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보다 나은 고래... 코르셋에서 인공뼈까지
우리나라 설화에서 고래는 은혜를 베푸는 동물로 묘사된다. 호남 해안지방에서는 조난당한 어부의 배를 고래가 구해줬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이 어부의 자손들은 대대로 고래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고래는 여러모로 인류의 삶에 기여해왔다. 울산 장생포에는 고래박물관이 있는데 이곳 연구소에 따르면 고래는 살과 뼈, 심줄까지 버릴 게 없다. 활용가치로 따지면 소에 버금간다.
육회로도 먹는 고래 고기는 살코기와 위, 갈비살, 오베기로 불리는 꼬리, 아래턱에서 배꼽까지의 주름 부분인 우네, 잇몸, 콩팥, 뱃살, 창자, 껍질, 지느러미 살, 혀까지 다양한 부위가 먹거리로 쓰인다.
지난 2010년에는 일본 고래연구소와 도호쿠대학 연구팀이 치매를 예방하고 개선하는 물질인 프라즈마로겐이 밍크고래의 뇌에 풍부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고래 지방에는 EPA와 DHA 등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피로회복과 성인병 예방에 좋고, 살코기에는 단백질과 철분이, 연골에는 노화방지 효과가 있는 콘드로이틴이 함유돼 있다는 연구도 있다.
고래 고기의 효능에 대해서는 아직 검증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도 적지 않다. 지난 2012년 국제포경위원회는 고래 몸속에 수은 등 중금속과 오염물질이 축적돼 있어 건강에 해롭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환경운동연합 조사에서는 시중에 유통되는 고래 고기에 어패류 잔류기준을 7배나 초과하는 수은이 들어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미나마타병의 주된 원인인 수은은 중추신경계와 신장에 치명적인 장애를 일으킨다.
고래 고기와 내장, 뼈를 끓이거나 압축해서 짜낸 기름도 유용하다. 긴 수염고래에서 짜낸 기름은 마가린 등 식료품과 화장품, 화약, 비누 등을 만드는 원료로 쓰이며, 향고래의 기름은 세제, 윤활유, 양초, 약품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석유 시대 이전에는 난방과 조명용으로 고래 기름이 널리 사용됐다. 고래연구가들에 따르면 고래 지방은 태워도 연기가 나지 않아 실내 연료로 쓰기에 적합했다. 초기 우산의 살과 코르셋, 채찍의 재료로 쓰인 것도 고래수염이었다. 테니스 라켓의 줄로 쓰이는 여러 재료 중 하나 역시 고래심줄이다.
고래 뼈는 고기나 기름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용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기름을 빼낸 고래 뼛가루는 비료나 가축의 사료로 쓰이고, 고래의 아래턱뼈는 공예품의 재료로 쓰인다. 이런 고래 뼈가 고부가가치 의료용 소재로 탈바꿈할지 주목된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는 최근 경북대, 충북대, 한국섬유개발연구원과 공동으로 고래 뼈를 이용한 의료용 골이식재 개발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쓸모 없어 버리는 고래 뼈를 인공뼈인 골이식재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골이식재는 치과에서 치조골로 임플란트를 할 때, 정형외과나 성형외과에서 뼈를 재생하거나 복원할 때 쓰인다. 전 세계 골이식재 시장은 3조원 규모가 넘는데, 매년 12%씩 성장하고 있다. 고래 뼈로 골이식재 개발에 성공한다면 상당한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는 이를 위해 고래 뼈의 부위별 조직 특성과 성분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