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욱 칼럼] 정치인 사진에 나타난 남녀 차별
과학산책
언론에 보도되는 남녀의 사진에는 성차별이 숨어 있다. 남성은 얼굴 위주로, 여성은 신체 전체를 싣는 경향이 있다. 여성학에서는 이 같은 ‘얼굴 차별(faceism)’을 성차별로 규정한다. 얼굴 차별은 남녀가 제도적 평등을 이룩한 사회에서 오히려 더 심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치인의 경우 그렇다고 한다.
최근 ‘계간 여성심리학(Psychology of Women Quarterly)’ 저널에 실린 논문을 보자. 미국 미시간대학 연구팀은 세계 25개국의 정부 공식 홈페이지에 실린 정치인 6500여 명의 얼굴 사진을 분석했다. 사진에 나타난 신체에서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을 남녀 간에 비교한 뒤 이를 성 평등 정도와 대조했다.
그 결과 소득수준이 높고 교육, 취업, 정치진출 기회 등에서 남녀가 평등한 나라에서 뜻밖의 특징이 나타났다. 여성 정치인의 사진에서 얼굴 이외의 신체 부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남성 정치인보다 높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제도적 성평등이 반드시 개인 차원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연구결과는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뿌리깊은 문화적 편견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여성주의 이후의 반동현상’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제도적 성차별이 사라지는 데 대해 무의식적으로 반발하는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얼굴 차별은 무의식적인 (문화적) 영향 때문에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 같은 편견이 여성 정치인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정치인과 그 보좌진에게 인식하게 만들기만 해도 편견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논문에는 한국에 대한 평가도 들어 있다. 분석 대상이 된 한국 정치인 290명 중 여성은 14.8%를 차지했다(2010년). 특이한 것은 사진에서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여성 정치인(62.97%)이 남성 정치인(61.54%)보다 오히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얼굴이 크게 보도된 인물은 더욱 지적이고 야심적이며 적극적이고 지배적이라고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사진에서 얼굴의 비중이 작은 인물은 다정하고 동정심이 있으며 호감이 가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한국은 정치인 사진에서만큼은 여성이 더욱 리더십 자질이 높은 인물인 것처럼 대우받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무작정 좋아할 일은 아니다. 이런 나라는 25개국 중 르완다, 한국, 짐바브웨뿐이기 때문이다. 유럽, 미주, 호주,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을 통틀어 그렇다. 아시아 평균을 보아도 남성 정치인 사진의 얼굴 비중(67.5%)이 여성(66.5%)보다 높다.
이번 논문의 결론은 의미심장하다. “제도적 성 평등을 이룬 국가에서 여성 정치인 개인은 오히려 성차별을 크게 받는다. 남녀가 제도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나라일수록 여성 정치인에 대한 성차별은 오히려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성평등 후진국이라는 뜻이다. 지난 23일 세계경제포럼 (WEF)이 발표한 연례 성 격차 보고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의 성평등 순위는 올해 135개 조사대상국 중 108위로 지난해(107위)보다 한 단계 하락했다. 아랍이나 아프리카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말이다.