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배정원의 Sex in Art(24)
페터 파울 루벤스, 『삼손과 데릴라』
“오..! 내 사랑..! 당신은 정말 대단한 남자에요. 저를 이토록 매혹시킨 남자는 당신밖에 없어요..당신의 멋진 근육과 몸, 그리고 남자 중에 남자로 만들어 주는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저를 제압하고 당신에게 묶일 수밖에 없게 만든 그 엄청난 힘의 비밀을 알려 주세요...”
마치 뜨거운 열기가 새 나올 것 같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두 남녀는 이제 금방 섹스를 마친 듯 하다. 남자는 아기같은 평온함으로 여자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 있고, 방금 전까지의 뜨거운 육체의 향연으로 활활 달아 오른 여자의 얼굴과 몸은 아직도 열기가 가시지 않은 듯 발그레하다. 여자 역시 자신의 무릎에서 혼곤히 잠에 빠져들어간 남자처럼 쾌락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 나른하고 멍한 얼굴을 하고 곧 잠에 빠질 기세이다. 여자의 가녀린 손은 남자의 굳세고 넓은 어깨에 다정하게 놓여 있다.
구리빛 우람하고 훌륭한 근육질 몸을 가진 남자는 아무런 경계없이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데, 뽀얀 우윳빛 피부를 가진 여자는 누구라도 한번 만져 보고 싶은 탐스런 가슴을 드러내 놓은 채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칠 여력도 없이 또 다른 손님(?)들을 맞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젊고 아름다우며, 홍조를 띤 그녀의 얼굴 위로는 늙고 욕심 많아 보이는 노파가 촛불을 비추고 있으며, 그 가운데엔 남자가 깰까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조심스레 남자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가위를 든 남자의 모습이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게다가 반쯤 열린 방문 앞에는 완전 무장한 한 무리의 병사들이 이 위험한 모의가 끝나고, 그들의 덫에 걸린 가련한 남자의 눈에 박을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들고는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할 기회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어두운 방안을 비춰주는 것은 노파가 든 촛불뿐인데, 음험한 배신이 이루어지는 현장인데도 뜨거운 육체의 향연의 열기가 미처 가시지 않은 두 남녀의 모습은 너무나 관능적이기만 하다. 이 그림은 얼핏 봐도 기독교적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차릴 저 유명한 ‘삼손과 델릴라’ 이야기의 가장 비극적인 한 장면이다.
“화가들의 군주이며, 군주들의 화가‘라 칭송받았던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페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가 28세에 그렸다는 그림이다. 플랑드르의 부유한 상류 부르조아 가정에서 태어난 루벤스는 8년간의 이탈리아 그림유학에서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제, 라파엘로, 코레조, 카라바조에 이르기까지의 대가의 그림들을 수없이 모사하면서 그들의 작품의 기법들을 망라해 배웠으며 거기에 타고난 천재적인 재능으로 죽을 때까지 ‘가장 인기 있고, 존경받는’ 화가였다.
그는 여러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했으며, 고전에 대한 뛰어난 학식과 교양, 능숙한 궁정 매너로 ‘세상에서 가장 교양 있는 궁정화가’이자 외교관의 삶을 살았다. 루벤스의 그림을 보면 손에 잡힐 것처럼 생생하고 역동적이며 거칠 것이 없이 호방하여, 그림속의 사람들이 금방이라도 걸어 나와 호탕하게 웃거나, 어깨를 붙잡고 큰소리로 말을 걸 것만 같다.
‘삼손과 델릴라’는 구약성서의 사사기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삼손은 태내에서부터 하느님에게 선택받은 자로 ‘한줄기 빛’ ‘작은 태양’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남자로 그리스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에 견줄만한 힘을 가진 강대한 사람이다. 그의 힘은 놀라워서 사자의 입을 맨손으로 잡아 찢어 죽이고, 나귀의 턱뼈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1,000명을 단숨에 죽일 정도였다.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답게 그에게도 꼭 지켜야 할 금기가 있었는데,‘머리를 자르지 말 것, 술을 마시지 말 것, 부정한 음식을 먹지 말 것’이 그것이었다. 20년간 이스라엘을 지배했으며, 재판관 중의 한 사람이었던 삼손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과 그 여인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는 가벼운 입이 늘 문제였다.
