 ‘길눈 어두운 사람’이 많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헤매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모두 장어를 먹고 ‘마음의 눈’까지 환해졌으면 좋겠다.

풍천은 민물장어 세상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인간 세상에도 삶과 죽음의 언저리 그 어딘가에 있다. 아침이슬과 저녁노을 곁에 있다. 사람은 언젠가 그곳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간다. 뱀장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알을 낳듯이, 사람도 풍천에서 영혼의 살을 찌운 뒤 담담하게 저 ‘해지는 곳’으로 사라진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歸天)’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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