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마케팅을 풀마케팅으로 바꿔보자
배지수의 병원 경영
푸시마케팅 vs 풀마케팅
마케팅 방법 중에 푸시마케팅(Push marketing)과 풀마케팅(Pull market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푸시마케팅은 공급자가 상품을 “밀어낸다”, 즉 공급자 주도의 마케팅이라면,
풀마케팅은 수요자가 상품을 “끌어 당긴다”, 즉 수요자 주도의 마케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의료시장에서 약이 처방되는 경우는 대표적인 푸시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급자인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 고객인 환자는 그 약이 어떤약인지 따지지 않고 의사를 믿고 복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약의 처방도 풀마케팅인 경우가 존재합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전문의약품의 TV광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전문의약품 TV광고를 보다 보면, 마지막 부분에 "당신의 주치의에게 푸로작을 처방해 달라고 요구하세요." 라는 멘트가 나옵니다. 소비자(환자)에게 상품을 각인시키고 공급자(의사)에게 가서 그 약을 처방해달라고 요구하도록 만드는 식입니다. 소비자가 상품을 선택하는 상황이니, 풀마케팅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품을 구매 할 때 일반적으로 두 단계의 인지적 과정을 거칩니다.
첫째 단계는 “상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단계, 즉 니즈가 생기는 단계입니다.
둘째 단계는 "여러 브랜드의 상품 중 어떤 브랜드를 살 것인가" 결정하는 단계입니다.
점심시간에 식당을 가기 전에 "배가 고파서 밥을 먹겠다."고 생각을 해야 하고, 그 다음에 "무슨 메뉴를 고를 것인지" 결정하계 되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푸시마케팅은 니즈가 형성이 되지 않은 소비자에게 니즈를 설득하고 판매하는 식이니 위의 두 단계 중 첫째 단계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풀마케팅은 니즈는 이미 있는 고객에게 브랜드를 선택하도록 유도하고 판매하는 식이니 둘째 단계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푸시마케팅과 풀마케팅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보험 영업과 외제차 영업을 비교해봅시다.
저는 보험 상품을 여러 개 가지고 있지만, 이중 어느 하나도 제가 먼저 보험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가입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보험에 가입한 경로는 대충 이렇습니다.
1. 동창회에 나갔다.
2. 별로 학창시절 기억도 안 나는 한 친구가 괜히 친한 척 한다.
3. 연락처를 준다.
4. 하루는 그 친구가 전화가 와서 병원 구경하러 온다고 한다.
5. 같이 식사 하던 중 보험 상품 얘기를 하게 된다.
6. 친구 사이에 차마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려워 보험 상품 하나를 가입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와 같은 경로로 보험을 가입했을 것입니다. 보험 영업은 소비자가 니즈가 형성이 안되어 있는 상태에서, 공급자 (영업사원)이 소비자에게 니즈를 설득하고, 판매하는 시스템입니다. 공급자 측에서 주도하는 대표적인 푸시마케팅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즈 조차 형성 안되어 있는 소비자에게 “당신 이런 상품이 필요하잖아.” 설득부터 시작해야 하니 매우 어려운 영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보험 영업을 해 본 사람은 어디 가서 굶어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편 외제차 딜러를 생각해 봅시다. 딜러는 외제차 매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들어오는 손님을 맞이합니다. 외제차 전시장에 들어오는 손님은 둘 중 하나입니다. 최근 승진 하고 연봉이 올라, 외제차를 한번 타 볼까 생각하는 사람과 외제차를 리스로 타고 있는데 곧 리스가 끝날 때가 되어 가는 사람. 이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보나마나 외제차를 하나 살 예정인 사람들입니다. 이미 첫째 단계인 니즈가 형성 되어 있는 상태에서 둘째 단계인 어떤 브랜드의 차를 살지 결정하면 되는 사람들입니다.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다른 회사 제품보다 우리 회사 제품이 더 좋다."라는 설득만 하면 됩니다. 보험 상품을 팔 때보다는 훨씬 수월한 셈입니다. 소비자가 주도를 하니 풀세일즈라고 할 수 있겠지요.
풀세일즈를 푸시세일즈로 전환시켜 보다 많은 상품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업세일즈 (Up Sales)라고 합니다.
어느 중년의 부인은 외국에 유학 가 있는 딸에게 송금하러 은행을 방문했습니다. 이 때 은행 직원은 해외송금 일을 처리하다가, 한마디를 던집니다. "어머 따님이 곧 시집가실 때가 되셨겠네요. 따님의 주택 마련을 위한 펀드 상품 좋은 것 하나 있는데, 강남의 부자들이 요즘 선호하는 상품이에요."
만일 여기서 은행 직원이 외환 송금 업무만 했다면 고객의 니즈에서 시작된 거래이므로 풀세일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펀드 판매의 경우 고객이 니즈가 없었는데, 은행직원이 니즈를 환기시키고 판매를 했으니 푸시세일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행직원은 풀세일즈 상황을 푸시세일즈 상황으로 전환시키고 영업을 성공시켰습니다. 은행 경영진 입장에서 보면 훌륭한 직원이지요.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의 증상에 대해서 진료를 하는 대부분의 상황은 풀세일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료 상황에서도 풀세일즈 상황을 푸시세일즈로 전환시키는 상황은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몇몇 예를 들어봅니다.
• 소아과 선생님들이 감기로 내원한 15세 여자 청소년을 진료하다가,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을 것을 권유한다.
• 소아정신과 선생님이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찾아온 아이가 ADHD로 진단되자 약물치료와 사회성치료를 권유한다.
• 치과 선생님이 틀니를 하러 온 환자에게 임플란트가 더 낫다는 것을 권유한다.
• 치과 선생님이 충치로 고생하는 환자에게 아말감 보다는 금으로 때우는 것이 더 좋다는 설명을 한다.
• 피부과 선생님이 보툭스 맞으러 온 환자에게 주름 있는 곳의 점은 종양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으니 빼자고 권유한다.
이런 경우들은 환자가 니즈가 없는 상태에서 의사가 새로운 상품을 권유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보험 세일즈와 같이 환자에게 필요하다는 니즈를 설득하고 처방을 해야 하니, 한단계 더 어려운 영업인 셈입니다.
소아정신과 환자들을 진료하는 저로써도 이 경우 말이 잘 안떨어지곤 했습니다. 사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의학적 치료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마치 돈을 벌려고 더 비싼 상품을 권유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어색함이 들었습니다. 권위있는 의사가 아니라 마치 영업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이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가 시도했던 한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저는 병원 대기실에 환자들에게 권유해야 할 치료방법에 대한 설명 글들을 많이 걸어두었습니다. 놀이치료의 효과, 사회성치료의 효과, ADHD 약물치료의 효과 등등. 이런 글들을 제가 직접 칼럼을 써서 액자에 걸어 두었습니다. 환자분들이 기다리면서 읽으시기를 유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병원에 들어올 때는 딱히 니즈가 없던 환자분들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니즈가 환기되어 진료실로 들어오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험 상품을 살 때의 고객에서 외제차를 살 때의 고객으로 탈바꿈 한 상태로 진료실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생판 처음 듣는 것 보다 미리 읽어본 상태에서 그 치료방법의 필요성을 설득할 때 환자들의 수용성이 훨씬 높아지게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