삼손의 첫 번째 부인도 이방이며 적국의 여인 블레셋사람이었고, 삼손의 운명을 바꾼 델릴라도 블레셋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삼손은 첫 번째 아내에게도 자신이 결혼식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낸 수수께끼의 답을 가르쳐 주어 그 대가를 치르느라 고생하던 와중에 부인을 빼앗겼고, 그로 인한 분노로 블레셋 사람들 1,000명을 죽여 블레셋 사람들의 원수가 되고 만다.
그러던 중 다시 블레셋의 아름다운 처녀 델릴라에 빠지고 그녀의 미인계에 홀려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려주고는 머리카락이 잘리고, 실명한 채로 노예생활을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된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잊혀진 채 노에로 사는 동안 머리카락이 자라며 다시 강한 힘을 얻고서는 블레셋 사람들의 축제에서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려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고 마는 비운의 주인공이 바로 삼손이다.
이 그림은 그 중에 데릴라와의 치열한(?)하룻밤을 지내고 잠에 곯아떨어진 삼손이 머리카락을 잘리우고, 블레셋 병사들에게 잡히는 순간을 묘사한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은 곧 블레셋 병사들에게 사로 잡혀 아무런 반항도 못한 채 두 눈을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찔려 실명하고, 노예로 끌려갈 운명인데, 그는 그런 기막힌 곤경을 예상치도 못한 채 잠에 곯아 떨어져 있다.
남자든 여자든 강렬한 오르가즘을 경험한 후에는 깊은 잠에 빠지게 되어 있다. 오르가즘은 단순히 느낌이 아니라 실제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인데 , 여자의 경우 몸이 휘는 듯 힘이 들어가고, 치골근이 수축되고, 자궁이 빠르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여자의 몸과 가슴에는 붉은 반점들이 나타나고, 동공은 확대된다. 많은 여자들이 오르가즘의 느낌을 ‘뭔가 채워지는 느낌’ ‘하늘에 둥둥 뜨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반면, 남자들은 ‘신나게 달리다 아래로 휙 떨어지는 느낌’ ‘해방감’‘ 비워내는 느낌’ 등으로 표현하니 재미있다. 오르가즘의 순간은 불어로 ‘작은 죽음’이라 할 정도로 잠깐 자기도 모르게 의식이 변질된다고 하며 이 때문에 인도의 성전 카마수트라에서는 ‘이 순간 옛 애인의 이름을 부르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구절도 보인다.
어쨌든 멋진 오르가즘을 경험하면 나른하고도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오고, 잠에 빠지게 된다. 특히 남자들은 그 순간의 졸리움이 여자보다 더한 모양이어서 대개의 남자들이 섹스를 멋지게 치룬 후에는 잠에 곯아 떨어져 파트너를 서운하게 한다. 여자들은 오르가즘의 여운이 남자보다 천천히 가라앉는 까닭에 잠에 빠져들 때까지 남자와 사랑의 대화와 터치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꽤 멋지고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눈 것 같은데, 내 파트너가 맨 정신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뭔가를 한다면 유감스럽게도 진짜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한 거라 봐도 무방하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재판관을 지내고,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였으나, 그는 아름다운 여자의 유혹에 잘 빠지고, 매춘부를 찾아다니며,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비밀을 잘 털어놓는 어쩌면 아주 단순하고 경박한 남자였다. 아킬레스를 비롯한 모든 영웅들은 그들을 단번에 제압할 약점과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 영웅들이 하나같이 허허롭게도 자신의 비밀을 누설하는 것을 보면 신은 인간에게 아주 자비롭지는 않으신 것 같다. 게다가 영웅호색이라고 영웅들의 패망은 거의 아름다운 여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굴복하는 데서 온다.
삼손과 델릴라가 ‘아름다운 여자를 경계하지 않으면 인생을 망친다’는 교훈을 주는지는 모르겠으나, 루벤스는 그 교훈보다 오히려 이 이야기 속 ‘섹스가 주는 관능의 강력함’에 대해 집중하는 듯하다...
실제로 어떤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의 교태와 유혹을 쉽게 거절할 수 있을 것인가? 더욱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잠자리의 기술마저 뛰어난 여자의 유혹에 담대할 남자가 있을까?
그러니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로구나!!!!!
글 : 배정원(성전문가, 애정생활 코치,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