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가 그림인가... 나신의 우아미 극치
●이재길의 누드여행(8)
유젠 드류 : 누드, 낭만의 꽃을 피우다.
19세기는 척박한 예술의 대지 속에 ‘낭만주의’가 꽃피어나던 시기였다. 사회적 계층의 엄격한 규칙과 질서에 의해 살아가던 당시 시대적 배경들을 그림과 사진 등을 통해서 추측할 수 있다. 당시 사회적 억압과 계층 간의 갈등 속에서도 꿈틀거리며 살아 숨 쉬게 한 것은 바로 내면에 숨어있는 그들만의 ‘에로스(eros)의 사랑’이었다. 1850년대부터 20세기로 넘어가던 시기, 파리에서 활동하던 사진가들이 어두운 골방에서 숨죽이며 찍은 사진들 대부분은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다뤄진 누드사진들이었다. 당시 누드사진은 초상사진보다 더 많이 유통됐다고 하니 보수적인 시대적 배경의 또 다른 이면을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는 낭만주의 예술에서 은밀하게 시작된 누드사진이 그 시대와 세계를 변화시킨 강력한 힘의 원천임을 증명하고 있다.
프랑스 사진가 ‘유젠 드류(Eugene Durieu,1800-1874)’는 낭만주의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실체를 누드사진을 통해 독보적으로 나타낸 인물이다. 남성과 여성의 벗은 몸은 모두 그의 사진 속에 ‘빛’이 되어 환하게 비추고 있고, 보일 듯 말 듯 수줍게 가려진 모델의 벗은 몸에서 그만의 에로스적인 표현방식이 묻어난다. 그의 대표적인 누드 사진으로 오늘날까지 알려진 작품 중에서 1853년경에 촬영된 ‘Seated Female Nude' 작품(그림 1)을 손꼽을 수 있다. 가슴을 드러낸 여인이 무심히 뒤돌아 앉아있는 모습은 편안하면서도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차분하고 따뜻해 보이는 공간은 고전적인 그림을 연상케 할 정도이다. 빛에 반사되어 전해지는 고운 피부의 느낌과 아름다운 여인의 곡선은 가장 여성다운 모습이다.
1853년경, 유젠 드류는 그의 사진가 인생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로 알려진 ‘들라크르와’가 유젠 드류를 만나 남성과 여성의 누드모델 촬영을 의뢰하게 된다. 화가였던 들라크르는 유젠 드류의 누드 사진을 보면서, 사진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고 마침내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사진을 배우게 된다. 이후 들라크르와는 유젠 드류에게 배운 사진실력을 토대로 자신이 직접 사진가가 되어 여성의 누드 사진을 찍게 된다. 직접 빛을 이용하고 모델의 포즈를 연출하여 찍은 사진들을 바탕으로 수많은 데생과 유화 작품을 그려냈다.
들라크르와가 사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넓은 의미의 ‘회화’와 ‘사진’에 대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19세기 프랑스 화가였던 구스타브 쿠르베는 “그림은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다. 그러므로 그림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추상적인 것,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그릴 수 없다”고 정의했다. 하지만 들라크르와는 ‘그림’은 사실적인 실제를 해석해내는 예술매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여성의 누드를 통해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아름다움의 실체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유젠 드류와 들라크르와의 누드 작품세계는 오늘날 회화와 사진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들라크르와의 작품들 중 유명한 ‘오달리스크(Odalisque)’(그림.2)에서 왼팔로 머리를 받치고 있는 자연스럽고 우아한 자태의 여인을 볼 수 있다. (그림.2)의 『Nude』 작품사진은 유젠 드류가 촬영한 여인의 누드로 원초적이고 투박해보이며, 드러난 가슴과 정리되지 않은 공간, 얼룩져 보이는 배경 등이 매우 이질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젠 드류의 누드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은 세련되고 품위있어 보인다. 그림 속 색채의 조화는 마치 여성의 섹슈얼리즘에 대한 존엄성을 상징하는 듯 하다. 이는 들라크르와가 유젠 드류의 누드사진을 재해석해 모로코 여행에서 경험한 알제리의 풍속적 요소를 가미해 그린 그림이다.
들라크루와가 누드사진을 통해 발견한 것은 단순한 여성의 성적표현이 아닌, 사진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실체’였다. 절대적인 가치에 대한 ‘감격’(사진)이 무한한 그림의 상상력 속에 묻어나는 것, 바로 불변하는 예술의 진리인 것이다. 유젠 드류와 들라크루와의 작품세계의 근본은 바로 ‘누드’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인간존재를 향한 내면의 ‘갈망’이요,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그림.1) - https://www.pinterest.com/pin/493496071638936535/
(그림.2) - https://accademiadegliincerti.wordpress.com/2015/07/13/il-potere-delle-immag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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